포천과 철원의 경계 '명성산' 9월 산행
우리는 동물이 보통 ‘운다’라고 표현을 한다. 늑대가 운다, 새가 운다, 아침 닭이 운다와 같이. 물론 짖는다, 지저귄다, 야옹 한다(?)와 같이 표현하기도 하지만 동물이 ‘웃는다’는 표현은 잘 하지 않는다. 운다는 것은 그러고 보면 ‘웃는다’보다는 좀 더 범용인 것 같은 느낌이다. 왜 그럴까? 동물들은 그냥 경계를 하거나 사랑을 표현하는 중이거나, 웃고 있는 중일 수도 있는데.
지난 주말에 갔던 산은 강원도 포천과 철원 경계에 걸쳐 있는 ‘명성산(鳴聲山)’이다. 오랜 인연인 옛 직장 동료들이 아직도 운영 중인 사내 동호회에서 기획한 산인데, 원래는 전라도의 대둔산에 가려고 하다가 비 소식에 일정을 변경해서 명성산으로 향하게 됐다. (비에 굴하지 않고 피해 가는 열정이란!) 명성산은 해발이 920m가 넘고 일부 구간은 암벽릉도 있어서 쉽지 않았지만, 12~3km 정도에 능선 구간도 상당히 포함하고 있어서 적당하고 재미있는 산이었다. 무엇보다 여름이 더웠고, 비가 많이 온 직후라서 그런지 계곡에 물이 많고 수목이 울창해서 서울 근교 산들과는 또 다른 오지의 느낌도 나 특별했다.
명성산은 포천에서 올라서 정상 능선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철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봉우리 중 하나에서는 멀리 이북 땅도 보이고, 주위로 드넓은 철원 평야가 있어서 장관을 이룬다. 철원 평야는 쌀이 나는 곡창지대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가까이에는 6.25 전쟁 때 평야를 되찾는 '철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고, 더 멀리는 궁예가 통치한 후삼국 태봉국의 수도였다. 봉우리에서 바라보면, 철원 평야가 얼마나 넓고 천혜의 요새 같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지, 철의 군주 궁예의 수도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울창한 수목, 억새밭의 풍경, 쏟아지는 폭포수, 광활한 평야, 게다가 좀 흐린 하늘이지만 청명한 공기로 아주 먼 산들까지 능선 하나하나 잘 보이는 탁 트인 시야. 이 모든 매력이 다 있었던 명성산이지만 궁예의 원통한 마음을 채 씻지 못해 그 곳에 사는 새가 우는(鳴聲) 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계곡 물은 시원했고, 정상쯤 있었던 가지 앙상한 고목은 왠지 오래 뒤 나의 모습 같아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철원과 포천의 경계를,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넘나든 여운의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