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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어울림

수채화 캘리그래피 연습노트 #11

by 케니스트리

영화 <서브스턴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함께 본 이들은 말했다. “기괴하고 망측하지만, 작품성은 뛰어난 영화다.” 동의한다.


<서브스턴스>는 영상미, 연출, 기획, 시퀀스 흐름, 강약, 템포, 주제의식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정교하게 빚어진 작품이었다. 마치 숨이 차도록 달리다가 이제야 길에 익숙해질 즈음, 예상치 못한 오르막과 내리막, 급한 코너가 나타난 듯한 흐름이었다.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봐.” 영화는 앞서가며 도발하고, 나는 기쁘게 속도를 높인다. 그 흐름에 적응할 무렵, 마침내 골인지점이 보이는 여정의 끝. 그런데 그것이 신기루였다면? 숨은 더욱 거칠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지고, 목에서는 피 맛이 날 것이다. 피. 이 영화의 마지막은 강렬했다. 짙고 거칠고, 지겹도록 길게 이어진 유혈 장면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수박을 그린 수채화 연습을 떠올린다. 이번 연습은, 서로 다른 색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물의 양과 붓의 터치, 그리고 모든 요소의 만남이 얼마나 정교한 타이밍을 요구하는지를 알게 했다. 어떤 색은 마르면 되돌릴 수 없고, 어떤 터치는 하고 나면 고칠 수 없다. 균형을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칠하고, 밀고, 다시 얹었다. 주저한 붓 끝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물이 흥건한 종이 표면에 고이고 흐르는 빨간 물감은 마치 영화에서 마구잡이로 흩뿌려진 피를 연상케 했다.




이번 그림은 수박이다. 수박은 과육과 껍질, 씨앗이 있어 각각 다른 계열의 색을 잘 어우러지게 하는 자연스러운 처리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소재였다.



선을 '따지'않고 스케치를 해서 떡지우개로 선을 약하게 만들어 주었다.



채색은 우선 순수한 ‘물’로 시작한다. 색을 입히기 전, 말라버리지 않게 충분히 물을 경계 안쪽에 칠해준다.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얹는다.


전혀 다른 계열의 색을 겹쳐 그릴 때, 아주 자연스럽게 번지게 해 이질감이 들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인공의 색으로 자연을 표현하려면, 우연과 감각, 그리고 정성의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야 한다.


마를 것을 우려해 과하게 칠한 물기는 종이에 굴곡을 만들어, 물감이 머물지 못하고 흘러 고이게 했다.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하여 경계를 제한하면 칼로 똑바로 자른 듯한 수박을 그릴 수 있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는 완벽 아닌 완전을 이룬다. 다 마르고 난 뒤, 어딘지 부족한 듯한 허전함은 평소 거슬린다고 생각했던 수박씨가 채웠다.



삼각형 수박 그림에 손잡이를 그려주면 만인의 여름 디저트 '수박바'가 된다.


카피를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어떤 천재의 기가 막힌 말장난, “너를 사랑할 수박에”를 넘어서는 더 재미있는 카피는 떠올리지 못했다. (저녁을 먹기 전이라 배가 고파서 그런 것 같기도.)


알록달록 예쁜 글자는 물붓을 이용했다. 조금 탁한 물로 먼저 글씨를 쓰고, 그림에 쓰인 색을 글자 선 끝에 조금씩 콕콕 찍어 번지게 하여 그라데이션 효과를 주었다.



심화 과정 이후 배운 수채화 중, 카피를 더한 장미꽃 플랫-일러스트와 수박 그림 세트다.


결국, 수채화는 과감함, 면밀함, 정성, 타이밍과 같은 모든 요소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그림이 된다. 잘 된 그림은 마치 좋은 인연과도 같다는 것을, 매번의 그림 연습에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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