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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pr 01. 2020

잠재 전파자의 48시간

코로나 19 확진자 직접 접촉 후 주변의 반응과 발생하는 일들

처음엔 왠지 모를 위화감이 시작이었다. 이유 모를 불안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고 옷을 입고, 출근하려 나서다 멈췄다. 그리고 회사 상사와 인사팀에 이메일을 적었다. 제목은,


COVID-19 관련 자가격리 요청 건


지인이 약 3주간 남미 여행을 다녀왔고, 귀국길에 프랑스 파리 공항을 경유했는데 입국한 다음날 즉시 유럽발 입국자 공항 격리 조치, 유럽발 항공기 추가 운항 중지 등 강도 높은 코로나 대책이 실행되었고, 그들이 해외에서 돌아오는 길이 막히거나 국내 공항에서 바로 격리조치가 일어나는 일은 겪지 않아 다행이라 전해 들었다. 그런데, 주말에 연락했더니 지인에게 약간의 미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불안해하고 있었고, 본인은 이미 자가 격리 중이며 식사도 따로 한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나는 그와 귀국 후 한 차례 만나 식사를 했고, 그때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 건강히 잘 다녀온 것을 다행이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주말 새 전화통화에서, 감기 기운과 비슷한 증상이 있다길래 잘 쉬라고 하며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아주 조금이지만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지인을 만난 것은 화요일, 난 이후 내내 출근을 했고, 사무실에서 일을 했으며 직원들과 밥을 먹었다. 월요일 그런 기분이 들고 회사에 메일을 써 자가 격리에 들어간 것은, 친구와의 전화통화 직후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든 불안감 증폭의 결과였다.


참고로, 이 글을 적는 시점에 이미 1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있다. 그들의 감염 사례는 곧, 그들의 직접 접촉자인 가족, 타인, 관계인 모두와 이동 경로에 방문한 사람, 접촉자를 접촉한 사람, 생활 반경 내 공공시설물을 공유하는 간접 접촉자까지 최소 열 배는 더 많은 수의 잠재 감염 혹은 전파자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의심환자의 접촉자가 되면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이후의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 요청이 몰고 온 회사 발 폭풍과, 어쩌면 비슷한 입장인 우리 이웃의 경험일지 모를 나와 그들의 불안, 위축, 의심, 원망, 죄책감 등 가감없는 감정 변화의 순서를 의식의 흐름대로 담았다.



Ep1. 자가격리 시작


회사의 부서 직속상관인 임원분과 인사 담당자에게 이러한 정황을 설명하는 내용의 자가 격리 및 재택근무를 요청하는 메일을 썼다. 회신을 기다리면서도, 지인의 상태에 대해선 낙관적이었다. 다닌 남미 국가들은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고 (여행을 친구들은 '피난'이라 부르기도), 심각한 수준인 프랑스 파리 경유에도 수시로 방역 소독 중인 공항 라운지에 머문 것이 전부라 했으므로, 지인의 미열(微熱)은 그저 오랜 여독의 결과일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직원들과 평소처럼 커피 마시며 회의하고, 바로 옆자리에서 농담하며 웃고, 어쩌다 잔기침이라도 하면 서로 눈치 주는 시늉을 하며 이 또한 웃으며 넘어가는 그런 일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어떤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그때까지 재택을 허용치 않았던 회사에 스스로 그런 요청을 하게 된 것이다. 메일을 쓰고 나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이제야 동이 터 붉음에서 푸름으로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마음마저 들었다. 곧 닥칠 엄청난 결과들은 상상조차 못 한 채.


팀원이 있는 단톡 방에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모두 평소처럼 업무 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부서 임원과 전화통화를 했고, 그는 크게 동요하지 않으며 곧 인사팀에서 재택근무 조치하도록 연락을 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출근시간이 지나고, 나와 주중에 접촉한 직원들도 모두 퇴근 및 자가 격리하라는 대표이사의 지시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감염이 유력한(?) 본인과 주중에 사무실에서 함께 일한 직원들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중에 지인을 만나고,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금요일엔 퇴사자를 위한 실무진들끼리의 회식자리에 참석을 했다. 여기까진 너무도 평범한 일상. 지금은 그 일상이 특별한 원인, 즉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의 매개로서 같은 공간 머물렀던 직원들을 퇴근하게 했고, 대표이사를 분노하게 했으며, 잠시의 틈도 없는 카톡 세례를 야기했다.


이후에 이어진 연락은 대체로 지인이 검사를 받았는지, 언제 받을지, 검사 결과는 언제쯤 나오는지, 나는 증세가 없는지 등에 관한 것이었다. 결과가 나온다면 바로 연락 달라는 당부도, 한 두 사람으로부터 수시로 도착하는 이 연락 세례에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표이사의 노발대발은 하루 이틀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수시로 부서 임원과 여럿을 괴롭힌 모양이다. 결국 나와 금요일에 저녁을 먹었단 이유로 우리 팀 전원은 출근 30분도 채 안되어 퇴근했다. 코로나 감염 의심환자 접촉자의 간접 접촉자로서였다. 회사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수 조치였다고 생각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에 나는 회사에서 이미 슈퍼 전파자가 된 것처럼 난리도 아니었다고. 아직은 자가 격리 중인 보통 사람인 지인의 확진 결과가 나오지 않은 월요일 이른 아침의 상황이었다.


계속된 문자 질문에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혼란을 야기해 송구하다"는 말과, "지인의 결과가 나오면 바로 말씀드리겠다" 뿐이었다. 계속된 같은 질문들에 나중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 지인과의 관계를 물어오기도 했다. 마음이 비뚤어져서일까, 그들의 염려는 회사 업무의 중단과 이에 대한 손실, 이어질 방역 및 소독의 번거로움, 곧 있을 주주총회의 리스크, 건물주의 미움 등 모두 사(社)적인 것들을 향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엔 그런 염려나 조심성이 당연하다는 것도 이해됐다. 신기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의 감염자 혹은 잠재 전파자와 간접 접촉자 모두에게서 상반된 감정을 이끌어낸다. 확진자나 그의 가족은 사회를 대상으로 스스로부터 시작된 이 모든 난리에 대한 미안함 혹은 부끄러움이 앞서고, 혹여라도 접촉했던 주변인들은 원망 혹은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특유의 전염성으로, 바이러스 자체뿐 아니라 연관된 사람들 사이 불신과 반목을 '조심'이라는 포장으로 전파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퇴근하게 된 직원들이 나 덕분에 드디어 원하던 재택을 하게 되어 기뻤었다는 후기는, 내가 감염자가 아니라는 믿음? 아니면, 위로?)


Ep2. 잠재 전파자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결과가 '양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영국에 거주하던 사촌동생이 귀국해 우선 격리되어 검사를 받았는데, 또한 결과는 '양성'이랜다. 하루아침에 내 주위에 두 명의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이제는 연락 폭탄 때문이 아니라, 그 사실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처음 소식을 전해 듣고 이걸 어찌 알려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의심 환자, 그것도 가능성 낮다고 여겼기에 회사에 걱정하지 마시라, 평소처럼 업무 해달라, 만에 하나를 위한 조치이니 이해해 달라 라고 했던 스스로의 입장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사실과 다른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물론, 월요일 자가격리를 스스로 결정하고 재택 한 것은 해야 하는 일이었고 옳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회사 어르신들은, 좀 더 이른 시기인 무증상 귀국자를 접촉하면서부터 왜 좀 더 혜안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았었나를 질책하고 있었으므로, 순간 죄인이라도 된 마냥 위축되어 그 사실을 즉시 알리는데 주저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신기하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물론 알고 있었다. 가슴보단 머리가 시키는 대로, 회사의 팀원들, 부서 임원, 인사팀에 차례로 이를 알리고 바로 집 근처 선별 진료소라는 곳의 연락처를 찾아 연락했다. 지난 주중과 주말, 남미로부터 프랑스 파리를 거쳐 귀국한 지인을 만난 사실이 있으며, 그가 양성 판정을 받게 되어 나 또한 검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보건소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평상복 차림이지만 지금 내게 허락된 유일한 이동수단인 자전거와 헬멧을 챙겼다. 집을 나서 선별 진료소로 가는 그 길은, 더없이 맑은 하늘에 바람도 살짝 부는 자전거 타기 더없이 즐거울 날씨였지만, 나의 입장에서 그것은 사치였다. 레저 혹은 스포츠로만 도로에 나가던 자전거 입장에선 나와 함께한 시간 중 가장 의미 있는 주행이었을 것이지만, 나로선 그걸 감사할 마음의 여유도 없는 심경 복잡한 라이딩일 뿐이었다.


길은 잘 알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선별 진료소로 향하면서도 계속 드는 생각은, 지난주 지인을 만난 이후 내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최근 나도 잔기침이 도졌지만 기관지가 약한 내가 매 환절기 겪는 일로 괘념치 않았었다. 이제는 그 모든 단서들이 다 하나를 가리키는 듯했다.


'검사 결과: 양성'


지인이 미열이 있고 약간 몸살 같은 증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주말이었다. 그 전 주중엔 무증상이었고, 여행에 동행한 이도 증상이 없다고 하여 주말 이전엔 정말 만에 하나라도 그가 코로나 확진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평소와 같이 만나 식사를 했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회사와 나의 집에서 보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출근을 했고, 직원들과 일을 하고 식사를 했다. 우리 회사는 독특한 것이, 팀 별로 중식대가 지급되어 좋든 싫든 늘 팀원들과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 (아마 선택지가 있더라도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었을 것 같다.) 주말이 되기 전까진 이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목요일과 금요일에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토요일 낮에 이용한 카페, 좀 더 범위를 넓히자면, 방문한 편의점과 이용한 엘리베이터까지 모든 곳이 다 확진자 동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의미는 곧, 나 스스로가 나를 이미 확진자인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늘이 더할 나위 없이 맑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하늘 내음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이제야 깨닫는 사실이지만, 용산구청 옆 펜케이크 카페도 한동안 갈 수 없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선별 진료소에 가는 와중에도 회사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다. 아직 자전거 위라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선별 진료소에 도착했고, 뉴스에서나 보던 이글루 같은 하얀 천막과, 역시 하얀 방역복에 마스크, 고글을 쓴 의료진이 보였다. 얼마 전 보았던 좀비 시리즈물 속 안전지대의 모습 같았다. 그 시간에 방문자는 나 하나였다. 대기 없이 바로 문진표를 작성하고, 신분증 확인을 한 뒤 의료진 중 한 사람과 문진을 했다. 검사도 비용이 드는 일이므로 원한다고 다 해주진 않는다. 나의 경우에는,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이 인정되어 바로 검사가 진행되었다. 절차는 코와 목의 타액을 긴 면봉으로 채취하는 것으로, 복잡한 사태와 심경에 비해선 무척 간단했다. 그리고 하나의 서류를 받았다.


귀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제14호에 따라 '감염병 병원체에 감염되었다고 의심되는 사람' 또는 동법 제41조 제3항 제2호에 따라 '감염병 환자 등과 접촉하여 감염병이 감염되거나 전파될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해당하여 '격리 대상'임을 통지합니다.


이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등 형사상 법적 처벌이 가능한 명령서였다. 그래서 무거웠다. 이 통지문에는 이외에도 여러 준수사항이 적혀 있다. 요지는, 어디 나가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다. 일종의 자발적 자택 구금. 기한은 검사 시점부터 검사 결과 '음성'일 때까지, 결과는 48시간 내에 나온다 했으니 그동안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심리적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러한 서류상 통지 외에도 더욱 감정상 움츠러들게 했던 사실은 회사로부터의 지속된 연락이었다. 대체로, '회사가 지금 난리이다', '대표이사가 불같이 화를 낸다', '왜 금요일에 회식을 했느냐', '너 결과는 언제 나오냐'는 등의, 걱정에 기름 붓는 메시지들이었다. 지금은 그저 송구스럽다는 답변과 함께, 현황을 반복해 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가 뒤따랐다.


"이제, 너의 결과에 달려있네"


정말, 맘에 안 드는 상황이었다.


Ep3. 감정 지출의 대가


지인으로부터 듣자니, 보건소에서 차량이 와서 지정된 병원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 가족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본인도 거듭 미안하다며 검사 결과를 알려달라 했다. 나는 낙관도 체념도 아닌 묘한 기분에 낮 시간을 기계처럼 일 하고, 영혼 없이 TV를 틀어놓고 보냈다. 그리고 기나긴 몇 시간이 지나 저녁 여섯 시 무렵, 구 보건소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oo 구 보건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검사 결과'음성(이상 없음)'임을 알려드립니다.


검사 후 7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예상보다 빨라 놀랐고, 그 결과에 안심이 되었지만 이러저러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나 이외에 불안해하고 있을 가족, 회사,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가능한 가장 빠른 수단으로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동료들은 다행이라며 기뻐했고, 부서 임원과 회사 어르신(딱히 어찌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들은 '알겠다'며 짧은 답변 후, 상상도 못 했던 한 가지 조치를 전한다. 함께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던 동료들은 다음 날 정상 출근, 난 징계성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것. 이유는, '해외 위험국(?)에서 돌아온 지인을 무분별하게 만났고,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에 직원들과 회식을 했음'이었다. 하루가 지난 화요일, 난 이미 대표이사로부터 회사에 지대한 피해를 끼친 몹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의 결과가 '음성'이 나왔다고 해도, 지인은 가족의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는 격리 시설로 이송되고, 그 가족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하고 난처한 상황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불행 중 다행 속 '난리 유발자'로 낙인찍힌 나 또한 여러 이유로 심경이 복잡했다. 그러니 회사로부터의 조치는 왠지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시기에 조심은 아무리 해도 부족함이 없고, 또한 내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불안하게 했으며, 그들이 잠시나마 재택을 하게 된 이 모든 사건의 트리거(trigger)였던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좀 너무한 조치같이 느껴진 것이, 나름 조심했던 나의 일상에 만난 지인과의 저녁식사에, 당시엔 그것을 유추할 단서가 충분치 않았고, 아직은 이른 시기인 목요일과 금요일엔 평소처럼 회사와 집을 자가용으로 오갔을 뿐이며, 평소와 같은 일상 끝 주말에 들려온 지인의 '증세'라는 단서에 최대한 조심한 조치로 '자가 격리' 하게 됐으니, 그 모든 불안함과 미안함이 억울함으로 바뀌게 된 나름의 이유는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하마터면 지인이 외국 현지에 발이 묶이거나 공항에서 격리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의 무사 귀환이 다행이라 여겼었다. 나중엔, 주말에 알게 된 그의 증상이 그저 감기이길 바랬다. 지인이 검사를 받고 난 후엔 나를 비롯해 그와 관계없는 회사의 모든 이들조차 그의 검사 결과에 주목했고, 나는 음성인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기던 이 모든 과정 중 묘하고 복잡하게 연결된 선 중 끝 모를 가장 끝단을 찾아 잘라내는 일이 마치 폭탄 해체작업 같이 긴박하고 초조했다. 안도와 바람이 마치 사막의 일교차 같았고, 그 온도차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지만,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했던 대처가 당시의 최선이길 바랬던 이틀. 죄인 취급을 받게 될 수 있어도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고 스스로 자가격리를 한 일이 그랬고, 지인 확진 직후 그 사실을 주위에 알린 일이 그랬고, 선별 진료소로 자전거를 타고 가 검사를 받은 것이 그랬고, 검사 후 귀가해선 한 발자국도 문 밖을 나서지 않은 사실이 그랬으며, 결과 '음성' 이후에도 주위에 신속히 알려 그들을 안심시키는 일이 그랬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코로나 대 유행은, 나와 내가 속한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Source: Time)



인식 전환의 단꿈


모든 바이러스는 감염되면 아프다. 누군가 아프면, 대체로 주변인들은 그의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코로나는 다르다. 환자로 의심되면 우선 그의 일상은 무분별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평가된다. 그와 만났던 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저 일상처럼 흘러가는 하나의 작은 이벤트이지만, 그가 감염자가 되면 그를 만난 선택조차 접촉자에겐 하나의 과오로 남는다. 더 조심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굴레. 재택을 권장하지 않고, 임원들은 마스크를 단 한 명도 착용하지 않은 채로 회의를 소집하며, 직원들 모두와 점심 식사를 하라고 하는 비 이성적 회사는, 한 직원의 조심하던 일상에 발생한 비 일상적 이벤트에 순간 이 성적이 되어 아주 현실적인 책임을 묻고 있었다. 회사에 실제로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더라도, 점심을 함께 먹은 직원과의 저녁식사 등을 문제 삼아 이미 지불한 그들의 두려움 혹은 귀찮음이라는 감정적 손실의 대가를 바라는 셈이다. 기꺼이 따르겠으나, 납득이 잘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는 유행이다. 팬데믹(pandemic) 이란 표현이 그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시류는 어찌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신경 쓴다 해도, 그 시류는 그렇게 흘러가고 그렇게 종식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유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해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내가 타는 버스에도, 가는 편의점에도, 밥 먹는 식당에도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떠돌 수 있으며, 의외로 옆사람이 이미 무증상 보균자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 유행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 상식과 한 가지 인식에 있다. 일상 속에서 최대한 조심하되, 내가 증상이 있거나 확진자와 접촉했다면 (마치 미투처럼) 빨리 적극적으로 알리고 철저히 격리하는 것이 상식이고, 그것을 알리는 사람을 '죄인' 혹은 '병균' 취급하지 않는 것이 바른 인식일 것이다. 자체 역학조사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조장하거나 과장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는 하지 않아야 한다. 회사에서의 그러한 인식은, 인식이 있는 누군가가 주도해야 하며 그는 대체로 '리더' 일 것이다.


나에게 다가올 위험을 내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조심할 수는 있다. 평소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한다거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자주 소독하는 등 사전 예방과, 증세가 있는 경우 자가 격리를 하는 등 일종의 원칙에 기반한 행동수칙들이 대표적이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겪고 있는 일이라면, 안 그래도 힘든 시간일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있다. 원망 또는 책임전가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 일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한 인식이 여전히 단꿈에 불과하더라도, 대 유행인 바이러스가 일상인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와 같은 배려라는 것을 많이 느낀 이틀. 가족 중 유증상자가 나오자 모두가 잘 대처해 당사자 외 가족은 모두 안전한 것에 감사한 와중에도, 여전히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는 확진자의 격리 치료기간은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 모두에게 겪어내기 힘든 기나긴 시간일 것이므로.


공항도 폐쇄 (source: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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