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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네디 Aug 04. 2023

영상의 시대, 생각의 부재 그리고 사라지는 연필과 종이

처음 블로그를 개설하고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처음 잠깐 깨작대다가 방치하고 10년이 흐른 얼마 전부터, 한편으로는 지루함에서 오는 공포감을 달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기 위해 글을 썼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글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게 그리 절실해서였는지, 인플루언서들을 포함한 많은 블로거, 아니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읽고 싶은 글보다는 사진으로 공간 대부분을 덕지덕지 채우는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최소한 왜 생겼는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얘기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도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려고?'


시대의 요구에 못 이겨 결국 나도 블로그 영향력 향상을 위해 사진을 덕지덕지 올려야 했다.

물론 나는 내용을 담으려 했다. 내가 아는 만큼, 최대한, 아니 더 찾아서.

사진,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Video가 Radio Star를 죽인 지도 오래전. 이제는 그 Video의 힘이 글의 영향력까지 죽이며 점점 인간의 생활 전반을 잠식해 가고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읽는 것, 쓰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예쁘게, 맛있게 찍힌 사진과 영상을 보며 하는 상상은 반쪽 짜리.

예쁜 풍경을 묘사하고, 맛있는 음식의 향을 가득 품은 글을 읽으며 하는 상상은 온전한 하나.


사람을 구별 짓는 요소는 생김새뿐만이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

데카르트 형님은 스스로가 못생겼음을 아셨기에 그 말을 하신 게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못(잘) 생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지 않으셨다.


생각, 사람마다 다른 생각


생각은 상상과 연상의 상위 개념이다.

유튜브와 블로그의 영상, 사진이 우리의 상상과 연상 기능을 저하시키고 있다.

즉, 생각을 갉아먹고 있다.

나 대신 무엇을 해주는 건 고맙다.

하지만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건 장기적으로 내게 도움 될 리 만무하다.

매일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 그리고 방학마다 해야 하는 탐구생활, 방학 숙제를 우리 엄마가 대신해 주셨다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다.

우리 엄마가 나 대신 연습장을 깜지로 만드는 노동을 대신해 주셨다면 나의 외국어 실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고작 몇 초 사이 사유만으로도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남이 대신하면 장기적으로 내게 도움 되지 않는다.'라는 나의 명제를 입증했다.

생각의 힘은 이토록 대단하다.

그 힘을 키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내가 가장 큰 효과를 본 건 글 읽기다.

절대 사진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뜨거운 우정으로 친구가 내게 준 사진, 남몰래 봤던 그 야한 사진이 지금의 내 올바른 성생활에 무슨 도움을 주었을까?

(이건 물론 비약이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내가 사진으로 사유의 힘을 기른 흔적은 찾기 힘들다.

유튜브 영상?

지들이 다 알려주는데 무슨 '깊은 생각'을 하겠나?

TV 프로 '문제적 남자'의 일부를 따 옮긴 유튜브 영상을 봤다.

일시정지를 누르고 출시된 문제의 답을 찾으려 애썼다.

허공에 그리고, 떠올리고, 휘갈겨 보지만 잡지 못할 뜬구름이요 뜬구름 잡는 격.

답답한 마음에 주위를 훑었지만 필기구와 연습장은 자취를 감췄다.

하얀 도마 위에 고추장으로 그릴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일시정지를 풀고 '빨리 감기' 연타 이후 답을 확인했다. '연필 하고 연습장만 있었으면 내가 무조건 맞췄다.'라는 개소리를 내뱉으며.


그래, 어느새 책상 위에 연필과 연습장 없어도 큰 지장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그것을 담을 필기구도 필요 없는 세상.

그러다 보니 덩달아 글 마저 사라지는 세상.


어느 날부턴가 '손 편지'라는 말이 돈다.


'발 편지도 있던가? 왜 굳이 손이라는 글자가 하나 더 붙게 된 거지?'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더해진 그 '손'.

'친히 손 편지' 혹은 '손 편지까지 쓰며'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제 그런 세상이다.

지금도 불만인데 앞으로가 더 걱정.


'손' 글씨는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한' 생각, 내가 찍어낸 '글' 읽어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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