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네디 Aug 04. 2023

CHAT GPT, 유나바머가 떠오른다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Unabomber, Theodore John Kacynski)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 1942년 5월 22일 ~ )는 미국의 수학자이자 테러리스트이다. 전형적인 백인 가정에서 자라나서,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에서 학사, 미시간 대학교 대학원 수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수학과에서 2년 동안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망치는 주범이라 인지하고 그에 맞서 싸우려는 시도로 17여 년간 사업가, 과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편지 폭탄을 보내서 3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유나바머"(Unabomber, university and airline bomber)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대학 다니던 시절 그가 벌인 사건, 체포, 판결을 알리는 뉴스를 귀담아들으며 이름을 익혔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무슨 연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이름으로 검색해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넷플릭스에서 그의 범죄를 다룬 미국 드라마 맨헌트유나바머를 단숨에 봤다.


출처 : NETFLIX


1995년, 그는 희생자들과 유명 언론사에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라는 선언문을 보내고 언론이 이를 보도한다면 폭탄테러를 멈추겠다고 선언하였으며, 결국 같은 해  9월 워싱톤 포스트에 특별 기고문 형식으로 출판됐다.

산업혁명 이후 이어지는 기술사회에 대한 비판이 주 내용이었던 그의 글은 다섯 가지의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그중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현대 기술은 인간 생활에 공존하는 동시에, 인간 통제에서 벗어난 자기 영속적 ‘체제’이다.

2. 인간은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 기술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3. 기술 체제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인간성의 상실  또는 기술체제에 완전한 예속)




CHAT GPT 그리고 인공지능


이런 광고 글이 많다.


알 필요 없는 것들의 범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알 필요 없는 것들이라 하였으나 누구에게는 암흑 속 한줄기 빛, 목표를 오르는 동아줄,

유튜브, 블로그로 수익 내는 방법, 인플루언서가 되는 방법 등에 대한 강의 등이 바로 그것.


수준 낮은 포스트는 그들의 한계이자 한편으로는 노력이기에 내 수고스럽더라도 '좋아요'나 '공감' 눌러 줄 성의 정도는 있지만, 저런 가치 없는 광고성 포스트를 향해서는 정말 욕밖에 해줄 말이 없다.


챗 GPT에 대한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쉽게 돈 버는 방법"을 잘 안다면 왜 남에게 알려주려는 걸까?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신만이 아는 그 기술로 본인이나, 본인 친구, 가족이나 잘 벌면 될 일, 왜 굳이 저런 자비를 펼치는지?


무료강의를 통해 얻은 명성으로 벌 수 있는 돈 vs 자신의 강의 내용을 통해 블로그로 벌 수 있는 돈


속셈 뻔히 들여다 보이는 '자비롭지 않은 자비"

뭐 그렇다 치자.


"포스팅하기 힘드셨죠? 이제 쉽게 할 수 있어요."


어떻게? 챗GPT로?

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의역하자면 훈련된 대화 생성기.

챗GPT에 대한 뉴스를 처음 접한 날,

로봇챗, 챗봇으로 불리는 벽창호들과의 상담에 고개 저으며 그냥 쓰던 거 쓰거나, 하던 거 해야 했던 불쾌한 경험이 떠올랐다.

그래, 세상이 편해지고 있다.

하지만 누구처럼 '좋아지고 있다'라는 말은 못 하겠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3패 이후 1승을 거둔 이세돌,

아나운서는 환한 미소와 함께 그 소식을 알렸다.


"인간이 이겼다."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이 기계와 다섯 번의 대결에서 꼴랑 한 번 이겼다."


7년이 흐른 오늘날, '더 이상 인간은 바둑으로 인공지능 AI를 이길 수 없다'는 명제는 참이 되어 버렸다.

기계의 관점에서 보자. 기계가 복잡한 계산을 대신해 주게 된 이래로 인류 문명은 인간이 아닌 기계 발전에 의해 진보, 향상되고 있다.

다시 말하건대,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 기계의 관점으로 보자면 우리가 기계를 위해 일하고 있는 꼴.

바둑대결에서 기계가 인간을 이기게 하기 위해 인간이 기계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이 멀어진 사이 동네 기원은 사라졌다.

바둑판과 바둑알을 만들던 이들의 수도 극히 줄었다.

그렇게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도맡으며 일자리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

인간이 기계를 발전시키며, 인간이 하던 일이 사라지고 있다.

쓸쓸히 하던 일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 참으로 역설적인 모습.

그렇게 육체적 노동이 사라져 가는 것도 서러운데 정신적 노동마저 잃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못해 슬퍼진다.

챗GPT가 세상에 알려진 후 사람들의 반응을 보자니 슬픔을 넘어 공포감 마저 든다.

챗GPT를 통해 문제를 내는 교수, 챗GPT를 통해 숙제하는 학생 그리고 챗GPT를 통해 블로그 수익을 꾀하려는 이들.

십분 양보해 육체적 노동을 기계가 대신해 주는 모두를 '편리'라 하겠다.

나 역시도 이런 녀석들이 고마울 때가 있으니.



참고로 나는 지금 필리핀에 살고 있으며 이 나라의 느려터진 ATM님 되시겠다.

그렇다면 정신적 노동을 인공지능 AI가 대신해 주는 상황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되는가?

그것도 편리라 해야 하는가? 편하고 이롭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시와 소설을 쓴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린다.'

'인공지능이 작곡을 한다.'


인간의 숭고한 사유 그 총체인 철학, 문학, 예술.

그것들이 바탕을 이룬 오랜 세월의 인류 문화가 인공지능이라는 신기술에 의해 일순간에 무시되어 버린 느낌.


적당함의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인 것 같다.


이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에서 키보드 치며 인식하는 수준의 동물로 전락하기 일보직전에 있다.

그 인식과 평가마저 인공지능이 대신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편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양보한 인간의 미래 모습, 나는 이미 영화 매트릭스에서 봤다.

기계들이 그들의 '역사'를 이어나가기 위해 사용했던 인간의 생체에너지,

기계가 만든 매트릭스라는 공간에는 정신, 생체열에너지 발전소의 작은 셀에는 육체가 갇힌 체 생명이 유지되던 인간.

그 모습이 결코 과장이나 비약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문제일 뿐.

46억 년 역사를 가진 지구에서 이제 고작 400만 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진 인간이 '편리함'이라는 '찰나적 이유' 즉,  편리라는 만족감 아래 문제의식을 감추며  스스로의 터전을 오염, 파괴시키고 있는 오만방자함을 지켜보자니 더욱 확고해진다.

집을 버리고, 생각마저 버리려는 인간.


반문명 테러리스트라 불렸던 유나바머, 시어도어 존 가진스키의 행위를 절대 공감, 인정할 수 없으며 그의 생각 모두를 받아들이는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 3가지 주장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적 논리에서 벗어나 인류 문명의 연속성이라는 주제하에 반드시 조명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1. 현대 기술은 인간 생활에 공존하는 동시에, 인간 통제에서 벗어난 자기 영속적 ‘체제’이다.

2. 인간은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 기술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3. 기술 체제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인간성의 상실  또는 기술체제에 완전한 예속)


90년대 어느 한 교육회사의 CM (commercial message)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어린이가 아닌 인류 전체를 향한 message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성을 내어주며 얻고자 하는 편리, 그 적당선을 그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필리핀으로 여행 오신다면 꼭 추천드리고 싶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