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있다는 것의 함정

그리고 왜 나는 다시 글을 쓰는가

by 잉여력만렙 휴미씨

아주 오래전 일이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 이게 부모님들께 얼마나 돼먹지 못한 꿈이었냐면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의 꿈은 대통령, 과학자, 군인 혹은 경찰 같은 거였고, 만화가는 굉장히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요즘은 게임이 아이를 망친다고 하는데 그 시절은 만화가 아이를 망친다고 하는 이상한 시대였다.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만화책을 쌓아놓고 불태우는 화형식도 횡행했다.


그래서 나의 공식적인 꿈 명함은 ‘선생님’이었다. 어른들이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선생님’이라고 대답하면 용돈을 후하게 받을 수 있지만 ‘만화가’라고 하면 그때부터 훈계를 들어야 하니까. 만화가라는 꿈은 내 마음 깊숙이 숨겨놓고 들키면 안 되었다.


사실 그림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었다. 밤새 만화를 그려서 학교에 가져가면 친구들이 줄을 서서 보곤 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건 아니고 기존 만화책을 베껴가며 습득한 터라 기본기가 탄탄하지는 않았다. 얄팍한 재능, 정확히 말하면 잔재주인데 그것만 믿고 기본기를 다질 생각을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기본기가 없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피했던 것일 수도 있다.


군대를 전역하고 그림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생겼다. 동네 미술학원 선생님이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하는 몇 명을 대상으로 무료 교습을 해주셨는데 그 그룹에 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엔 내 실력이 월등했다. 선생님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얄팍한 재능에 취한 나는 제자리걸음이었고 다른 학생들의 실력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나는 배움을 포기했다.


나는 늘 그런 식이었다. 노력보다 재능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재능의 한계를 보이면 노력하기보다 포기가 빨랐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자기 계발에 더 목을 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자기 계발에 집중하는 이유는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의 다디단 열매를 맛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글쓰기다. 남들 하듯 처음엔 N사의 블로그를 개설하여 시작했다. 티스토리도 얼마 전 만들었다. 유튜브 같은 영상의 시대에 아직도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 걸 보고 자극을 받았다.


더구나 챗GPT의 등장.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챗GPT의 의존도가 커짐에 따라 내가 글을 쓰기보다 챗GPT가 써주는 대로 올리면서 마치 내 글인 양 뿌듯했다. 다른 블로그들을 둘러봐도 대부분 챗GPT가 쓴 글 천지다. 개성도 없고 진정성도 없는 글들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고 정말 제대로 해보기 위해 브런치에 문을 두드렸다.


물론 챗GPT의 글쓰기는 매우 뛰어나다. 내가 쓰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하지만 그것은 나의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말로만 자기 계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온 힘을 다해 노력한 것을 쟁취하고 싶다. 챗GPT가 떠먹여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제 더 이상 그 옛날 조그만 화실에서 도망쳐 나오지 않을 거다.


서툴러도 내가 눌러쓴 글이 좋다. 아마 브런치는 그런 공간일 것 같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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