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은 성공이 아니라, 삶을 묻는 태도였다.
창밖에선 빗소리가 조용히 어둠을 두드린다. 아직 밖은 어둑하다. 새벽에 눈을 뜨는 일이 이제는 익숙하다. 이게 습관인지, 루틴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시간만큼은 내게 소중하다는 것이다.
코로나는 모든 사람의 일상을 멈춰 세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끝자락에는 더 쎈 놈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시기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결국 문제였다.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의 공포 속에서 급격히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IMF 시절보다 코로나 이후의 매크로 환경이 나를 정면으로 덮쳤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무력감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돌아보면, 내가 그동안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내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제 환경이 좋았고, 운이 따랐을 뿐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했지만, 예측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나는 너무나도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누구를 원망하랴. 나의 세계는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자기 계발을 '엑시트'의 다른 말이라고 여겨왔다. 자기 계발의 종착지는 성공이다. 목표는 코앞이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금흐름을 만들었고, 내가 꿈꾸던 사업을 시작할 종잣돈도 곧 마련될 상황이었다. 엑시트. 오랜 시간 이어진 자기 계발도, 이제 여기서 끝나길 바랐다. 그렇게 나는 '도착'을 믿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큰일들을 겪고 보니, 자기 계발은 엑시트나 성공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자기 계발은 어쩌면, 내적 성장이 아닐까. 성공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매일 나를 갱신하려는 노력. 도착이 아닌, 과정 그 자체. 과정, 여정, 여행 - 어떤 단어를 써도 좋겠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자기 계발은 내가 늘 좋아하던 철학이었다. 삶을 묻고, 삶을 관찰하고.
그래, 당신이 맞다. 그냥 살아도 된다. 자기 계발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충분히 잘 살고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 계발은 '선택'이다. 복잡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나만의 질문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은가. 나의 목표는 바뀌지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벼랑 끝의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그네에 비유했다. 기어오르면 맹수가, 손을 놓으면 뱀이 덮치려는 절체절명의 상황. 나그네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 끝에서는 꿀이 흘러내린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그 찰나의 달콤함으로 버티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라고.
그 찰나의 달콤함, 그것이 철학이고, 자기 계발이 아닐까.
어느새 비는 잦아들었다. 사방이 고요하다. 빗소리를 따라 흔들렸던 내 마음도 고요해졌다.
장마가 끝나면, 별을 보러 갈 생각이다. 별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칸트의 말을 되새겨보려 한다.
"저 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