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상황에 자신을 맞추는 나에게
꾸역꾸역...
나는 상황에 스스로를 맞추는 스타일이다.
쉽게 말하면 상황을 욕하기보다는(안 한다는 건 아니다!) 문제를 혼자 짊어지고 손해를 좀 보더라도 자신을 희생하며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을 활용(?)하거나 관련된 문제를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을 꺼린다. 대신 스스로에게 집중, 집착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방법을 택한다.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들어도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내 성향이고 성격이다.
예전에는 이런 성격이 싫어서 고민도 많이 하고 변화 시도도 해봤지만 잘 바뀌지 않았다. 안 고쳐지는 성격 붙들고 자신을 괴롭혀봐야 말 그대로 괴롭기만 할 뿐이었다. 타고난 성향은 웬만한 큰 충격과 사고(?) 아니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이 고쳐쓰기 힘든 존재인 것은 스스로에게도 적용된다. 남들이 보기엔 미련하고 요령 없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타인의 시선과는 별개로 나는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다]
나를 고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속한 상황/구조을 바꾸는 건 어떨까?
그러다가 상황에 나를 억지 끼움 하기보다는 성격에 맞는 상황을 구축해가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에 맞춰 자신을 바꾸는 일은 너무 자기배신적(?)이기 때문이다.
일단 상황 혹은 구조에는 여러 범주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화, 사회, 국가 등의 인위적 조직과 체제부터 지역, 계절과 기후 등의 자연환경까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데 자신도 고치기 힘든데 어떻게 상황을... 어떻게 구조를 고치나...
거창할 필요 없이 바람에게 머물라 강요하기보다 떠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면 어떨까?
기본적인 성향이 엉덩이가 가볍고 하나에 집중이 어려운 사람에게 가만히 앉아 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걸 강요한다면 그야말로 고역이고 어떤 의미에선 괴롭힘에 가깝다. 내 생각에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은데 가벼운 엉덩이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그런 가벼운 엉덩이는 공부 강압(?)주의와 성적 제일주의 구조 속에서는 부적절한 사람으로 취급당할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역마살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성향을 삶에 유리하게 작용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사실만 말하는 편안한 분위기 조성]
말로는 그럴듯해도 현실적인 문제는 늘 있다.
물론 헤비(Heavy) 엉덩이 기조에 반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는 마냥 피하거나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그런 구조적 환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기회를 찾는 것이 옳은 듯하다. 당장 뛰쳐나가기보다는 그 안에서 숨 쉴 틈을 찾고 활로를 넓히는 것이다. 그런 노력들이 결국 조금씩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당장은 벗어날 수 없는 환경과 피할 수 없는 구조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작은 여지라도 더 만들고 길게는 상황 자체를 변화시킬 덩치를 키우게끔 오히려 구조를 활용하는 건 어떨까? 물론 내 스타일로 말이다. 남들이 내 성격과 성향을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하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이고 그걸 스스로 문제 삼지 않으면 그대로 충분하다. 자신을 알고 이해한다면 좀 더 주도적이고 당당하게 상황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