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해골물인지 몰랐죠. 마실 땐 그저 시원한 물이었죠." - 원효 (유학 가던 승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했던 일들이 알고 보니 사실은 좋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삶에 참~도움이 되는데 설명할 길이 없네." 이런 느낌의 이야기를 들어면서, 주변 친구들이 다들 취업을 하니 아무런 생각 없이 지원하고 회사를 다녔다.
다녀보니 썩 나쁘지 않았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는데 이유가 있었어!'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하고 그렇게 사니까...
시간이 지나 뼛속까지 회사형 인간으로 살던 내가 문득 '내가 마시고 있는 이 물이 혹시...?' 라는 의문을 가진 건 회사 내에서 내 성과가 높이 평가되던 시기였다. 회사에 도움이 되는 뭔가 이루었고 고생에 대한 박수를 받던 그즈음, 나는 오히려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걸 위해서 그렇게도 회사일에 매달렸던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회사에서 조금 떨어져 내 삶 전체를 보기 시작했다. 삶 전체로 바라본 내 생활은 실망스러웠다. 주말부부로 살면서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것도 모자라 계속 야근을 하는 상황이고 주말에는 피로감에 쉬기 바쁜 나날이었다. 회사일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책임져야 할 영역은 커지고 있었다.
내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회사를 다녔는데...
잘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진짜 내 삶은 점점 파괴되고 있었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세상을 사는 이야기이지 회사에서 일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결과적으로 회사를 위해 살았던 내 삶이 점점 길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몇 일짜리 휴가로는 안될 것 같아서 1년 휴직을 했다.
1년 쉬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질문들...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등등 철학적인 물음들이었다. 물론 이런 질문에 정답 따윈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누군가 적어놓은 답안지 보기 중 선택이 아닌 내 자신의 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똑 부러지는 답 같은 건 없다. 오히려 깨닫게 된 건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나름 스스로 이해한 것은 삶이 사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왜 입사하고 회사를 다니는가? 근본적인 이해와 질문 없이 기계처럼 다녔고 회사가 내 삶의 중심이 되도록 방치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에도 업무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쌓여있는 이슈와 풀어야 할 문제들이 나를 압박했다.
회사 생활도 결국 삶의 일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인간답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 돈을 버는 방법 중 하나가 회사에서 일을 해주고 보상을 받는 것일 뿐이다. 결국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주객이 전도되어선 안된다. 시간이 내가 가진 자원이라고 한다면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내 자원(시간)을 파는 곳이다. 예로부터 많은 위인들이 시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그 비싼 걸 쥐꼬리(?) 월급으로 바꾸고 있다.
이제 다시 삶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생각해 보면 회사는 내 삶의 해골물이었다. 과도한 회사 지향의 생활은 내 삶 전체를 돌아볼 기회를 줬고 삶과 회사의 의미를 재정의하도록 도움을 줬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마시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라는 점이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삶에서 회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삶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는 삶의 길을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삶에 대해 질문하고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길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삶 전체 관점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계속 삶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
혹시 지금 해골물을 마시고 있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