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우리 안에 숨어있는 폭력과 어둠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초임교사시절 복도에 앉아 책에 흠뻑 빠져있는 12살 어린이에게 물었다.
“00아, 너 책을 참 열심히 읽는구나. 무슨 책이니?”
그러자 매우 당황한 얼굴로 책을 황급히 숨기면서 말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에요.”
그런데 그 옆에서 슬쩍슬쩍 친구의 책을 넘겨보던 아이가 끼어들었다.
“보지 말라고 하세요. 이거 되게 폭력적이고 야한 책이에요.”
12세 아이들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보던 그 책은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만화이지만 그 출전이 고전인지라 학교 도서관에도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과 불륜으로 가득 찬 신들의 이야기는 아이들 눈에 좀 그렇고 그런 책으로 느껴진 것 같다. 몇몇 부모들 역시 다르지 않아서 폭력성과 선정성을 이유로 아이들에게 금하고 있었다. 신화를 그저 재미로 읽는다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으니 그런 평가가 이해는 간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혼외 자식을 줄줄이 낳고도 반성의 기미가 없고, 헤라는 또 얼마나 잔인한가. 신들에겐 윤리적 감각이 없으며 스토리는 완전 자극적이다. 그중 압권은 단연 창조신화다.
카오스(혼돈)에서 가이아(대지)가 생겨나고 가이아는 우라노스(하늘)를 낳았다. 이어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 여러 티탄(거인)족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가이아와 떨어지기 싫어했기에 자식들은 어머니의 몸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가이아는 이를 참다못해 우라노스를 공격할 낫을 준비하여 막내인 크로노스에게 쥐어주었다.
거대한 우라노스가 밤을 끌어올리며 다가와 사랑을 바라고/ 사방으로 뻗으며 가이아 위에 자신을 펼치자,/ 그의 아들이 매복처에서 왼손을 내밀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길고 이빨이 날카로운 거대한 낫으로/ 친아버지의 남근을 재빨리 자르더니/ 아무 데나 날아가라고 등 뒤로 던져버렸다.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176~181행)
우라노스는 깜짝 놀라 대지에서 멀리 떨어져 높은 창공에 머물게 되었다. 하늘이 그렇게 대지에서 떨어지자 가이아의 품속에서 티탄들이 나와 땅의 주인이 되었다. 그 중 권력을 장악한 신은 당연히 크로노스였다. 그의 운명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으나 그 성격이 좀 달랐다.
크로노스는 자매인 레아와 결혼하여 다섯 자식을 낳았는데 낳는 족족 아이를 삼켜버린다. 자기 자식이 그의 권좌를 빼앗을 거라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크로노스는 정치적 인물이다. 우라노스가 그저 에로스적 욕망에 사로잡혀 자식이 나오는 것 막고 있었다면 크로노스는 권력욕 때문에 자식들을 삼켰다. 권좌에 대한 욕심은 왕좌를 빼앗기진 않을까 하는 근심을 낳았고, 그를 자식을 잡아먹는 괴물로 만들었다. 그런데 왕이 괴물이 되면 최측근이 반란을 꾀하는 법이다. 신화에선 크로노스의 어머니 가이아와 아내 레아가 그 역할을 맡았다.
자식을 삼켜버리는 것을 보다 못한 레아는 가이아와 함께 계략을 꾸몄다. 여섯 째 아이를 낳자마자 대지의 깊은 곳에 숨기고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준 것이다. 크로노스는 그것을 보지도 않고 삼켜버렸다. 정신없는 포식자. 그는 다음세대에게 물려주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사이 숨겨진 아이는 강하게 자라나 아버지와 전쟁을 벌이는데 그가 훗날 신들의 왕이 되는 제우스다.
제우스는 이전 신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녔다. 그는 문명인이자 세련된 정치가다. 완전히 성숙해진 제우스는 아버지를 거세하고 자식을 삼켜버린 크로노스가 벌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전쟁의 명분을 먼저 확보한 그는 신중하게 작전을 짠다. 제우스는 일단 어머니를 통해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여 뱃속에 있는 형제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자기편이 될 만한 티탄들도 포섭한다. 야만적인 타탄과 전쟁을 위해서는 문명인에게는 없는 괴력도 확보해야하기 때문이다. 외눈박이 키클로페스와 100개의 팔을 가진 헤카톤케이르가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키클로페스는 제우스의 주무기 번개도 만들어 주었다. 전쟁은 열 겁의 세월동안 이어졌고 제우스와 형제들이 마침내 승리했다. 이 뒤 제우스의 행보가 흥미롭다.
제우스는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갔다. 그는 형제들과 제비뽑기를 해서 세상을 나누어 통치하기로 한다. 그 결과 포세이돈은 바다, 하데스는 지하, 제우스는 하늘을 각각 관장하게 되었고 대지는 공동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그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티탄들의 권한도 보장해 주었고 자신을 도운 신들에게는 그에 맞는 특권을 부여했다. 세상의 질서는 그렇게 이룩되었다. 야만에서 문명에 이르는 길은 이리도 잔인하고 험난했다.
히브리 사람들의 창조신화와 비교해 보면 그리스신화의 특징이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창세기에서 세상은 태초에 신의 말씀에 따라 창조된다. 신의 선한 의도로 하루하루 새롭게 생겨난 세상은 질서 잡힌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스인들은 이와는 반대로 세상의 창조과정을 무시무시한 대립과 투쟁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제우스가 계책과 정치력과 완력으로 야만을 제압했다고 해서 완전한 평화가 찾아 온 것도 아니었다. 세상의 다른 한편에는 카오스와 그의 자손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모이라이), 죽음(케레스), 불행(에스페리데스), 복수(네메시스), 불화(에리스), 분노(에레니스), 망락(레테), 등이 카오스에게서 나온 신들이다. 카오스는 올륌푸스의 신들로 대변되는 밝은 세계의 그림자처럼 세상 저편에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이 그리스인들이 인식한 세계였고 신화는 이렇게 우리 안에 숨어있는 폭력과 어둠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비오고 어두운 어느 날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난 그리스 신화를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