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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Jul 27. 2017

염상섭, 만세전

너 자신을 구하여라

염상섭 :  http://blog.daum.net/yoont3/11301869

염상섭의 본명은 상섭(尙-높다, 숭상하다, 燮-불꽃)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큰 이름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필명을 상섭(想-생각하다, 涉-건너다)으로 썼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통과하며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린 작가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사는 곳을 옮기든, 여러 직업을 오가든 ‘건넌다는 것’은 늘 생각을 동반하는 행위였으리라. 게다가 일제 강점기, 그 혼돈의 시간을 살았던 지식인에겐 털어 버리기 어려운 사이 있었을 것이다. [만세전]은 바로 그 번뇌 가득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정신적 창부


소설의 주인공 이인화는 조선에 어린 아들과 아내를 두고 일본으로 건너 온 유학생으로 가족들 소식이 담긴 편지보다는 용돈을 더 기다리는 그냥 그런 청년이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의식 같은 건 없다. 문학을 전공하고 싶으나 쓸모 있는 걸 전공하라는 집안의 요구로 갈등 중이다. 그런 사내에게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와 용돈이 한꺼번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시점이 참으로 절묘하다.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이었다. (…) 내가 동경에서 떠나오던 날은 마침 시험을 시작한 지 제2일 되던 날이었다.     


식민지 조선에는 3.1 만세라는 봄이 오지 않았고, 학생인 주인공은 시험에 갇혀있었다. 하필 그때 아내는 죽어가고 그의 손엔 돈이 주어졌다. 그는 우선 교수에게 달려가 사정을 이야기하여 시험을 미루고 술집으로 달려간다. 정자를 보기 위해.


정자는 조선인 술집 창부다. 예쁘장한 외모를 지닌 그녀는 고등여교를 3년이나 수학하고, 소설이나 잡지도 읽을 수 있었기에 어떤 손님이든지 그녀를 찾았다. 이인화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다른 손님과 차이가 있다면 P자라는 창부도 늘 함께 부른다는 것이다. P자도 정자도 이인화가 정자에게 더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는 번번이 두 여인을 불러 놓고 마음을 떠보고 농을 한다. 아름답고 세련된 여인을 마음에 두고 그렇게 희롱하는 자신의 모습이 주인공 스스로도 맘에 들지 않는다.      


정자 앞에서도 P자를 귀여워하는 체하고, P자의 손을 잡은 뒤에는, P자가 보는 데서 정자의 비위를 맞추려 하는 체하는 그런 더러운 심리는, 창부보다 낫다하면 얼마나 나을까. 자기에게 창부적 근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창부시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적 창부! 그것이 타락이 아니고 무엇일까. 일 여성을 사랑할 수 없을 만치 타락하였다. 그리고 정신적 타락은 육체적 타락보다도 한층 더 무서운 것이다. 타락이라는 것이 어폐가 있다 하면, 그만큼 사람 냄새가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 옳을까. …… 하지만, 사랑이니 무어니 머릿살 아프다.      


이인화는 사랑에 들뜰 수도 없고, 우국지사도 될 수 없다. 7년간의 유학 생활 동안 민족이니 정치니 하는 문제는 잊혀졌다. 총독부와 연결된 가족이 있어 주인공은 일제의 압박과 학대를 경험하지 못했다. 자기 시대를 향한 분노가 없는 자는 이념도 사명도 없다. 조국의 문제와 집안의 기대, 학문적 호기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신적 창부’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열정도 반항심도 품을 수 없는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여인들을 희롱하거나 유학생의 시선으로 조선인의 고루함을 비판하고, 조선인의 심정으로 일본인의 이기심에 짜증을 느끼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에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 스스로 자신이 밑바닥에 이르렀다는 걸 자각했다는 것이다.     



묘지를 경험하다


1920년대 부산항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print.do?levelId=km_022_0070_0020_0030&whereStr=

주인공은 죽어가는 아내를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애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남편이기에 가는 것이다. 동경(東京)에서 부산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여정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항구에선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심검문을 당하고. 욕탕 안에선 조선인들을 쿠리(苦力-노동자)로 팔아넘기려는 일본인 알선업자의 대화가 들린다. 조선인이라는 걸 드러낼 수도 없, 담담하게 여정을 즐길 수도 없다. 그렇게 불쾌한 항해를 마치고 부산에 닿았으나 그곳에도 조선인 유학생이란 이유만으로 따라 붙은 미행이 있었다. 망국의 유민이 큰 소리 칠 수 있는 공간은 기생집뿐이다. 일본식 건물이 들어선 거리, 일본식 술집에서, 일본인 기생들을 불러 놓고, 그는 또 술을 마신다. 속이 배배 꼬인 채로.   

   

내가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한층 더 마음을 놓고 더욱이 체면도 안 차리고 저희 마음대로 휘두르며, 서넛씩 몰켜 들어와서 넙적넙적 주는 대로 받아먹고 앉았는가 하는 생각을 할 제, 될 수 있는 대로는 계집애들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태도를 취하려고,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어느 틈에 술을 배웠느냐는 둥 코밑이 평해진 지가 며칠도 못 되었으리라는 둥 하며 놀렸다.


여정 내내 그는 거의 매일 검문을 당하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라서, 조선에서는 신지식을 접한 유학생이라서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 까닭에 그는 순간순간 분노하며 자신이 식민지 조선의 유민이라는 걸 서서히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위치를 이인화는 이렇게 묘사한다.

    

나의 주위는 마치 공동묘지 같습니다. 생활력을 잃은 백의의 민(民)-망량(魍魎-도깨비) 같은 생명들이 준동하는 이 무덤 가운데에 들어앉은 지금의 나로서 어찌 ‘꽃의 서울’을 꿈꿀 수가 있겠습니까? 눈에 띄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하나나 나의 마음을 보드랍게 어루만져주고 기분을 유쾌하게 돋우어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다가는 이 약한 나에게 찾아올 것은 아마 질식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방순한 장미 꽃송이에 파묻혀서 강렬한 향기에 취하는 벌레의 질식이 아니라 대기와 절연한 무덤 속에서 구더기가 화석(化石)하는 것과 같은 질식이겠지요.     


<만세전>의 원제는 <묘지>였다. 이인화가 여행길에 목격한 조선의 현실을 빗댄 제목이다. 작가가 소설을 연재한 때가 해방 전이었던 걸 생각하면 꽤 도발적인 제목이다. 그런데 소설의 초점은 일본의 악랄함이 아니라 조선인의 답답함이다. 정확히는 주인공을 둘러 싼 집안사람들의 고루함이다. 형은 아들을 얻겠다고 가난한 집 젊은 처자를 첩으로 들이고, 일본에서 유학까지 하고 온 친척은 여자 문제가 꼬여 있다. 집안 어른들은 아픈 며느리를 두고도 선뜻 양의를 부르지 못하고, 이런 저런 탕약을 수소문하다 며느리가 죽게 되자 공동묘지에는 묻을 수는 없다고 법석을 떨며 법을 피해 선산에 묻을 방법을 궁리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 가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고 쿠리가 되어 배에 오르면서도 살아갈 방도를 찾는 시대에 돈도 있고 힘 꽤나 있는 집안사람들은 이 모양이다. 그런데 이인화 자신은 그런 집안에 학비와 용돈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있는 곳은 무덤이요 자신은 그 속에서 굳어가는 구더기와 같다.     



스스로를 구할 책임


이인화의 아내는 정말 죽어버렸다. 시집 와서 아들 하나를 낳았으나 함께 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아 정이랄 것도 없다.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은 그에게 묵직한 교훈을 들려주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자에게 편지를 쓴다. 계속 미적거릴 수만은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스로의 길을 찾아내고 개척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의무가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처는 기어코 모진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죽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남편 되는 나에게, ‘너 스스로를 구하여라! 너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라!’는 귀엽고 중한 교훈을 주고 가기 때문이올시다. (…) 어떻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찾아서 나가십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살아 있는 자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살아있는 한 살아라.” 그것도 스스로 힘 있게, 굳세게 살아라. 평생 집안 어른들의 뜻을 따라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아내는 그를 촉발한다. 묘지에서는 삶이 더 찬란해 보인다. 그리고 묘지에 있다는 걸 자각한 이상 그는 스스로 그곳을 탈출해 삶으로 걸어가야 했다.


탈출하려는 자는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가 가벼워야 한다. 이인화는 우선 어린 아들을 적당한 친척에게 양자로 보내고 정리할 수 있는 재산들을 정리했다. 정자에게 편지를 쓴 까닭도 관계를 끊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이인화가 갑갑한 현실 속에서 갑갑증이 일면 달려가곤 하던 일탈의 장소였다. 그런데 일탈은 머무르려고 하는 사람의 몫이다. 탈출하려는 자에게 순간의 안식처는 필요 없다. 해방이 있을 뿐이다.


1926년 6.10 만세 : http://news.joins.com/article/18647216


이인화에게 그 해방의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정자에게 쓰는 편지를 끝으로 소설이 끝나기 때문이다. 작가가 소설을 굳이 삼일 만세가 있기 전, ‘겨울’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설정한 이유는 그 때문인 것 같다. 이인화도 조선도 자신이 무덤 속에 있음을 자각했고 독립(獨立)을 선언했다. 그러나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독립선언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산채로 무덤 속에 있을 수 없다는 돌이킬 수 없는 깨달음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언젠가 찾아올 해방을 위해 정신적 창부와 같은 비루한 삶을 청산하고 ‘우리의 길’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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