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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Dec 28. 2022

틴토레토, 비현실적인 빛으로 그려낸 성스러움

르네상스 자연주의와 종교적 영성의 융합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틴토레토(Tintoretto-염색집 아이라는 뜻, 본명 : Jacopo Robusti 1518–1594)는 자신의 작업실 벽에 ‘티치아노의 색채, 미켈란젤로의 선’이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베네치아의 색채와 피렌체의 데생을 조합하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틴토레토의 초기 그림은 이 목표에 근접해 있었다. <기독교도 노예를 풀어주고 있는 성 마르코>[그림 1]는 화사한 티치아노의 색감과 건장하고 이상적인 미켈란젤로의 인체 데생을 닮았다.


그림 1 틴토레토, <기독교도 노예를 풀어주고 있는 성 마르코>, 1548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성 바오로의 개종>[그림 2]의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거꾸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과 바닥에 쓰러져 있는 주인공, 그리고 뒷모습을 보이고 서서 몸을 비틀고 있는 인물까지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성 바오로의 개종>과 달리 어수선하지 않다.


그림 2 미켈란젤로, <성 바오로의 개종>, 1542-45, 프레스코, 625 x 661 cm, 파올리나 예배당, 바티칸


노예는 속박에서 풀려나자 놀라움에 쓰러졌고, 몰려든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고 동요한다. 틴토레토는 기적이 일어난 순간의 흥분과 감동을 담아내면서도 빛을 이용해 통일감을 만들어냈다. 쓰러진 노예의 몸을 따라 흘러나오는 빛은 가장자리로 퍼져 나가며 그림자를 만든다. 이렇게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인물들을 하나로 엮어주고 있다.




새로운 종교적 열정


틴토레토는 자신이 적어놓은 글귀와는 달리 두 거장과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거의 독학으로 자신만의 회화를 구축해 나갔고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근접하지 못했던 종교적 신비를 향해 나아갔고, 특별한 종교화를 많이 남겼다. 이는 그의 종교적인 기질과 당시 베네치아의 문화가 잘 결합된 결과였다.


당시 베네치아는 공화국이었기에 대규모 작품을 의뢰하는 왕실이 없었다. 틴토레토는 티치아노처럼 외국의 궁정을 위해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고 국가적인 사업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의 주 고객은 교우회(校友會)였다.


비슷한 직종을 가진 신자들이 모인 교우회는 16세기 베네치아에 매우 특징적인 존재였다. 이 조직의 성원들은 대부분 소시민들의 모임이었지만 조직 자체는 부유하여 자선활동을 하거나 예술을 후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교우회들이 번창했다는 것은 당시 베네치아 인들의 종교생활이 매우 심화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16세기 후반은 고대를 부활시켰던 르네상스와 달리 종교적 영성이 되살아나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틴토레토는 이성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와 자연의 형태로는 담을 수 없는 초월적인 형상을 추구했다.  


틴토레토에게 대규모 작업을 의뢰한 것은 신생 조직이었던 산 로코(San Rocco) 교우회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회관을 장식하기 위해 베네치아의 유명화가들을 초빙하여 스케치 경연을 벌였다. 이때 틴토레토는 장사꾼 같은 면모를 보인다. 경연에서 요구한 작은 스케치 대신 장소에 바로 걸 수 있는 대형 그림을 비밀리에 갖다 놓고 회원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그림을 무상으로 선사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이후에 제작할 그림 값도 매우 낮게 제시했다. 이런 작전을 통해 틴토레토는 산 로코 교우회의 건물 장식을 전담할 수 있게 되었고 거대한 홀에 기념비적인 그림들을 남기게 된다. [그림 3]


그림 3 산 로코 회관(Scuola Grande di San Rocco, Venice) / 그림 4 틴토레토, 모세 바위를 두들겨 물을 내다, 1577, 캔버스에 유화


그중 <모세 바위를 두들겨 물을 내다>[그림 4]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이 그림에는 주인공이 없다.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기적적인 물을 향해 모여든다. 기적을 일으킨 모세도 물줄기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있고, 신도 구름을 타로 온 관람자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물이 바위를 뚫고 나오는 물줄기다. 모세가 일으킨 그 기적의 징표가 투명하지만 가장 분명하게 화폭을 가르고 있다.    




깊고 어두운 곳에 등불을 밝히고


<성 마르코의 유해 발견>[그림 5]은 틴토레토가 창안해낸 새로운 유형의 종교화였다. 성 마르코는 복음서의 저자이자 이집트 교구의 초대 주교였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미사를 집전하던 중에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순교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 성인의 유해를 찾기 위해 무덤을 뒤졌는데 어느 것이 성인의 무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그들이 우연히 성인의 유해를 꺼냈을 때, 성 마르코가 갑자기 나타나서 다른 시신들을 꺼내는 것을 멈추라고 명했다고 전해진다. 틴토레토가 선택한 장면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림 5 틴토레노, <성 마르코의 유해 발견>, 1562-66, 캔버스에 유화, 396 x 400 cm, Pinacoteca di Brera, Milan


성인은 왼쪽에 서서 손을 들고 다른 시신을 꺼내는 사람들을 말리고, 그의 발밑에 놓인 성인의 유해는 그 옆에서 스스로 빛을 발한다. 한편 악령에 휩싸여 있던 남자는 성인의 시신 곁에 이르자 갑자기 몸을 비틀고, 악마는 그의 몸을 떠나 연기처럼 사라진다.


틴토레토는 이렇게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하기 위해 깊고 어두운 동굴 모양의 공간을 만들었다. 반복적으로 그려진 아치는 긴 궁륭의 엄청난 깊이를 강조하고, 표면에 어른거리는 빛은 신비감을 증폭시킨다. 거기에 심한 단축법으로 그려진 성인의 유해와 몸을 뒤틀고 있는 남자의 형상은 극적인 느낌을 더한다. 이 그림에서 색채는 별다른 힘을 갖지 못한다. 심연으로 내려가는 듯한 깊고 어두운 공간과 인공적인 조명이 만들어 내는 기이한 빛이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은 틴토레토가 직접 실험을 해서 얻어낸 성과였다. 그는 왁스로 작은 형상들을 만들어 특별한 상자 속에 배치하고 가장 극적인 시점과 가장 효과적인 조명을 찾을 때까지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 결과 특별한 분위기를 내는 종교화들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최후의 만찬>[그림 6]도 그중 하나이다.


그림 6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캔버스에 유화, 365 x 568 cm San Giorgio Maggiore, Venice


오랫동안 최후의 만찬은 수평적인 구도로 그려졌었다. 인물 배치와 배경 등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정면을 향한 기다란 식탁은 피할 수 없는 요소였다. 그런데 틴토레토는 그 식탁을 사선으로 배열하고 남아 있는 빈 공간을 만찬을 준비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채웠다. 그로 인해 예수와 제자들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화면에는 역동성이 생겼다. 틴토레토는 특유의 빛을 이용해 주인공들을 빛나게 만들었다. 성인들의 후광과 천장에 매달린 등불 하나로 어두운 공간에 찾아든 경이로운 순간을 표현해 낸 것이다.


틴토레토는 기독교적 신비를 몸소 체험한 사람 같았다. 그의 그림들은 르네상스의 자연주의와 새로운 정신적 영감을 괴리감 없이 융화시키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자연적인 인체는 비틀어지면서 극적인 효과를 만들었고, 화면 전체에 감도는 어수선한 분위기는 중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긴박감을 만들었으며, 섬광처럼 번쩍이는 비현실적인 빛은 세속적인 공간을 초월적인 사건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틴토레토는 그렇게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종교적 감동을 주는 회화를 완성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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