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집안 내력일 뿐.
#_ 아빠와 스텔라
중학교 2학년 즈음, 아빠가 드디어 운전면허를 땄다. 3번의 필기시험과 운전학원에서 일으킨 접촉사고, 그리고 2번의 실기시험을 거쳐 이뤄낸 쾌거였다. 감격에 들뜬 아빠는 바로 지인을 통해 80년대에 출시된 낡은 푸른색 스텔라를 구입했고, 나의 운전에 대한 공포는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전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지름길을 따라 달리던 아빠의 출퇴근은 스텔라를 몰기 시작한 순간부터 두배의 시간이 걸렸다. 길눈이 어둡고(이것은 분명 유전이다), 운전이 서툴렀던 아빠는 오직 본인이 아는 버스 노선만을 따라다녔던 것이다. 운전대 앞에선 사춘기 소녀보다 여린 감성을 지녔던 아빠가 주차를 할 때면 온 가족이 총동원되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텔라는 종종 멀쩡한 전봇대와 우리 집 대문을 박은 뒤에야 그 질주본능을 멈추곤 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 안에 앉아 있으면 어린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브레이크를 밟느라 발끝이 늘 뻣뻣해졌고, 자칫 아빠의 퇴근이 늦기라도 하면 혹시 사고가 난 건 아닐까, 하고 불안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운전에 대한 공포는 스텔라와 함께 한 첫 가족 여행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강원도 어딘가로 향했던 우리 가족은 여러 번 톨게이트를 지나야 했는데, 운전이 미숙했던 아빠는 단 한 번도 통행권을 뽑아야 하는 기계 앞에 정확히 멈추지 못했다. 창문을 열고 제 아무리 손을 뻗어도 운전석에서는 닿지 않는 통행권. 뒷좌석에 앉아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잽싸게 뛰어나가 통행권을 뽑아오는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수동으로 운전해야 했던 스텔라는 조금만 언덕으로 올라간다 싶으면 컥컥 대며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는데, 아빠는 꼭 그 중요한 순간마다 시동을 꺼먹곤 했다. 언덕에서 차가 갑자기 멈추면서 뒤로 밀리는 느낌은 어린 나에게 상상 이상의 공포였다.
내비게이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고속도로를 벗어난 아빠는 아는 버스 노선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온 가족을 태운 채 비슷비슷해 보이는 길을 반복해서 운전할 뿐이었다. 종종 차를 세우고 지도를 살피기도 하고, 주변의 가게에 들어가 예정된 숙소의 위치를 물어보기도 했지만, 아빠와 스텔라는 끝끝내 목적지까지 완주하지 못했다. 아빠, 아빠는 왜 표지판만 보고 길을 못 찾아?라고 천진하게 묻던 나와, 우리 숙소 예약을 진짜로 하긴 한 거야?라고 냉소적으로 묻던 사춘기 언니 사이에서 한껏 짜증이 난 아빠는 길 찾기를 포기하고 주변에 보이던 한 여관에서 그날 밤을 묵기로 결정했다. 한창 휴가철이었던지라 방도 많이 남아 있지 않았고, 좋지 않은 시설이었음에도 높은 값을 부르는 주인과 엄마 사이에 옥신각신 실랑이도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곤했던 가족 여행의 첫날밤. 운전에 지친 아빠가 제일 먼저 곯아떨어졌고, 나도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습한 열대야에서 맡아지던 달작한 공기와 귓가를 앵앵거리던 모기들의 소리. 나와 언니를 향해 연신 부채질을 하며 모기를 쫓던 엄마의 모습. 선잠 속에 남겨진 그날 밤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해서 손으로 만져질 것만 같다.
그리고 다음 날. 다행히도 우리는 예정된 숙소를 찾아 짐을 풀었고, 동해 바다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떠나던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아빠는 길을 잃었고, 시동을 꺼먹었으며, 통행권을 제대로 뽑지 못했다. 모든 것은 추억_이라는 말은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여유롭게 할 수 있는 말일뿐. 어렸던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다시는 스텔라 안 타_였다.
추억의 스텔라는 여러 번의 사소한 접촉 사고들(상대는 주로 전봇대와 대문) 끝에 우리 식구들과 안녕을 고했고, 아빠는 숙련된 운전자가 되어 90년대 산 회색 세피아로 갈아탔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아빠의 운전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지만, 어쩐지 스텔라와 함께 했던 아빠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몇 해 전. 아빠는 한국 방문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나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 운전 경력 20년이 넘는 그는 여유 있는 웃음과 함께 그 시절 스텔라를 떠올리며 나와 함께 추억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었던 아빠의 마지막 한 마디.
야, 내가 그날 니들 보기 쪽 팔려서 일찍 자는 척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집안은 운전할 체질이 아니야. 너도 여적 면허 없는 거 봐라.
너라고 별 수 있는지 알아?
#_ 딸과 코롤라
나는 서른이 되도록 한국의 놀라운 대중교통 시스템을 찬양하며(하는 척하며), 자가운전은 교통 정체와 함께 번거롭기만 한 일이라는(면허가 없기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길치에 방향치, 운동신경까지 제로(내 몸에 존재하는 아빠의 유전자는 덤). 내게 운전은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위험한 도전으로 느껴졌고, 면허를 따야 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까지는_
캐나다 영주권을 받은 이후, 나의 새로운 목표는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메트로 밴쿠버는 스카이 트레인도 있고 생각보다 버스 체계도 잘 되어 있어, 외곽 지역에 비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곳에 자리를 잡고 나니 행동반경도 넓어지고(이곳 땅 덩어리는 왜 이리 넓은가), 무엇보다 남들보다 두배 이상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운전을 할 수 있음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태어나 처음으로 든 순간. 그러고 보니 이곳 도로들은 넓기도 하고, 바둑판처럼 쭉쭉 뻗어있으니 운전이 그리 어렵진 않겠는걸. 운전자들도 꽤 여유롭고 양보도 잘하니 나 같은 사람도 운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 같은 사람도 운전을 할 수 있다. 다만 면허를 따기까지 이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운전 연습을 위해 내 기준에서는 상당한 돈을 투자했을 뿐이다. 나의 캐나다 운전면허는 필기시험 2번, 도로주행 시험 3번을 거쳐 이뤄낸 쾌거였다.
** 잠깐 설명하자면,
밴쿠버가 속한 BC주의 운전면허 시험은 knowledge test(필기 시험)와 road test(도로주행 시험)로 이루어진다. knowledge test는 총 50문제 중 40문제 이상을 맞혀야 하며, 이를 통과할 시 실제 운전연습을 할 수 있는 자격인 L(learner's license)을 받을 수 있다. L을 가진 운전자는 최소 일 년간의 운전연습 기간을 거친 후에야 road test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고, 이를 통과할 시 혼자 운전할 수 있는 N(novice)을 받을 수 있다. N을 가진 운전자는 1명 이상의 동승자를 태울 수 없으며(25세 이상의 full license를 가진 동승자가 없는 경우), 2년의 운전 경력 이후 Full license를 위한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참고로 나는 N면허로 만족하며 천년만년 이 상태에 머무를 계획이다, 하!)
공교롭게도 당시 하우스메이트였던 Thomas도 나와 같은 시기에 운전면허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란히 필기 시험 책자를 들고 공부하는 우리에게 다른 하우스메이트들은 그리 열심히 할 필요 없어, 상식적인 수준의 대답만 고르면 다 붙어_라고 말해주었다. Thomas는 쭉 한번 책을 읽고는 바로 시험에 합격하며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고, 나는 책을 수없이 읽고 난 뒤에도 불합격이라는 불명예를 안으며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곳에서의 상식적인 필기 시험 질문을 예로 하나 들자면, 운전을 하다가 사슴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정답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치고 간다.(헉!) 사슴을 피하려 하는 순간 더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주 전, 사슴 한 마리가 고속도로를 달리던 내 차 앞을 스치듯 지나가 식겁한 적이 있다.)
마음을 다잡고 재도전한 필기 시험에서 나는 간발의 차이로 합격할 수 있었고, 우리는 도로주행 시험을 위해 개인 교습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과 같은 운전학원 시스템이 없는 이곳의 사람들은 주로 가족으로부터 운전을 배우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있는 튜터를 고용한다. 나의 친절한 한국인 운전 선생님은 10회 교습에 $850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수강료를 제시해 나를 흐뭇하게 했다. 비록 Thomas가 같은 조건에 $750을 제시한 중국인 운전 선생님을 찾아내긴 했지만. 필기시험 합격으로부터 정확히 일 년 뒤. Thomas는 단 10회의 운전교습으로 당당히 도로주행 시험에 합격해 운전면허를 딸 수 있었다. 나는?
10회 교습을 마치던 날, 운전 선생님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내게 물었다. 10회 교습을 한번 더 하는 건 어떻겠어요? 보통 여자분들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_ 20회 교습을 마치던 날, 운전 선생님은 조금 어색해진 미소와 함께 내게 되물었다. 저... 10회 교습을 더 해보시겠어요? 보통 30회까지는 잘 안 하는데... 제가 가격을 깎아드릴게요_ 30회 교습을 마치던 날, 운전 선생님은 미소기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주변에 차 있는 친구들과 연습을 더 해보는 건 어때요? 내가 두 번은 공짜로 도와줄게요_ 나는 그 뒤로도 서너 번 정도 추가 금액을 내고 교습을 받았다. 도로주행시험 비용까지 합하면 $3,000 가량을 지출하면서 나는 운전 선생님의 VVIP 고객이 되었다.
드디어 인생 첫 도로주행 시험. 다부진 체격의 깐깐해 보이는 시험관이 옆에 앉았다. 첫 좌회전을 하는 순간부터 고개를 절레절레, 가지고 있던 채점지에 무언가를 마크하기 시작했다. 우회전. 특별히 잘못한 게 없어 보이는데 또 마크. 마크, 마크, 마크. 그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출발점으로 돌아오자 저 앞에 차를 세우라 한다. 오, 드디어 마지막 시험 코스인 평행주차이구나.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만 수십 번. 오래전 보아왔던 우리 아빠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나를 향해 참다못한 시험관이 외쳤다. That's enough! Just stop there. You gotta practice a lot more_
심기일전으로 도전한 두 번째 도로주행 시험. 베테랑 느낌의 조금 무섭게 생긴 시험관이 옆에 앉았다. 심지어 라디오도 틀고(난 집중이 안된다고). 마치 난 대충 봐도 너의 실력을 알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번엔 운이 좋았는지 시험관은 여러 번 연습해 익숙한 길들로 날 안내했다. 좌회전. 그의 손이 라디오 음악에 따라 리듬을 탔다. 우회전. 채점지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평행주차도 완벽하게. 오 좋았어! 눈 앞에 출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차로 하나만 지나면 되는데 코앞에서 신호가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오, 오, 오...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서 급 브레이크를 밟았고, 내 차는 정지선을 지나 어설프게 멈춰버렸다. 순간 베테랑 시험관은 화가 난 표정으로 채점지에 무언가를 잔뜩 마크하기 시작했다. You put us in very dangerous situation. This mistake is not acceptable_
절망의 심정으로 도전한 세 번째 도로주행 시험. 걱정이 되었던 친절한 운전 선생님도 VVIP의 곁을 지켜주었다. 저 멀리 나를 담당하는 시험관이 나타나는 순간, 운전 선생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와, Jeff가 걸렸네(너무나 감격적인 순간이라 잊히지 않는 그 이름). 이번엔 땄어요, 땄어. 저 사람이 얼마나 나이스 한 사람인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면허 따기 그냥 포기해야 해...
나이스 한 Jeff는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한 시험관이었다. 그는 이전의 시험관들과는 달리 내 한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 보려 노력하더니, 영어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지 정중하게 되물었다. 이번이 몇 번째 도전인지, 지난 실패 이후 얼마나 연습했는지도 물었고, 이번엔 잘해보자며 응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은 화기애애했다. 좌회전. 그의 고개가 갸우뚱하는가 싶었지만 채점지는 깨끗했다. 우회전.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사라지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채점지는 깨끗했다. 평행주차. 갑자기 그의 말수가 줄었다. 저 멀리 출발점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그는 다시 한번 주차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차를 꾸겨넣는 느낌으로 주차를 마쳤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 그 나이스 하다던 Jeff가 언성을 높였다. What have you leanred from last time??? 이번에도 실패구나, 면허 따기는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했다. You are lucky this time. I will give you a little break. Congratulations! 응?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내게 나이스 한 Jeff가 말했다. 너 합격했다고!!!
나는 예상치 못한 합격에 놀라움과 기쁨, 서러움 등 온갖 잡다한 감정이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불쑥 Jeff의 두 손을 맞잡았다. 정말 거지 같은 표정으로 눈물 콧물을 쏟으며 땡큐, 땡큐를 연발하면서. 당황한 그는(참 이상한 여자를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합격 종이를 내게 쥐어주며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았다. You still need to practice more, okay?
그렇게 2년여 만에 나는 운전면허 있는 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감격에 들떠 99년 산 33만 킬로를 달린 코롤라를 $1,000에 구입했다(중고차를 사려던 예산의 절반 이상은 이미 운전교습에 탕진했으므로). 행복했다. 어느 정도로 행복했냐면, 아침에 일어나 창문 밖으로 예쁘게 주차되어있는 코롤라를 확인한 뒤 버스를 타고 출근해도 행복했다. 운전 선생님도, 시험관도 없이 오롯이 혼자 운전을 한다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이다. 창밖의 코롤라를 확인하고 버스를 타러가던 경건한 의식은 삼 개월 가까이 반복되었고, (지금은 신랑이 된) 남자 친구와의 운전연습을 다시 거친 뒤에야 코롤라와 출근길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내 인생 첫 차. 코롤라는 일 년 반의 시간 동안 나를 좀 더 숙련된 운전자로 만들어주고 고물상에 넘겨졌다. 35만 킬로 가까이 달렸지만, 그의 최후는 노쇠함이 아닌 나의 부주의함 때문이었다(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신나게 달렸더랬다). 그리고 나는 2017년 산 마츠다 3으로 갈아탔다.
여전히 출퇴근 외의 길을 운전하는 것은 겁이 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했다.
운전할 체질이 아닌 우리 집안에서 운전자가 두 명이나 탄생했으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