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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Kwon Jan 01. 2019

독감을 닮았던 한 해

때론 비관적이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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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그리 긍정적인 사람이 못된다. 긍정은커녕 한때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가장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힐 정도였다.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는 '고민하기'였고, 어떠한 이야기도 내 머리를 거치면 기-승-전-절망, 혹은 기-승-전-슬픔이 되었다. 그랬던 나도 이십대를 지나고 삼십대로 건너오면서 조금씩 야들야들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특별한 순간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니라, 별거 없던 하루하루가 깨알 같이 모여 비관론자의 모난 부분에 끊임없이 정을 때린 것이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곧 괜찮아질 거야'라든가 '그나마 다행이다'와 같은 류의 말을 꺼내는 나를 보고 오랜 친구들은 무척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슬퍼했다. 쟤 변한 거 좀 봐. 죽을 때가 다 됐어. 우린 이렇게 늙는 건가 봐_


2018년 한 해는 내게 제법 혹독했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고,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벼울 수 있는지를 배웠고, 인간관계는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해 시작과 함께 몰아쳤던 안 좋은 소식들은 연말까지 이어졌다. 곧 괜찮아질 거야, 그나마 다행이다_라는 말들이 통했던 건 여름까지였다. 음침한 가을, 겨울을 거치면서 정 맞고 찌그러져 있던 내 안의 비관론자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강력하다고 소문난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아픈 몸을 구실 삼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비관론자가 된 나는 '인생 뭐 별거 있다고 열심히 사나'라든가 '세상 모든 것은 썩었어'와 같은 밑도 끝도 없이 어두운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다. 마치 나 자신이 엄청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 양, 혹은 세상에서 가장 청렴한 인물인 양.

꼴도 보기 싫으니 제발 사라져 버려,라고 외치던 2018년을 하루 앞둔 지금. 그 무서웠던 독감이 내 몸에서 슬슬 존재를 감추고 있다. 느낌 없이 맑고 투명하게, 또르르 흐르는 콧물만을 남겨둔 채. 그렇게 신체는 제법 멀쩡해졌지만 어쩐지 내 정신은 아직도 비관론의 세계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몇 시간 남지 않은 2018년을 정리하려 자리 잡고 앉아보니 긍정적이지 않은 내가 가끔은 더 현실적일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과 생각으로 힘든 시간을 넘기지 말고, 가장 상처 받고 나약한 모습의 내가 내뱉는 날것들에 귀를 기울여보자. 오늘은 그런 생각으로 2018년이 내게 준 깨달음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날것 1: 번개 맞을 확률? 로또는 못 맞아도 번개는 맞을 수 있다. 

나란 사람의 장점 중 하나는 '좀처럼 아프지 않다'였다. 같은 음식을 먹은 무리들이 설사병에 걸려도 나의 위장은 병균까지 잘근잘근 소화해 낼 정도로 말이다. 감기에 걸렸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였으니 플루 샷을 맞을 생각 따윈 당연히 없었다. 내가 독감에 걸린다고? 그럴 리 없어, 핫핫핫_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다가 걸린 독감은 정말 지독했다. 2018년의 시간도 그랬다. 진행하는 일마다 그럴 일 없다고 여긴, 가장 낮은 확률을 가진 최악의 시나리오들만 눈 앞에 족족 펼쳐졌다. 곧 괜찮아질 거란 긍정의 마음가짐은 냉정한 현실 앞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래, 안 좋은 일은 언제든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


날것 2: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꽤나 복잡하다. 가끔은 선의의 행동도 오해를 불러올 수 있고,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올 한 해 나를 힘들게 한 요소 중 하나는 저 사람이 날 싫어하면 어쩌나,였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며 형성되는 관계에서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택할 수 밖에서 없는 상황과 입장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최선을 다한 행동 뒤에도 누군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던 날의 잠자리는 촘촘한 가시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자. 


날것 3: 괜찮지 않은 걸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좋은 게 좋은 것'이란 말을 믿었다. 둥글게 살아야 모두가 편하고 융통성이 있어야 세상이 잘 돌아간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에게 치명적으로 무리가 가는 일이 아니라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언젠가 누군가도 나에게 그런 융통성을 보여줄 거라 믿었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2018년 한 해. 주변은 괜찮은데 나는 괜찮지 않더라. 어느새 나는 원치 않는 일들을 떠맡고 있었고, 사람들은 내가 원해서 하고 있다고 여겼다. No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억지로 대답한 Yes 뒤의 책임은 더 쉽지 않다. 그러니까 솔직해지자. 내가 괜찮지 않을 때 '좋은 게 좋은 것'은 없다.


날것 4: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떠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어딘가 모르게 자꾸 삐그덕 거리는 관계가 있다. 혹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관계, 오직 이해만을 따지는 관계, 서로를 깎아내리는 관계도 있다. 그런 관계들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았던 지난 한 해. 그럼에도 내가 그 만남을 이어갔던 건 끝을 맺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고 얽힌 인연이 늘어날수록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이것도 다 미운 정이야,라고 생각하며 애써 만남 후의 찝찝한 기분을 달래곤 했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은 더 위축되었고, 상대도 나도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진즉에 깨달아야 했다. 주변에 머무는 사람들이 모두 '내 사람'이 될 순 없음을. 만나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굳이 만나지 말자. 일 년이라는 시간은 만나서 좋은 사람들과 채우는 것만으로도 결코 길지 않다.


날것 5: 최선을 다했다고 최고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2018년 한 해. 나에겐 '이렇게 노력했는데 대체 왜 안 풀리는 거야!'라고 외쳤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그때 그렇게 풀렸으면 큰일 날 뻔했네.'로 급변하는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최선을 다한 일들이 최고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노력과 운,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반대로 노력에 비해 잘 풀린 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 잘 되기 위한 가능성을 높이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까 너무 높은 기대심을 갖지 말자. 세상 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돌아가지 않으니까. 




이제 곧 2019년.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의 연속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시간의 단위가 주는 경계의 의미는 참으로 특별하게 다가온다. 새해의 나는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지난 한 해의 경험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2019년에는 상처 주지 않고, 상처 받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곧 긍정의 모드로 재충전할 나의 모습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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