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무슨 노인네 냄새가 난다고 그래

by RayKwon


#_


지금 몇 시지? 평소답지 않게 고요한 아침이 순영을 깨웠다. 두 돌이 되어가는 아들과 육 개월짜리 딸을 키우는 그녀의 삶은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들 뒤를 쫓아다니느라, 짧은 선잠 끝에 울어대는 딸아이를 달래느라 어디 엉덩이 붙이고 앉을 새도 없이 하루가 금세 흘렀다. 아침 일곱 시. 새벽까지 울고 보채던 딸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이제 일어났니?


부엌 한편에서 익숙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잠이 많던 학창 시절. 반쯤 감긴 눈에 들어온 부엌의 풍경엔 늘 엄마가 있었다. 낮게 깔린 한옥집에서도 부엌은 가장 낮은 곳에 자리했다. 아침마다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의 뒷모습은 그 부엌을 닮듯 자꾸만 작아졌다. 이제 일어났니? 환청이라고 생각한 순간 잔뜩 구부린 채 주방 구석을 닦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아, 그렇지. 엄마는 어제 언니와 함께 밴쿠버에 왔더랬다. 팔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열 시간의 고된 비행을 견뎌가면서.


엄마는 피곤하지도 않아?

피곤하지. 근데 낮밤을 바꿔버리니까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 야. 그러니 이거라도 들고 있어야지.


엄마의 손 안에서 '이거' 행주 하나가 바쁘게 움직였다. 낮밤이 바뀐 것과 주방을 반짝반짝 닦는 것에는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엄마, 괜찮아하고 말하려는 찰나 잠에서 깬 아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둘째가 깨는 건 시간문제였다. 오늘의 전쟁이 막 시작되었다.






순영의 결혼식에 한번, 첫째가 태어나고 한번. 이번이 엄마의 세 번째 캐나다 방문이었다. 아이고야, 내 다시는 비행기 못 타겠다. 언니의 도움을 받으며 밴쿠버에 올 때마다 엄마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높은 곳이 싫어, 야. 저 높이서 달리니까 허리가 더 쑤시지. 순영은 수 킬로미터 상공에서 작은 몸을 포개고 앉아 있었을 엄마를 떠올렸다.


영아, 우린 그냥 대충 먹으면 된다.


싱크대를 마주하고 선 엄마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언니가 첫째를 봐주는 사이 둘째의 모유 수유를 막 끝낸 참이었다. 순영은 한동안 치우지 못한 거실에 가족들과 복작하게 앉아 있자니 심란한 기운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년만에 만난 엄마가 주방에서 부산을 떠는 모습도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엄마, 괜찮아. 내가 할게.

아니야, 넌 애들이랑 앉아있어.

아휴, 제발 말 좀 들으셔. 내가 한다니깐 그래.


순영은 실랑이 끝에 엄마가 들고 있던 행주를 뺏었다. 해를 건너뛰며 보는 늙은 엄마와 아랑곳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해 저도 모르게 행주를 뺏는 손에 힘이 더해졌다. 정신없는 오늘을 보내고 나면 괜찮을까. 정갈한 식탁에 도란도란 앉아 엄마 얼굴에 새로 생긴 주름 하나까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빈 손이 허전한 엄마가 애먼 싱크대 위를 조용히 쓸어 보였다.


내가 너무 노인네 냄새를 풍겼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쌀을 씻던 순영의 손이 멈칫했다. 아무렇지 않게 말을 잇는 엄마는 몽글해진 순영의 마음을 읽지 못한 듯했다.


나이를 먹으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내가 여기까지 와서 자꾸 노인네 냄새를 풍기고 다니네. 주방 일은 영이 니가 알아서 잘할 것을...

엄마한테 무슨 노인네 냄새가 난다고 그래? 번잡하니까 그냥 계시라는 거지. 먼길 와서 딸내미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갈 참이야?


순영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커졌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제 여기 못 와. 이다음에 느이 가족이 한국 오면 보는 거지, 또 언제 보겠어. 노인네는 이제 여기 못 와, 영아...


건조하고 주름진 엄마의 손이 순영의 시야에서 촉촉이 젖어갔다. 순영은 충분히 씻은 쌀을 다시 물에 이기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장난감과 함께 시끄럽게 거실을 뒹구는 언니와 아들, 작은방에서 낮잠을 자는 딸, 싱크대를 마주한 순영 사이에 늙은 엄마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무심코 뱉은 말이 딸내미의 눈물샘을 찌른 줄도 모른 채.


무슨 노인네 냄새가 난다고 그래...

눈물을 떨군 순영이 밥솥에 쌀을 얹혔다. 햇빛은 어느새 거실 창을 넘어 주방 가까이 들어와 앉았다. 하이고, 날씨가 참 좋다, 야. 순영의 마음을 모르는 엄마는 딴 데 정신이 팔렸다. 어쩌면 모른 척하려고 정신을 딴 데 두는지도 모르겠다.




** Image by congerdesig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