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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Kwon Aug 02. 2019

먼저 사과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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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터울의 언니와 나는 참 부단히도 싸웠다. 사실 싸웠다기보다는 혼자서 삐치고 화내고 사과하는 원맨쇼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지만 말이다. 사춘기 시절의 언니에겐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시시했을 것이고, 대학생이 된 언니의 세상엔 자매의 기싸움보다 흥미로운 일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동해 바다 파도치듯 격한 감정의 기복에 충실했던 나와 달리 언니는 늘 잔잔히 고여있는 물과 같았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딱히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 어렸던 나는 그 표정에 더 바짝 열이 올라 펑펑 울기 일쑤였다.


자물쇠라도 걸듯 언니가 입을 꼭 다물어 버리면 이는 본격적인 싸움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나의 미안해, 한 마디였다. 내가 냉전의 시간을 참지 못한다는 걸 언니는 잘 알고 있었다. 매일 한 방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 말 한마디 없이 차가운 관계는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과는 늘 내 몫이었다. 어린 시절. 자매의 방에서는 매일 같이 언니의 묵언 수행과 나의 사과가 무한 반복되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제 사과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 어른이 되었다. 먼저 손을 내밀면 상대에게 지는 기분이 들었고 미안하다는 말은 횟수가 늘어날수록 값어치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이젠 유치한 일에 울지 않았다. 누가 먼저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고 해서, 나의 짝꿍이 다른 아이와 더 친하다고 해서 감정이 격하게 요동칠 일도 없었다. 대신 웬만한 것은 참는 법을 배웠다. 조금 억울해도, 조금 짜증 나도, 조금 언짢아도 언쟁을 벌이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나는 어른이니까. 냉전의 시간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고 먼저 사과를 하는 건 더 힘든 일이니까.


문제는 적기 적소에 분출되지 못한 감정이었다. 마음속에 꾹 눌러 담은 해묵은 감정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었다. 그 '언젠가'는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때로는 깃털처럼 가벼운 오해나 사소한 마음의 상처도 그동안 쌓인 모든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엄청난 화력을 발휘했다. 한번 시작된 불길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까맣게 태우고 재가 되어서야 마무리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사과에 서툴고 감정에 서툰 나는 관계를 맺는 법도 끊는 법도 모르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언니 잘 지내지.


K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은 것은 십 년 만의 일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한 첫 주에 알게 된 클래스메이트였고 일 년을 함께 지낸 룸메이트였다. 렌트 계약이 만료되고 각자 살 곳을 찾아 떠난 뒤로 단 한 번의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던 사이. 그게 우리의 관계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무슨 일로?


언니 잘 지내지. 몇 번을 망설이다 이제야 쓰게 되네.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과 메시지의 첫 줄을 보고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읽지 않은 메시지 세 개. 십 년 사이에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다시 안 볼 것처럼 돌아선 사이였다. 언성을 높여 싸운 적은 없어도 서로를 향한 신경에는 늘 뾰족한 날이 서 있었다. K를 떠올리는 것은 부족함이 많았던 서른의 나를 떠올리는 것과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풀지 않은 짐과 같은 찝찝함. 나는 이주일이 지나서야 대단한 결정이라도 내리듯 그녀의 메시지를 클릭했다.


언젠가는 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어.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마워.


이제 와서? 왜? 자기주장이 강하고 매사 확고한 의지를 보였던 아이. 스스로 내린 결정에는 결코 흔들림이 없던 K가 내게 먼저 사과를 하다니. 심지어 이미 오래전부터 마주칠 필요조차 없었던 내게 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았던 그녀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테라피스트가 잊고 있던 사람에게 먼저 사과하세요, 라는 과제라도 내줬나. 아니면 명상을 하다가 불현듯 아, 십 년 전 그 언니한테 사과를 해야겠어, 라는 생각이 든 것일지도. 사과를 하는 것만큼 받는 것도 익숙지 않은 나는 K가 먼저 내민 손길에 혼란스러웠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좋을까. 그녀의 손을 모른 척해야 할지 아니면 양손으로 덥석 끌어안아야 할지. 내가 보여야 할 반응의 온도를 고민하면서 나는 오래전 우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밴쿠버를 나던 첫 해. K는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참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길치인 내가 헤맬까 봐 직접 다운타운 지도를 그려주며 맛집이 있는 곳은 별표를 남기기도 했다. 자취생활에 필요한 조촐한 가재도구는 어디서 싸게 구입할 수 있는지, 어느 계절에는 어디를 여행하는 것이 좋은지를 알려준 것도 K였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그녀를 깨워 학교에 갔고, 그녀는 밤잠이 많은 나를 깨워 과제를 했다. 24시간의 동고동락. 어쩌면 문화도 언어도 다른 세상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균열의 시작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하루 종일 함께하면서도 물과 기름처럼 한데 섞이지 못했다. 상반된 성향 덕분에 오히려 금세 친해졌지만 다시 그 속도만큼 빠르게 멀어졌다. 어쩌다 그렇게 다시 보지 않을 사이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특별히 대답할 것이 없었다. 너무 사소해서 입에 올리지 않았던 일들이 서로의 마음에 켜켜이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런 유치한 것까지 얘기해야 해? 마음에 들지 않는 서로의 행동 앞에 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속으로 감정이 곪은 관계는 피 터지게 싸우는 관계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유치한 일에 울지 않는 어른의 인간관계는 참으로 복잡했다.


오랫동안 언니를 생각했고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꼭 사과를 하고 싶었어.


일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잠을 청하다가 나는 문득문득 그녀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K가 내게 무슨 큰 잘못을 했었나? 그녀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그와 똑같은 무게의 잘못이 내게도 있었다. 서로의 다름을 감싸주지 못한 잘못.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잘못.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잘못.




K에게 답장을 하기까지 또 다른 이주일이 흘렀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사과의 손길을 내밀었는지, 그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깨닫기까지 이주일이라는 시간의 무게는 지난 십 년의 세월처럼 무겁게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것은 철없는 어른에게 주어진 자기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미안해. 나 역시 사과가 참 늦었지. 옹졸했던 서른의 나를 용서해줘.


K와 내가 다른 환경 다른 시간대에 만났더라면 더 좋은 사이였을까. 내가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일 때 만났더라면. 마침내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먼저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멋진 사십 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진 인연들과 앞으로 만날 인연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그런 멋있는 사람이.





** Photo by Lina Troch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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