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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Kwon Sep 24. 2018

나 지금 우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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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밴쿠버의 가을. 우리는 평소처럼 동네 커피숍의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소소로운 이야기를 공유하며 대화를 이어갈 때쯤, 그녀는 그 가벼운 공기 위에 살포시 한 마디를 얹었다.


근데 나 지금 우울해요, 언니.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나 지금 쇼핑이 하고 싶어요, 같은 표정으로.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던 나는 어리벙벙한 얼굴을 한 채 애꿎은 커피만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우울하다는 의미에 담긴 무게와 달리 그녀의 한 마디는 깃털처럼 가볍게, 그리고 천천히 우리의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아, 그래? 무슨 일이야? 하고 가볍게 응대해야 할까. 아니면 그랬구나, 그럴 땐 말이야, 하고 마치 전문가처럼 상대해야 할까. 우울을 담은 가공의 깃털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긴 동안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일까도 생각하지만 오히려 일을 하는 순간은 내가 우울한지 몰라요. 순간순간을 헤쳐 나가야 하니까. 일에 있어서 내 개인적인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마음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어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에 오롯이 정직할 수는 없잖아요. 힘들다고 소리칠 수도 없고, 지쳤다고 징징거릴 수도 없고. 근데요 언니,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내 마음이 이렇게 말해요. 나 지금 우울하다고.


그녀는 자신이 왜 우울한 것인지, 아니 정말로 우울한 것인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느 날부턴가 쉽게 마음이 가라앉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런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했으며, 아침 세수를 할 때 바라보는 거울 속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외출을 할 때마다 꽁꽁 숨겨 놓았던 그 모습이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여과 없이 본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처음이라고 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의 힘듦을 고백하는 것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함께 커피를 마시며 우울하다는 한 마디를 내뱉기까지, 그 과정이 참으로 힘들었다고도 말했다.




몇 해 전 나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죽음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겹치는 지인의 파티에서 두어 번,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적이 한 번. 내가 기억하는 한 그녀와의 인연은 그것이 전부였다. 자그마하지만 당차 보였고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길에서 마주쳤던 그날은 생애 처음 타투를 했다며 아직 아물지 않아 상처와도 같았던 팔목 위의 그림을 보여주곤 싱그럽게 웃기도 했다.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운 초여름이었고, 그녀는 검은 옷을 선택한 자신과 생각보다 강한 햇살을 비난하면서도 특유의 밝은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I will show you a really good tattoo next time.  


Next time이라는 말을 딱히 귀담아듣진 않았다. 우리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서로 엮이는 인간관계 속에서 다음에 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겠지라는 심산이었을 뿐. 그녀도 나도 서로를 일 년 뒤에 다시 보게 되든 오 년 뒤에 다시 보게 되든 개의치 않고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그녀가 또 다른 타투를 갖게 되고 또다시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존재했을 Next time.


잊고 있던 그녀의 소식을 다시 전해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타투가 아닌 죽음을 이야기했다. 당차고 싱그러웠던 그녀의 웃음에 가려 우울증과 자살이라는 키워드를 예측한 주변인들은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갑작스럽게 전해진 슬픈 소식은 놀라워서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다. 생의 마지막 날. 그녀는 아끼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고 짧은 편지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나 지금 우울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영상 속의 그녀는 소중한 이들 하나 하나와 함께 마지막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친구와는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고, 어느 친구와는 게임을 했으며, 어느 친구와는 사소한 농담에 신나게 웃고 있었다. 그녀가 계획한 이별의 시간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이 나로서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우울하다고 고백하기까지의 과정 역시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아 잔잔하게 내 마음에 파동을 만들던 그녀의 한 마디가 그렇게 쉽게 터져 나오진 못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나의 힘듦을 타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하고 결국은 힘든 마음을 누구에게 들킬세라 꽁꽁 싸맸던 기억.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는 동안 아픈 나를 방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맙다고 말했다. 나의 친구가 힘든 시간을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그녀의 힘듦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은 없어도 내가 필요한 때면 그 시간들을 함께 나누겠노라고도 했다. 우울한 감정과 시간들이 결국 나 혼자서 지나야 하는 여정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즐거운 여행의 과정은 아닐지라도 내 곁의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되지 않을까. 감정의 세상 속 내가 지금은 어디를 지나고 있고 어떤 힘듦을 겪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걱정해하는 이들에게 내 마음의 안부를 전해주는 것.


힘든 시간 속의 우리에게는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 Cover photo by Di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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