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yKwon Dec 26. 2019

한국인 힝님과 캐네디언 아우

남의 식구에서 우리 식구가 된 두 남자


#_


언니의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스무 살 무렵이었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언니의 주변에는 늘 여자들만 가득했기에 그의 등장은 꽤나 흥미진진한 사건이었다. 조그만 체구에 짧은 머리,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 자신의 이상형과는 정반대인 언니가 그렇게 예쁠 수 없다며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선한 인상이 마음에 든 나 역시 그를 오빠라 부르며 곧잘 따르곤 했다. 그리고 사 년 뒤. 두 사람은 작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언니만의 영원한 '오빠'가 된 그를 나는 형부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십육 년 전 일이다.


어머님, 오늘 장은 어디로 보러 갈까요? 시식 코너 많은 마트로 갈까요?

얘, 우리 오늘 수육 해 먹을까? 겉절이랑 같이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A마트로 가시죠. 맥주도 사야겠네요.


장모와 사위가 가장 죽이 잘 맞는 순간은 오늘 뭐 먹지? 를 논할 때이다. 가족들의 삼시 세끼를 걱정하는 엄마와 운전, 시식, 먹거리 고르기를 좋아하는 형부의 합이 착착 맞아떨어진다. 그중 장 본 물건을 차에 싣는 일은 형부가 가장 중요히 여기는 작업이다. 테트리스를 하듯 차곡차곡 트렁크를 채우고 있는 그를 멋모르고 거들라치면 단박에 거절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건 거기 넣으시면 안 돼요! 제가 할게요, 그냥 두세요! 그럴 때면 엄마는 남의 아들 하나도 부럽지 않다며 기세가 등등해진다.


어우 야, 너는 자기 전에 그렇게 먹으면 어떡하니. 살쪄 얘.


형부가 좋아하는 음식을 꼬박꼬박 저녁상에 올리면서도 엄마는 잔소리를 잊지 않는다. 그러면 형부는 늘 같은 말로 응수하곤 한다.


에이, 예전엔 우리 사위 잘 먹어서 좋다시더니! 이젠 마음이 다 식으셨어!


그렇다. 형부는 나의 부모님과 함께 산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 언니, 형부 그리고 조카까지 다섯 식구가 한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일이 바쁜 언니와 형부를 대신해 엄마가 조카를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두 집 살림을 합치게 된 것이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스무 살 이후의 나보다 더 긴 시간을 나의 부모님과 마주하고 보낸 셈이다. 그런 형부를 향한 내 감정은 주로 미안함과 고마움, 든든함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요동친다. 부모님이 조카의 양육과 집안일에 큰 도움을 주신다지만, 삼대가 모여 함께 산다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으리란 걸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위라도 있었다면 형님, 아우 하며 어울리기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형부는 도무지 나타날 줄 모르는 미지의 아우를 오랜 시간 그리워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힝님!

형님!

안녕하세요, 힝님!

형! Just say 형, 형! 님!


올 가을, 한국 방문을 앞두고 내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케네디언 신랑의 한국식 예절 교육이었다. 그에게는 첫 한국행이면서 언니와 형부를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년 전 밴쿠버에서 올린 간소한 결혼식에 함께 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그를 무척이나 만나고 싶어 했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 특히 누구보다 캐네디언 아우를 손꼽아 기다리는 형부를 위해 나는 신랑에게 깍듯하고 단정한 모습을 요구했다. 덕분에 그는 제멋대로 기른 수염도 다듬고 얼마 없는 머리카락도 깔끔히 밀었다. 그런데 대체 왜 '형님'이라는 한 마디를 제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해맑게 묻는다. His name is not 힝님. Can I call him Cheol?






비 내리는 밴쿠버를 뒤로 하고 도착한 한국의 가을은 참 아름다웠다. 리무진 버스에서 내리자 먼저 마중 나온 형부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힝님! 신랑이 웃으며 형부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하이, 저스틴! 나이스 투 밋츄! 형부가 기분 좋게 화답했다. 지난밤 그 역시 어색한 영어 인사말을 몇 번이고 연습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종도, 국적도, 언어도 다른 두 사람.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새로운 가족이 된 힝님과 아우의 첫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이 집 장어가 진짜 끝내준다니까. 저스틴, 맥주? 소주? 아님 소맥?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저녁.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금구이 장어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국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가 장어를 먹을 수 있을까? 한국 음식 중에도 호불호가 분명한 신랑이 걱정되는 순간, 소맥잔을 들이켠 그가 잘 익은 장어 한 점을 집어 먹었다.


맛있어요, 힝님.


식도락가 힝님의 얼굴이 만개했다. 하하하, 역시 저스틴이 잘 아네! 주거니 받거니 두 사람 옆으로 금세 빈 술병들이 쌓였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영어와 한국어, 바디랭귀지까지 동원되자 힝님과 아우의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신랑은 깍듯하게 두 손을 모아 술을 따르고, 아빠와 형부를 피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잔을 비웠다. 하, 오늘 드디어 예절 교육이 꽃을 피웠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직장동료에게 배웠다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힝님, 먹고 죽자!






장손에게 시집와 딸만 둘을 낳은 엄마는 힘든 시집살이를 겪었다. 아빠의 형제들은 아들이 생길 때까지 줄줄이 자식을 낳았기에 명절마다 온 친척들이 모이면 유독 우리 집만 단출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일흔이 넘은 부모님 세대가 젊었을 때는 집안에 반드시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단 한 번의 '아들 타령'도 한 적이 없다. 그저 자식은 내 속만 안 썩이면 그만이란다.


이야, 나는 이제 아들이 둘이고 딸이 둘이네.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 엄마는 운전하는 형부와 보조석의 신랑을 번갈아 보며 아이처럼 신이 났다. 더 이상 단출하지 않은 식구 수에 9인승 밴이 꽉 찬 느낌이다. 앞좌석 힝님과 아우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언니와 나는 졸다 깨기를 반복하고, 엄마 아빠가 창밖 풍경을 감상할 때 꽁지에 앉은 사춘기 조카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오늘의 플레이 리스트는 형부가 애정 하는 팝송 릴레이.


MNDR!


노래를 듣던 신랑이 신이 나서 외쳤다. 이거 진짜 내가 좋아하는 노랜데! 힝님 likes it, too! I go away, go away! 두 사람이 동시에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아이고, 시끄러워, 시끄러워. 엄마의 잔소리에도 마음이 통한 힝님과 아우의 노래는 멈출 줄 몰랐다. 나는 두 사람의 볼록한 배가 같은 리듬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났다. 힝님과 아우, 제법 보기 좋네.


이주일의 짧은 한국 일정 동안 신랑은 무럭무럭 살이 자랐다. 한 상 가득 차린 엄마의 아침밥을 시작으로 낮에는 맛집 투어를 하고, 아빠와 함께 하는 저녁 상에는 반주를 곁들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하루의 클라이맥스는 힝님과 함께 하는 야식이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신랑을 걱정했던 내가 무색할 만치 그는 힝님이 건네는 음식을 넙죽넙죽 잘만 받아먹었다. 그가 유일하게 고사한 곱창만이 힝님보다 파워가 센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힝님과 아우는 몇 날 며칠 동안 함께 먹고, 죽고, 부활했다. 사진 속 두 사람의 배 크기만 비교해봐도 우리의 여행 일정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니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들은 남의 식구에서 우리 식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한국을 떠나기 전날 밤, 힝님과 아우는 늦은 외출을 했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짐까지 대충 싸놓은 뒤였다. 언제 또 볼지 모르니 사위들끼리 술이라도 한 잔 하러 갔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힝님이랑 맥도널드 갔다 왔어. 불고기 버거 먹으러.

맥도널드??


아아. 그제야 여행 첫날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한국에서 무얼 하고 싶냐는 형부의 질문에 그는 맥도널드를 가고 싶다는 엉뚱한 대답을 한 것이다. 그의 항변은 이랬다. 밴쿠버에도 코리안 레스토랑은 많으니 한국에서 파는 외국 음식은 어떨지가 궁금하다는 것. 맥도널드에는 어떤 메뉴가 있을까? 캐나다에서는 팔지 않는 버거가 있을까? 김치 버거 같은 것? 한국식 인도 음식은 어떨까? 한국식 이탈리안 음식은? 이를 테면 한국식 퓨전 음식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대답을 장난으로 치부했던 나와 달리 형부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맛있었어?

응. 라이스 버거가 없다길래 조금 실망했지만. 컨비니언스 스토어에서 술도 마셨어! 캐나다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형님이랑 무슨 이야길 했어?

흠......

뭐했어?

그걸 왜 알려고 해? It's between me and 힝님!


쳇, 사위들끼리 뭔가 비밀을 만들었나 보다. 그렇다면 지켜줘야겠지......


사실 우리 맘스치킨 버거도 먹었어.


신랑이 한껏 부른 배를 만지며 난데없는 고백을 했다. 그래, 버거 하나로 나올 배 크기가 아니긴 했다. 그의 몸무게가 세 자릿수로 돌아간 날 밤. 불을 끄고 나란히 누운 우리는 한동안 잠을 청하지 못했다. 어둠의 한 구석에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끝낸 여행가방이 웅크리고 있고 창 밖으로는 간간이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렸다. 부웅. 그 소음의 끝을 이어 신랑이 말했다. 너의 가족을, 힝님을 알게 되어서 참 좋아. I'm so happy that he is like my brother.






** Cover Photo by Jacob Rank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국제 커플의 음식 전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