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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선 Apr 01. 2019

06. 자리로 안내해 드릴게요

하랑 집나갔던 이야기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겼는지 과제에 찌들어서였는지 기억은 안난다. 늦게 귀가했고, 집에 모든 불이 꺼져있었고, 그 날 이상하게도 현관 센서등도 켜지지 않았었다. 그때엔 아무도 안 깨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방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방으로 급하게 들어갔던걸 보니 높은 확률로 음주가무를 하고 늦게 들어갔나 보다.


    다음 날,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오빠가 문을 열었다. 현관이랑 가까이에 있는 내 방에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고양이 이 집에서 키우시는 거죠?"

 고양이 키우지. 고양이 키우고 있지. 우리 하랑이랑 봄이... 잠깐만, 이 고양이? 우리 애가 집을 나갔다고? 설마 집을 나갔었다고? 하는 의식의 흐름 와중에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하랑!"

 "우와웅!" 하랑이는 우와웅하고 운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오빠한테 안겨 들어온 건 김하랑이었으며,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오빠 품에 안겨있었다. 오빠는 하랑이를 안고 내 방에 들어오면서 애가 집을 나갔었나 봐, 옆집 분이 데려다주셨어. 하고 말했다.

그때는 아니지만 겁먹은 하랑이의 표정은 이렇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깜깜한 밤에 내가 조용히 들어왔고, 그 조용히 들어오는 틈을 타 하랑이가 집을 나갔다. 집에서 나간 하랑은 일단은 신났지만 그다음부터는 무서웠다.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아빠의 자전거 바퀴와 소화전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서 밤새 우리 집 누군가를 기다렸다. 분명히 비상계단이 열려있었는데, 완전한 가출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앉아 따뜻한 전기장판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에 하랑을 발견한 옆집분이 하랑이를 들어 올려 친절하게도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주셨다. 오빠의 말로는 어디서 많이 본 고양이가 낯선 사람 품에 안겨있었단다. 하랑이랑 비슷하게 생겼네, 하며 문을 열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오빠한테 안기는 걸 보며 하랑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랑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잠을 잤다. 물론 밥을 '많이'먹고, 물을 '많이' 마시고, 잠을 전기장판 위에서 '엄청나게' 잤다. 처음엔 이불속에 들어가서 자더니만 슬슬 집이라고 안심이 됐는지 나와서 배도 뒤집어 까고 잠꼬대도 하며 잠을 잤다. 

잠을 자는 기본자세


 안정을 취한 하랑이는 그 이후로 절대 현관 근처에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 날이 무섭긴 했나 보다. 요즘엔 애가 그때를 잊은 건지 겁이 없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현관 앞에 가서 울어댄다. 나가면 또 아무것도 못할 거면서, 하고 콧방귀를 뀌다가 그래도 나가지 못하게 문단속을 다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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