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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선 Apr 02. 2019

07. 컵은 매장용입니다

고양이들이 화분 깨는 이야기

     아파트에서 살 때에 아빠는 베란다에 난을 엄청나게 키우셨었다. 난에서 올라온 꽃대를 보며 이제 봄이야. 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이었다.

 그렇지만 봄과 하랑이 온 이후로 난들의 평화는 깨졌다. 진짜 단어 그대로 깨졌다.


     오빠의 원룸에서 이사와 넓어진 집이 좋아진 아이들은 우다다거리며 돌아다녔고 베란다는 일자로 되어있어 뛰어다니기 딱 좋은 장소였다. 100m 트랙을 본 듯 눈을 반짝이며 베란다에서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쨍그랑 소리가 들렸다. 

 그 날도 어김없이 우다다거리며 돌아다니다 난 화분을 하나 깬 것이다. 일단 아이들을 베란다에서 격리시키고, 꺠진 유리조각을 치우며 어차피 분갈이 할 때 된거라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증명하듯 깨진 화병 아래로 뿌리가 얽히고 섥혀있는 게 보였다. 그렇게 첫번째 난은 분갈이를 함으로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고양이는 창틀에 있는걸 좋아한다.

     곧 두번째, 세번째 '피해난'이 나오면서 우리집은 식물 금지구역이 되어버렸다. 화분만 깨는게 아니라 심지어는 난의 줄기를 뜯어먹고 소화가 되지 않으니 토하는 일도 잦았다. 캣글라스를 먹고싶은 줄 알고 집에서 캣글라스 재배도 해보았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난을 씹었다. 그냥 아빠를 괴롭히는걸 즐겼나보다. 그렇게 1 2 3 하랑이와 봄이가 깬 화분의 숫자는 점점 늘어가고 4 5 있었다. 집에 대략 12개의 난이 있었는데, 나중에 남은건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고양이때문만은 아니고 내 관리소홀도 있겠지만, 새 집이 생기면  집이 없어지고, 새 집이 생기면 또 집이 없어지는 와중에 난들도 삶의 의지를 잃었으리라.


     이 이후로 집에 식물은 절대 들여놓지 않는다. 그리고 고양이에게서 또 하나를 배웠다. 무엇인가 깨질만한게 고양이 동선에 있었다면 있게 놔둔 내 잘못이다. 고양이는 그냥 지나가는데 그게 있어서 쳤을 뿐, 악의는 없다. 이것을 배우고 나니 뭔가 더 약오르긴 했지만 그 이후로 물컵은 절대 책상 모서리에 두지 않으며, 깨질만한 것들은 서랍 안에 다 숨기는 능력이 생겨버렸다. 잘못 꺼내놨다가 망가지면 내 책임이니.

같은 창틀 다른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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