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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선 Apr 14. 2019

11. 정기휴무입니다.

고양이 지방종 수술한 이야기

    하랑이 뒷다리 위쪽에 모기물린거처럼 뭐가 나있는걸 발견했다. 모기물린줄알고 놀래서 사진을 찍어두고, 퇴근길에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고양이 몸에 이런게 났는데, 이건 뭘까요? 라고 질문을 하니 지방종같다고, 근데 사이즈가 작아서 조직검사를 한 뒤 수술을 하는 것 보다는 제거수술을 하고 조직검사를 보내는게 나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수술을 잡았다. 최소 4시간 금식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저녁에 내가 잠들기 전 밥을 치우고 자면 딱 맞을거라고 말씀하셔서, 그대로 실행했다. 덕분에 봄이도 강제금식을 하고, 아침에 온갖 짜증난 목소리로 울면서 밥그릇 앞에 앉아 째려보는 하랑을 볼 수 있었다.

본인 운명도 모르고...

    예약시간에 맞춰 하랑이를 데리고갔다. 본인의 운명을 아는건지 무릎 위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하랑이를 보면서 마음이 좀 아팠지만 악성 종양이면 어떡하나 싶어서 냉큼 의사선생님께 하랑이를 드렸다. 수술이 끝나고 연락주신다고 하셔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기를 바랬다. 내 손에서 수술실로 보내는건 처음 겪는 일이어서 뭘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으며 끝없는 걱정만 됬다.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들이 흐른 뒤 병원에서 하랑이 수술 잘 끝났으니까 오셔서 데려가세요~ 하는 전화가 오자마자 캐리어에 하랑이가 좋아하던 담요를 넣어서 출발했다.


    집에 데려와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병원냄새가 나니까 봄이가 하악질을 하고 난리가 났고 하랑이는 여기저기 비틀거리면서 돌아다녔다. 마취가 덜 깬 고양이를 보는 건 생각보다 마음이 훨씬 아프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어두운 곳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넥카라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부딪힌다. 근데 마취가 덜 깬 상태라 본인이 부딪힌지에 대한 인지가 부족해 계속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계속 부딪해서 넥카라가 하랑이 목을 조른다. 이 과정을 계속 겪고 있는데 보는 나는 미칠지경이었다. 어두운 곳을 일부러 만들어보기도 하고, 따라다니면서 근처에 계속 담요를 놔줬지만 절대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데리고 오면서 계속 흔들려서 그런가 토하고 넥카라에 묻고 난리도 아니었다.

    침대에 올라가고 싶어서 계속 쳐다보고있는 하랑이를 들어서 올려주니 그 때서야 자기 시작했다. 넥카라가 불편했는지 계속 뒤척이면서 그나마 편한 자세를 찾아가고 있었다. 넥카라 앞쪽이 계속 이불에 닿아 불편한 것 같아, 예전에 사료를 사고 서비스로 받은 캣닢배게를 넥카라 아래에 넣어주니 편하게 자기 시작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않는가, 고양이도 적응의 동물인가보다. 점점 넥카라를 한채로 편한 자세를 찾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넥카라가 없는 듯 자기 시작했다.


    그루밍하지말라고 씌워놓은 넥카라였지만 어찌 그루밍을 했는지 네바늘 꼬맨것 중에 하나를 입으로 물어 뜯었다. 피가 나는걸 보자마자 인간 CCTV로 변신해서 김하랑만 하루종일 쳐다보다가 그루밍을 하기 시작하면 바로 자세를 틀어놨다. 연고는 바르면 이물감때문에 그루밍 촉진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연고는 바르지 않고, 최대한 가렵거나 신경쓰이지 않게, 그루밍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도 회사 다녀오면 뭔가 붉은게 나 없을 때 그루밍을 겁나게 해댔겠지.


    아침 저녁으로, 12시간 주기로 알약을 하나씩 먹였는데 나중엔 먹기싫어서 몸을 막 비틀고 난리도 아니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나 약먹이는 방법은 동일한데, 입 양쪽 어금니쪽에 손을 집어넣어 벌리게 한 후 알약을 목 깊숙히 찔러넣는 것이다. 그래도 혀로 막 밀어내는 경우가 있어서 알약을 넣은 다음 코에 바람을 후! 불면 놀래서 약을 삼켜버린다. 하랑이는 그렇다. 아이들 구충제 먹을 때도 이 방법을 애용한다. 나와 고양이 둘 다 편하려고 차오츄르에 가루약을 섞으면 하랑이는 뭣도 모르고 맛있다고 계속 먹는데 봄이는 츄르'만' 먹는다. 어떻게 남긴건지도 모르겠지만 약이 많이 있는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다.

 약이 일주일치였으니, 14번의 알약 전쟁을 겪다보니 점점 알약을 안먹는 스킬이 늘어났다. 아무리 깊숙히 찔러넣어도 혀로 막 밀어내서 한번 털면 알약이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어린애도 아니고 열살의 고양이가 말이야, 약먹기 싫어서 땡깡을 부리다니.


    이 날 아침에는 유난히 약먹기를 싫어했는데, 그래도 너를 위한거라며 먹였다. 표정이 막 아주 너무 싫어서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배신감으로 가득 차있다가, 출근준비를 하다 보니 그 사이에 약을 토했다. 내가 너무 강제로 먹였나 하는 생각에 또 미안해지면서 그래도 너 물어뜯어서 거기 덧나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는데 온갖 생각을 하다가 넥카라에 범벅된 약의 흔적들을 닦아내고, 하랑이 입도 한번 닦고 그러고 출근을 하고 지각을 했다.


    실밥 풀고 이틀 뒤 넥카라 해방의 날에, 하랑이는 거의 30분동안 그루밍을 했다. 털도 어마어마하게 빠져서 난 그루밍하는 하랑이 옆에서 빗질만 30분을 한 것 같다. 넥카라를 해놨던 목부분이 털이 위아래로 갈라져서 고속도로가 나서, 여기는 평생 이러는건가 라는 생각에 보수공사를 한다며 털을 결대로 쓸어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가 생기듯, 털이 살지 않는 도시가 생겨버렸다. 그래도 나중엔 인구유입이 되긴 되더라. 지금은 아주 대도시가 되었다. 그렇게 하랑이의 지방종은 흉터까지 완치가 되었다. 수술을 위해 밀어버린 털은 아직 다 복구되진 않았지만 조직검사 결과도 깨끗했고 수술을 위해 진행했던 검사들에서도 다 정상수치가 나왔다. 지방종 수술을 하고 결론은 건강한 고양이라니, 하랑 최고야.

고양이 지방종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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