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허드슨 야드의 베슬
코로나가 있기 전이었던 2020년도 초에 뉴욕을 가족과 함께 잠시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일주일간 뉴욕 외에 보스턴을 들리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시간을 내어 평소 눈여겨보았던 건축물을 직접 확인하고자 옷을 단단히 입고 뉴욕 거리를 부지런히 걸었다. 이날은 첼시 마켓에서부터 하이라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었는데, 하이라인이 끝나는 지점에는 새로 개발된 허드슨 야드가 있었다.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는 맨해튼 서쪽 허드슨 강변에 조성된 초대형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이 시작되고 나서 가장 크고 비싼 부동산 개발 사업 중 하나이다. 원래 이곳은 철도 차량기지로 오랜 기간 동안 개발이 제한되어 낙후되어 있던 곳인데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를 통해 뉴욕시 정부와 민간 디벨로퍼가 함께 오피스, 상업, 문화 공간 등을 통합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해당 부지에는 초고층 오피스 타워를 비롯하여 고급 콘도, 쇼핑몰 및 문화 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이중 푸른색의 커튼월 건물들 사이로 유난히 특이하게 생긴 벌집 모양의 구조물이 있는데 바로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설계하고 2019년 완공한 베슬(Vessel)이다. 얼핏 보면 바구니 같기도, 또는 쓰레기통 같기도 한 이 구조물은 건물인지, 파빌리온인지, 그 기능과 쓰임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조형물은 주변의 수많은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이름 그대로 그릇처럼 우뚝 서있다.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의 핵심 디벨로퍼인 스티븐 로스 (Stephen Ross)는 이 일대 새로 지어진 고층 건물들을 한데 묶어줄 수 있는 연결 고리와도 같은 상징적이면서도 기념비적인 구조물을 원했고 이 가운데 토마스 헤더윅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허드슨 야드에 베슬이 들어서게 됐다.
베슬은 약 2억 달러, 우리 돈으로 2,700억 원이 들어간 프로젝트로 2017년 착공하여 2년 만에 완성되었다. 높이는 46미터로 건물로 치면 높이 15층 규모의 조형물이다. 2,500개 이상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이 조형물은 방문객이 위, 아래, 좌, 우 네 방향으로 자유롭게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도시 및 강가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인도 라자스탄의 계단식 우물에서 영감을 받은 이 조형물은 외관에서 봤을 때에 육각형의 벌집 모양의 그리드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특이한 구조와 더불어 구릿빛의 스테인리스 스틸은 주변의 고층 건물을 적절하게 반사시키면서 건축주가 생각하고 건축가가 의도했던 대로 주변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베슬에 실제로 올라가 보면 15층 높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중간중간 계단참이 많이 있었고 바깥으로는 허드슨 강과 그 주변 경치를 보며 올라가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았다. 올라갈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면 높이에 따라서 경치가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1층에서 보는 풍경과 5층, 10층, 15층 높이에서 보는 풍경은 사뭇 달랐다. 꼭대기에 올라가서 허드슨강과 높이 솟은 주변 건물을 보면 강과 건물이라는 두 가지 이질적인 것들이 한 번에 눈에 들어왔다. 강바람이 매섭게 불어와 오랜 시간을 보내진 않았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며 베슬의 제일 높은 층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나 걸어 내려오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이것이 무슨 용도의 조형물인가 하는 것이었고 다시 또 방문할까라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떠올려 보아도 쉽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새롭고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해서 다소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마저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베슬을 보고 난 지 한 달 뒤쯤 다소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2020년 2월 베슬에서 19살의 어느 남성이 투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로 같은 해 12월과 이듬해 1월에 세 번의 자살이 있고 나서 베슬은 무기한 잠정 폐쇄되었다. 허드슨 야드 측은 전문가와 함께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고 그 일환으로 유리를 덧대거나 그물망을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 등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조치 없이 다시 2021년도 3월에 재개장하였고 같은 해 7월 4번째 사망자가 나오기까지 이르렀다. 이후 베슬은 다시 한번 폐쇄되었고 일각에서는 영구적으로 건물을 폐쇄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애초에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그 가운데 베슬이라는 거대한 조형물이 설치된다고 했을 때 비평가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이 조형물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먼저 건물의 쓰임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사람이 직접 체험하여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성이 다분히 불분명하다. 뉴욕 타임스의 어느 기자는 이 건물을 두고 “Stairway to nowhere”,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계단이라 칭하며 혹평을 했는데 그의 말대로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 외에 건물에 충분한 함의가 담겨 있지 않았다. 또한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긴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들은 건물을 자유롭게 즐기기가 힘들다. 그로 인해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디자인이라는 비평이 계획 초기부터 야기되었다. 더불어 다소 과시적이면서도 랜드마크가 되고자 하는 베슬은 그 자체로 지역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었나에 대해서도 의문이었다. 다시 말해 디벨로퍼 위주의 사업 논리에 치우쳐 주변과 단절된 채 그들만의 단단한 옹벽을 쌓는 디자인과 같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비판적인 견해들을 개인적인 감상으로 차치하고라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안전에 대한 태도이다. 애초 설계 당시부터 1.2m 높이에 불과한 난간은 그 자체로도 높이가 낮을뿐더러 이 외에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었다. 자칫 건축가가 생각하는 디자인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될 수 있고, 건물을 원하는 생각대로 설계가 되지 않는다 해도 우선적으로 고려해 보고 따져 보아야 하는 것은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전이다. 인간이 만드는 가장 큰 구조물인 건물은 그 자체로 안전이 담보가 되어야 하고 이는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과 함께 사용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설계가 되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베슬은 합격점을 주기가 어렵다.
건축가의 입장에서도 몇 번의 자살 시도가 있고 나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건축주의 의견대로 완벽한 설계를 하고 그 디자인을 보내 주는 것이 끝이 아니다. 시대나 생각의 변화에 따라 작가가 자신의 책을 개정할 때가 있는 것처럼 건축가 역시 디자인적 결점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혹자는 자살하고 싶은 사람까지 어떻게 건축가가 옆에서 말려야 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피동적인 자세가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전문가와 함께 개선점을 찾았어야 했다.
세 번의 자살 이후에도 안전 요원을 고용하는 등의 노력은 있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네 번째 자살 이후에는 현재 베슬의 최상층은 폐쇄하고 사방에 그물망을 설치하여 뛰어내리지 못하게 막아 두었다. 물론 베슬을 둘러싸고 있는 그물 때문에 이전보다 못생겨졌고 시기상으로도 늦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초기에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비판적 의견이나 야기될 문제점을 좀 더 고심하고 그것을 디자인에 반영하여 풀어냈다면 네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다. 풍경을 골라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될지 아니면 구릿빛의 쓸모없는 비싼 쓰레기통이 될지는 사용자에 앞서 건축가가 보다 우선적이면서도 능동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