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도시 속, 외로운 나

허겸 작가

by 케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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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늘 같은 모습인 듯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같은 골목, 같은 창문, 같은 노을 아래에서도 마음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허겸은 그 틈을 지켜보는 사람 같았다. 반짝이는 빛 뒤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불안을, 무심히 스쳐가는 풍경 속에서 찾는다.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을 그 장면들이, 허겸에게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장면이 된다.


멀리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늘 무언가를 말하는 듯 보인다. 그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이 허겸이 해내고 있는 작업의 시작과 같다고 느꼈다.


이 글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줄까? 꼭 마지막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0. 안녕하세요, 허겸 작가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도시를 소재로 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허겸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도시 속 인물들을 주로 그렸었고 도시 원경을 유화로 그리는 작업을 하다가 요즘에는 근경을 드로잉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부터 제 작업은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이나 불안, 또는 도시 안의 사람들, 특히 중심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시의 구조물들을 선을 강조해서 표현한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 작가님의 작업은 도시를 관찰자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재구성하는 느낌을 줍니다. 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특별히 끌리는 이유가 있을까요?


멀리서 도시를 내다보면 평소에 갖고 있었던 걱정을 잊은 거 같기도 하면서 그 안에 속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곤 해요. 멀리서 보면 높고 반짝이는 빌딩과 낡고 작은 건물들이 조화를 이뤄 이상향과 같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건물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고 보면 여러 가지 형태와 색이 보이더라고요. 도시 안에서는 느끼고 볼 수 없었던 부분들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1-1. 일상 속에서 본 풍경 중 '이건 꼭 그려야겠다'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언젠가 저녁에 낙산공원을 산책하면서 건물들이 석양빛을 받아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을이 지는 풍경을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보기는 했지만 그날 그곳의 풍경은 특별히 더 아름답게 보여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 함께 빛나는 건물들을 보면서 그 장면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예술가로서 장애를 겪으며 느낀 ‘관찰’의 방식이나 감각은 어떤 식으로 작업에 녹아들고 있나요?


제 장애가 선천적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 스스로는 다른 사람과 어떤 감각이 다른지 잘 모릅니다. 다만 제가 장애인으로서 사회에서 타자나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사회의 주변부에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제 작업의 주제나 정서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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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시를 계속해서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곳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시는지,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도시는 저에게 익숙한 곳이지만 문득문득 이상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몸을 맞대고 있는 대중교통 안이라든지, 아직 입주 전인데도 모든 창문에 똑같은 밝기의 불이 켜져 있는 신축 아파트라든지, 비슷한 건물들에서 비슷한 시간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볼 때라든지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사람을 위한 도시지만 어떤 때는 우리가 도시를 위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뻔한 얘기 같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나는 어떤 존재일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한 그런 생각을 담은 저의 도시 풍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4. 허겸 작가님이 그렸던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나요? 사진으로도 공유 부탁드립니다 :)

- <서울 No.9 - Before sunset>, <선과 선 II>입니다.

허겸, 선과 선 II, 2025, 종이에 콩테, 파스텔, 40.9x31.8cm.jpg


- <서울 No.9 - Before sunset> - 해지기 직전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렸으며 저녁 햇살을 받아 다양한 색으로 보이는 도시 원경을 그렸습니다.

- <선과 선 II> - 청계천에서 본 도시의 모습을 선을 강조한 드로잉 작업으로 표현했습니다.


5. 앞으로의 작업에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형식이나 주제가 있다면요?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작업을 했었는데 현재는 평면 작업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해서 평면 회화를 하고 있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기도 하고 다른 매체를 사용하면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제 그림 스타일에 좀 변화를 주고 싶은 생각입니다. 저는 꼼꼼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하는 스타일인데 좀 더 거칠거나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되도록 여러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6. 마지막 질문입니다! 허겸 작가님의 작품을 즐기는 대중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제 작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년에 제가 작업하고 있는 창작센터의 작가들과 전시를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전시를 보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커플이 전시장 입구로 들어왔다가 ‘뭐 하는 거야’, ‘장애인들 전시래’라고 주고받으며 보지도 않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편견을 갖고 세상을 본다면 많은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특히 예술을 접하실 때 선입견 없이 보신다면 나만의 좋은 작품들을 찾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허겸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만 나의 일상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익숙한 거리와 반복되는 공간 속에서도 그가 말한 ‘틈’은 분명 존재했다. 우리 모두는 도시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때로는 소외되고, 때로는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허겸은 ‘관찰자’로 머물며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는 사람. 허겸 작가의 그림은 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조용한 울림을 준다.


그는 단지 자신의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시선을 정직하게 옮겨낸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그림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도시의 감정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허겸 작가의 도시처럼, 그의 예술도 그런 방식으로 우리 곁에 오래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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