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케쓰
“똑똑하면서 멍청하다”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똑똑하면 똑똑한 것이고, 멍청하면 멍청한 것이다.
두 상태는 양립할 수 없다.
내가 말을 말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보와 논리에는 누구보다 민감하지만
그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에 대한 감각은 자주 흐려진다.
내가 생각하는 ‘똑똑함’은 다음과 같다.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
반면 ‘멍청함’은 이렇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는 말의 세기를 가늠하지 못하고, 대화의 맥락과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
어느 날 메가커피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나는 UX에 대해 열을 올렸다.
“이 앱은 결제창이 쿠폰 입력창보다 먼저 나와야 해. 지금 구조는 비효율적이야. 결제가 취소되면 쿠폰도 다시 입력해야 하고, UX 관점에서도 고객이 쿠폰 입력하는 시간을 활용하면 더 효율적인 프로세스가 돼.”
친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 어 그래”라고 답했다.
돌이켜보면, 누가 그런 얘기를 커피 기다리면서 듣고 싶을까?
UX의 불편함 같은 건 내게는 흥미로운 주제지만, 상대에게는 불필요한 지식 자랑일 뿐이었다.
나는 정보를 나눈 게 아니라, 감정을 나누는 데 실패했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자, 친구는 13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서 본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내용은 제프 베조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여행 중 할머니가 담배를 피우자, 어린 제프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담배 때문에 수명이 9년이나 줄어들었어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조용히 그를 꾸짖었다.
내 말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정확하더라도, 그 말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군가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으면 나는 그저 똑똑하기만 한 사람일 뿐이다.
아니, 그저 밥맛인 사람이다.
결국, ‘똑똑한데 멍청하다’는 말은 나 같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지식은 날카로운 칼처럼 휘두르기 쉽지만, 상대를 다치지 않게 다루는 건 훈련과 성찰이 필요한 일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말의 정확함만큼 그 말의 ‘영향력’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내가 배워야 할 진짜 지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