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은 또 다른 시작

희찬, 스물하나

by 케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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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우리는 매일 또 하나의 미로에 들어선다. 그건 때로 선택의 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우회로이기도 하다.


길을 찾다가 막히고, 막혔다 싶으면 또 다른 길이 생기고, 도착했다고 생각한 곳이 알고 보니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희찬이 그리는 미로는 그런 우리 삶과 닮아 있다. 그의 그림은 단지 '풀기 위한 퍼즐'이 아니다. 정교하게 얽히고설킨 선들, 그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갈림길과 막다른 골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존재하는 하나의 출구.


희찬의 손끝에서 태어난 미로들은 조용한 은유 같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로 가는가, 정답이 없어도 계속 나아가게 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그 질문들을 조용히 던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그리고 있었다.


이 글은 그런 미로의 조각 중 한 장을 펼쳐 본 기록이다. 함께 희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0.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미로를 그리고 있는 김희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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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로를 그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예, 초등학생 열 살 때부터 일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었거든요. 그때 이제 그 종합장, 낙서장 같은 곳에다 그냥 낙서하는 거 좋아하고 그랬었어요. 거기 뒷장에 그냥 미로 그림 같은 게 프린팅이 돼 있었어요. 기억하시나요? (네 그럼요!) 그냥 저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직각으로 돼 있는 그런 미로 그림이 있었는데, 그거 이제 그냥 종합장에 낙서하다가 이런 거 풀어보니까 '재밌네' '나도 한 번 그려볼까' 싶어서 계속 그리던 게 이렇게 된 것 같아요.


1-1. 미로 그림은 사람들이 많이 접하는데,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희찬 님은 어쩌다 미로그림을 그리게 되신 걸까요?

게임 캐릭터들을 좋아했어요. 앵그리버드나 미니언 같은 게임 캐릭터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 그리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미로도 마음에 들어서, 어릴 때니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지 않았을까 그냥 추측을 해보고 싶네요. (그냥 운명같이 '미로'가 마음에 꽂혔다) 네. 그렇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mazeinboy04/ (미로소년 인스타그램)



2. 미로는 희찬 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일단 최근에 들었던 생각이 있어요. 미로를 계속 그리다 보면 하나의 미로에 시작과 도착이 있잖아요, 한 장 안에서는 시작과 도착을 그렇게 그리는데, 그린 후에 저는 또 다른 미로를 시작부터 그려요. 그럼 계속 시작 - 도착, 시작 - 도착하면서 계속 미로를 그리니까 결국은 도착을 한 게 도착이 아니게 되어버려요 ㅎㅎ. 한 번의 도착으로 끝나지 않고 그냥 계속 끝없는 여행을 해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언제 이 미로를 그만 그릴지, 다른 것을 그릴지 알 수는 없지만요. (오, 끝없는 여행). 네, 그런 생각이 드네요.



3. 즉흥적으로 그리는 방식이 정말 독특하더라고요. 미로를 그릴 때 머릿속에 먼저 그림이 그려지나요, 아니면 손이 먼저 움직이나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사실 로봇처럼 다 짜놓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에요. 미로를 조금 그리고, 중간중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요. 갈림길도 만들고, 막힌 길도 만들면서 갑자기 길이 다 막혀버리지 않게끔 해요. 갈림길이 몇 개가 남아있는지 확인도 하고, 혼선을 주지 않게끔 만들죠. 즉흥적이게 하면서도 중간중간 계획도 세우는 것 같아요.


3-1. 그럼 혹시 미로를 그리시다가 미로가 막히거나 답이 없어진 적이 있나요?


네, 좀 예전에 있었죠. 보통 그런 경우에 '순간이동'이라고 지금은 그림에 잘 넣지 않는데, 포탈 같은 것을 그려요. 하얀색 원을 그리고 또 다른 쪽에 하얀색 원을 그려서 그것 끼리 이동하게끔 하고, 세모 네모 포탈들도 만들고. 그렇게 포탈 모양을 좀 다양하게 해서 미로가 막혀도 대처방안으로 풀어질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3-2. 요즘 그림에는 포탈이 거의 없는데, 지금은 미로 그리기가 완숙의 단계에 다다른 걸까요? 현재 희찬 님의 미로 그리기 실력은 어느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어떻게 더 어렵게 그릴까?' 하는 방향으로 더 파고들려고 하거든요. 갈림길 중에서도 사람들이 잘 안 고를만한 갈림길을 일부러 정답지 길로 선택을 해가지고 더 어렵게끔 만든다든지, 좀 약간 페이크 치는 것처럼 길을 좀 숨겨놓는다던지. 그런 것까지 다 하자면... 70점-80점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ㅎㅎ. (너무 겸손하시네요!)


3-3. 그럼 희찬 님이 그리던 미로 중에 이것은 나의 마스터피스다,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했던 작품이 혹시 있을까요?

'적응'이라는 그림이 있어요. 언제 또 좋아하는 그림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지하철 풍경을 그린 건데 자세히 보면 건물이 조그마하게 다 있는 그런, 그 건물 사이를 지나다니는 그런 미로 그림이거든요. 아무래도 그렇게 세밀하게 그렸던 적이 많이 없어요. 대학 와서도 과제하느라 바빠서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KakaoTalk_20250615_175353910.jpg 미로소년, 희찬의 인스타그램



4. 희찬 님의 그림을 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주셨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미로에다 그림까지 접목시키려고 하는 시도가 좀 생소한 감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게 진짜 미로가 맞아?' 하면서 직접 풀어보려고 하거나 하는 그런 반응이 제가 좀 좋아하는 반응이긴 합니다. 진짜 어쨌든 답을 다 만들어놨으니까 좀 사람들이 좀 풀어봐야지 또 의미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렇죠. 저도 맨 처음에 일견 봤을 때는 이 그림들이 사실 미로라기보다는 어떤 그냥 작품이네. 어, 자세히 보니까 이거 미로네, 했어요.) 일부러 자세히 봐야 미로인 것을 알게끔 그리고자 해요. 감상으로도 즐길 수 있게끔요. 그런 식으로 요즘엔 그리고 있어요.



5.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같은 게 있으실까요?


일단은 원래는 미로 책을 내는 게 거의 그런 걸까, 최종 목표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진행형이라 준비하고 있긴 합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요즘은 3D 프린팅으로 미로를 만들어서 구슬 넣어서 굴리는 식으로 모델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미로를 최대한 활용해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하고 있습니다.



6.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희찬 님의 미로 그림을 접하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처음 미로를 그렸을 때는, 그냥 저 혼자 즐기고 끝날 것 같았거든요. 사실 보통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지 미로 그리는 걸 가르치진 않잖아요. 그래서 이런 거 미로 잘 그려봤자 별로 소용없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고, 꿈에도 뭐 미로 디자이너라고 적어놓긴 했는데, 이게 미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긴 한 건지 그런 생각이 좀 들었거든요. '없으면 내가 만들어야 되나?' 그런 생각들. 근데 부모님이 지금 제가 페어 하는 것처럼 그냥 플리마켓 같은데 나가서 미로 그림을 200원, 2000원 주고 팔 수 있게끔 해주셨었어요. 그때 좀 봤던 사람들의 반응이 좀 지금까지도 원동력이 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별거 아닌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계속해보니까 이렇게 또 발전이 된 거잖아요. 그래서... 음... 뭔가 도전해 보자! 뭔가 즐거운 게 있으면 그걸 한번 도전해 보자. 뭐 즐기면서 도전해 보자! 이런 메시지를 드리고 싶어요. 하찮아 보인다고, 별거 아니어 보인다고 해서 그게 정말 별거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막히면 포탈을 만들고, 중간중간 확인하며 미로를 그려나간다는 희찬의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답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방향을 만들고, 새로운 포탈을 만들어 도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희찬은 그걸 그림으로 해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는 그냥 조용히 기다리면서.


삶은 그렇게 조용히 이어지고, 아주 천천히 또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알게 될 것이다.

길이란 결국 찾는 것이 아니라, 희찬처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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