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빈, 스물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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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한다.
이 질문에 진심으로 다가가는 젊은 스님이 있다. 인터뷰를 하기 전, 스님은 평온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스님은 조금 달랐다.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사람. 열세 살에 출가를 결심한 석빈의 이야기이다.
0.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네. 안녕하세요, 저는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부 공부를 하고 있는 석빈 스님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1. 일단 스님이라고 하면 보통 되게 안온하고 좀 평화로운 그런 느낌을 저는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해요. 근데 스님도 인간이다 보니까, 사람이다 보니까, 스님도 요즘 지치고 흔들리는 날들이 있는지, 그럴 땐 또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시는지 궁금합니다.
아, 네. 저도 이제 분명히 힘든 날들이 있고, '내가 하는 일이 맞나?' 하고 의심하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지금 이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려고 합니다. 나의 몸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은 확실히 나아지더라고요. (몸에 대해서요?) 그렇죠. 나라는 사람은 지금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벗어나서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내 몸 자체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나라는 사람이 지금 사회적으로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나, 몸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이런 식으로 좀 생각이 흘러가서 확실히 음, 안정이 되고 또 나중에 어떤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수양 같네요). 네, 일종의 '호흡법'인데 호흡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ㅎㅎ.
2. 되게 젊은 나이에 출가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젊은 나이에 출가를 결심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제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원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출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오, 엄청 어릴 때부터 생각하셨군요). 그렇죠. 그때부터 진로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고, 일단 저의 꿈으로 가지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 이후에 중학교 1, 2, 3학년 동안 그게 변하질 않아서. 그래서 내가 지금 이만큼 출가를 생각했으면 언젠가는 출가할 것 같은데, 그냥 고등학교 공부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그래서 '고등학교 가기 전에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습니다.
2-1. 제가 열세 살 때는 그냥 친구들이랑 놀기 바쁘고, 꿈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막 학원 땡땡이치고 이렇게 다녔을 때인데 어떻게 그때부터 진로 고민을 하시게 되셨나요?
진로 고민은 아니었어요. 제가 진로 고민을 할 것 같았으면 사실 다른 꿈들도 있어야 됐었는데. 그냥 꽂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진로라고는 표현하긴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어릴 때 남자애들 축구 선수가 꿈인 것 같은. (아,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떠올렸다가 맞는 것 같네요.
3. 많은 종교가 있었을 텐데, 왜 ‘불교’를 고르게 됐는지 진짜 이유를 듣고 싶어요
불교를 택하게 된 이유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 이유는, 제가 원래는 교회를 다녔어요. (아, 정말요?). 다닌 연도 년수를 재면 9년이 됩니다. (근데 그럼 교회를 다니시면서 출가 생각을 하게 되신 건가요?) 그렇죠. 왜냐하면 제가 열심히 교회나 기독교에 대해 배우지 않아서 오해를 했던 건데.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져야만 하고, 의심하지 말고 그분의 말씀만 따라야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다' 이런 가르침이 있었는데, 저는 이게 싫었어요.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그렇군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20대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랑, 스님께서 예전에 가지셨던 그런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져야 된다, 이런 식의, 약간은 오해가 섞인 그런 생각들이 되게 닮아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네, 맞는 것 같아요. 반면에 두 번째 이유는 저희 집에 불교 만화책이 있었어요. 일본 작가가 쓴, 좀 조금의 왜곡이 있긴 하지만 재밌게 불교 이야기를 풀어낸 그런 책이 있어요. 거기에서 그런 장면들이 나왔거든요. 어떤 예언자인 수행자(아사지)가 싯다르타하고 같이 수행을 해요. 아사 지는 자기가 죽을 날을 알고 자기의 몸을 굶어 죽기 전인 늑대 새끼들한테 물어뜯겨 죽거든요. 그걸 보고 또 싯다르타는 울면서 감명을- 자극을 받고, 그 훗날부터 홀로 수행을 하면서 열심히 정진을 해요. 저도 그 장면을 보고 뭔가 생명에 대한 절대적 자비가 저는 왠지 모르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오, 그렇군요) 분명히 극단적인 건 맞는데 뭔가 와닿았던 거죠.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이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저한테 '내가 앞으로 생각을 해야 될 방향'으로 잡혔었던 것 같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살아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교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3-1. 20대 사이에서 불교가 요즘 인기가 많다는 통계 자료가 있더라고요. 그거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확실히 이 뉴진스님을 기점으로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 (뉴진스님이요?) 제가 느끼기엔 좀 그렇거든요. 불교를 막 제대로 알아서 막 좋아하는 느낌보다는, 불교가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그동안 불교는 수행 위주로 지내왔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데 있어서는 좀 소극적인 편이었어요. 이제는 대중들에게 다가가자 하고 뉴진스님부터 시작해서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죠. 그랬더니 대중들이 이제 신선하게 느낀 것 같아요. 무소유라든가, 명상 같은. 그런 것들이 새롭고 또 자신들에게 필요했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거라 느껴요. 그래서 또 불교가 이 시대에 필요한 걸 제공할 수 있어서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기독교랑 불교만 조금씩 아는데, 기독교 같은 경우는 생활양식을 제공해 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냥 그 사람의 어떤 절대적인 무언가를 따르고 어떤 교리를 따르고 뭔가 이런 게 바탕이 된다면, 불교는 좀 더 내가 어떤 수행, 무소유라는 마음가짐이라든지 아니면 명상이라는 행동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좀 더 사람들한테 어떻게 행동하면 좀 더 좋은 걸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이런 양식들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 같아요.)
4. 그렇다면 20대 또래들과 비교했을 때 스님은 어떤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음, 똑같이 20대 들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사는 것 같아요. 근데 그 고민의 방향이, 사회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취업도 해야 되고 결혼도 해야 되고 그런 조급함이 있으니까, 그런 쪽으로 많이 쏠려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좀 인간의 본질적인 거를 많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내가 '나'라는 사람 자체로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그러면 그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거에 대한 궁금증이 있습니다.
4-1. 그러면 스님께서 생각했을 때 본인은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일단 사고방식을 되게 유연하게 가져가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약간 개방적인?) 그렇죠. 네. 하다 보니까 위험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많이 배우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어, 근데 저도 지금 딱 생각했을 때 개방적인 / 스님, 이렇게 두 가지 키워드가 되게 신기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양립할 수 있나? 이렇게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개방적인 스님은 또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사회에서 보기에는 아니실 수도 있긴 해요. (그런가요? 어떤 부분이 그런가요?) 저희는 이제 사회에서 죄라고 하지 않는 것들을 이제 하지 말라고 하니까. 이제 기준 자체가 좀 다른 거죠. (아, 일반인들과는 기준 자체가 다를 수 있겠다는 느낌이겠군요!)
5. 처음으로 불교를 ‘신앙’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음. 저희 십 대들 이 출가를 하면은 저희 종단에서는 가수계라는 걸 해주거든요. (가수계요?) 예. 임시수계라는 소리예요. 이거는 원래 수행자가 출가를 하면은 그 불법승이 세 가지의 규를 시키고 다음에 계를 줘요, 원래.
근데 십 대 같은 경우는 일단 먼저 주는 그런 혜택 아닌 혜택들이 있는데. 그때 불법승께서 '계율을 지키겠느냐' 하면 '지키겠습니다.'라고 대답하거든요. 그때 그 순간에 받아들인 것 같아요.
6. 불교가 흔히 비움의 철학이라고 많이들 얘기를 하는데 스님은, 이제 석빈 스님은 일상, 요즘 일상에서 어떤 걸 비우고 계신가요?
일단 제가 계속 살아가고 그러면서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곤 하는데요. 부정적인 생각은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긍정적인 것들을 그 빈자리에 채우려고 계속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이런 노력들을 하다 보면은... 나도 모를 때 영감들이 막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어떤 영감이죠?) 긍정적인 어떤 생각들에 대한 영감이요. 깨달음은 분명 아닌데 내가 긍정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까? 하는 데 있어서 오는 뭔가 앎들. 약간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긍정적인 것을 그곳에 넣는 것을 의식적으로 하다 보면 뭔가 무의식적으로 그 앎, 깨달음들이 약간씩 올라오는 그런 느낌으로요.
뭔가. 어, 네. 그런 거 있지 않나요? 사람들이 살면서 자기가 생각해도 좋은 것 같다 싶은 것들을 이제 적어놓고 정리하는 노트. (그런 거를 저는 딱히 정리하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이렇게 띠용하고 떠오르잖아요. (어, 혹시 스님만의 노트가 있나요?) 있었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이제 요런 조그마한 수첩들에다가 적어 놓다가 또 잃어버리고 또 적다가 잃어버리고. (음, 잃어버리면 아쉽거나 그러진 않으세요?) 제가 열심히 살면 다시 일어날 영감들이라 생각을 해서요. 아쉽지는 않아요.
(아. 그것도 약간 깨달음 노트처럼 정리해서 나중에 뭔가 이렇게 일반인에게 전달해도 좋을 것 같아요.)
7. 이십 대들이 불교에서 진짜로 얻어가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불교라고 하는 것은 제가 느끼기에 정말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는 종교라고 생각하거든요. '철학적으로 더 사고가 깊어지고 싶다' 해도 불교가 충분히 그 철학을 제공해 줄 수 있고, '부처님을 믿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다' 해도 충분히 그렇게 해줄 수 있고. 또 '스스로 수행을 해가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 해도 그것도 우리가 잘하거든요ㅎㅎ. 그래서 음. 철학이나 믿음이나 수행이나 이 세 가지 중 원하는 게 있다면, 어느 절이든 좋으니까 불교에 와 가지고 스님들한테 질문하고 원하는 마음의 평안을 얻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8.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요?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가끔씩 게으르고 길을 잃을 수 있지만 그래도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님이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말일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자꾸만 시선이 나 자신한테 돌아갔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듣다가 그 사람의 삶보다 내 삶을 먼저 돌아보게 되는 순간 말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지?’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 오랜만에 나 스스로에게 꺼내보았다. 석빈의 말들 속에는 거창한 답도, 거센 주장도 없었다. 대신 작은 문장들이 있었다. “몸에 집중해요”, “게을러도 다시 일어나면 돼요” 같은, 조금은 느슨하지만 그 느슨함 덕분에 오래 남는 말들.
비우는 법, 긍정하는 법,
그리고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는 법.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건 종교뿐만이 아니라 그런 '마음의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이, 당신의 오늘에도 작게나마 숨을 고를 틈이 되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