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감각의 기록이 되다

유선 작가

by 케쓰


고개를 조금만 기울이면, 평범해 보이던 사물의 결이 달라진다. 유선작가는 그러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물체를 바라본다.


흙을 빚는 손끝에서 시작된 그녀의 작업은 단지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삶의 균형, 감정의 무게,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조형 언어로서 자리한다.


흙이라는 재료 속에 자신의 감각과 시선을 밀어 넣는 유선은 오늘도 '기울어져 있지만 단단히 서 있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글은 한 사물을 감각의 대상으로 다시 바라보려는 한 예술가의 사유이자,

흔들리면서도 꿋꿋이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0.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도자 작업을 기반으로 사물의 다층적인 감상과 개인의 시선을 조형 언어로 풀어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원유선입니다. 사물에 대한 고정된 의미나 관점을 넘어서, ‘나의 감각’과 ‘나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해석을 작업에 담고자 합니다. 손끝의 사유와 몸의 감각을 통해, 흙이라는 재료 속에 나의 시간을 기록해가고 있습니다.



1. 작가님의 작업노트를 보면 ‘기울어진’ 기라는 표현이 작가님의 전반적인 작업을 나타내는 키워드인 것 같아요. 작가노트에서도 충분히 설명해 주시긴 하셨지만 기울어진 이라는 문구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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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관찰의 시점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대개 사물을 정면이나 정중앙에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지만, 저는 일부러 고개를 기울이거나 낯선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며 익숙한 형태에서 낯선 감각을 발견하곤 합니다. 다른 하나는 감정과 삶의 상태로서의 ‘기울어짐’입니다. 저의 기물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단단히 서 있습니다. 불안정해 보이지만 중심을 잡고 있는 그 모습이 제 자신과도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울어진 기’는 시각적 관점의 전환이자, 흔들리면서도 스스로를 지탱해 가는 존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2. 도자기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나 지금의 작업 세계로 오게 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도자기를 처음 접한 건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면서였지만, ‘기’라는 사물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감각하는 작업을 시작한 건 영국에서 석사 과정을 하며 본격적으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도자기를 단순히 전통적인 공예나 역사적 대상이 아닌, 감각적·철학적 매체로 바라보는 시각이 열려 있었고, 저에게도 그게 깊은 영향을 줬습니다. 그 이후, 도자기를 ‘기록물’이나 ‘완성된 의미’로 보기보다는 해석 가능성이 열려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작업 세계로 이어졌습니다.


2-1. 유물을 ‘객관적 정보’가 아닌, ‘주관적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본 경험이 인상 깊다고 하셨어요. 그 수업에서 어떤 점이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나요?


그 수업에서는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을 ‘감상자 개인의 시선’으로 해석해 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가장 큰 전환점은 “정보를 아는 것”이 오히려 감상을 제한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처음엔 조선 백자 병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역사적 의미나 제작 시기 같은 배경지식이 떠올랐고, 그걸 내려놓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맥락을 지운 채 바라보려 하니 낯설고 불안한 감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의도적으로 색, 형태, 질감 등 눈앞에 보이는 시각적 정보에만 의존해 해석해 보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유물이나 사물을 설명 이전에 ‘감각의 대상으로 먼저 바라보는 훈련’을 하게 되었고, 그 경험이 지금까지의 제 작업 세계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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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자기를 역사 기록물로만 여겼던 과거의 시선을 부끄러워했다고 하셨어요. 현재는 ‘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변화가 작품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나요?


과거에는 ‘기’를 전통을 담은 기록물처럼 느꼈습니다. 도자기를 볼 때면 자연스럽게 역사적 의미나 미학적 가치 같은 배경지식부터 떠올렸고, 그것이 마치 감상의 정답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들은 한 수업을 계기로 그런 시선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수업에서는 유물을 객관적 정보 없이 바라보고, 감상자 개인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해석해 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엔 익숙한 사물조차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색, 형태, 비례, 질감 같은 ‘보이는 정보’에 의존해 관찰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고, 오히려 그 과정이 제 안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기’가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나의 감각과 해석이 개입될 수 있는 열려 있는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기’를 바라보는 저의 태도도 변했습니다. 조선 백자 병을 관찰하던 중, 외형이 아닌 내부 공간을 상상하며 접합 부위를 열고 새로운 형태를 그려보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외형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사물을 해석하고, 조형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물을 ‘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선을 기울인다는 행위, 즉 물리적 시점의 변화가 저에게는 중요한 전환이 되었습니다. 고개를 기울여 사물을 보니, 보이지 않던 면이 보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형태가 포착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작업에서 ‘기울어진 기’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기울어진 기’는 단지 비정형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대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이자, 동시에 저 자신과의 연결 방식이기도 합니다. 기울어진 형태는 어딘가 불완전해 보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불안하지만, 결국 제자리를 지키며 서 있습니다. 그 모습은 혼란과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저 자신과 닮아 있었습니다. 제게 ‘기’는 이제 과거를 담은 그릇이 아니라, 나의 감각, 시선, 해석이 투영되어 현재의 나를 반영하는 조형적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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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작업에 담아낸다고 하셨는데요. 실제로 창작 과정에서 어떤 시각적 장치나 형식을 통해 이를 표현하고 계신가요?


저는 한 형태를 위, 옆, 기울어진 각도에서 관찰하며 곡선과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집중합니다. 간단한 스케치를 많이 하면서 형태가 시점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포착하려 노력합니다. 특히 기물과 기물 사이 틈에서 나타나는 선들을 찾아내고, 그 선을 잘라보고 기울여보며 상상하는 과정도 작업에 큰 영감을 줍니다. 그리고 형태를 만들면서 얼마나 나의 신체가 함께 기울어지는지, 작품과 어떤 리듬으로 호흡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동영상 촬영도 병행합니다. 이러한 시각적 기록은 작업하는 몸과 형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렇게 시점에 따라 변하는 리듬과 면을 작품에 담아내려 합니다.




5. 작업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나 과정이 있을까요? 사진과 함께 나눠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팬데믹 시기, 학교 출입이 제한되면서 기숙사에 틀어박혀 작품을 연구하던 때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1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위기감과 절박함이 컸습니다. 학교에서 택배로 보내준 5kg의 흙과 간단한 도구, 종이, 색채 도구가 제 전부였고, 공간도 도구도 제한된 상황에서 가능한 표현 방법은 오직 핸드빌딩뿐이었습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빚어야 했기에 집중은 더욱 깊어졌고, 반복적인 수정과 수작업의 무게를 온전히 감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시간이었고, 동시에 내가 얼마나 다양한 장비에 의존해 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작업과 연구를 멈추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당시의 핸드빌딩은 단순히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저에게 ‘반복의 리듬’을 몸으로 익히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과 흙의 반응 사이에서 무언가 축적되는 감각이 있었고, 그것은 마치 몸속에 기록되는 사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저에게 지도교수님은 필립 글라스의 Metamorphosis를 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반복되면서도 매 순간 미묘하게 달라지는 리듬이 핸드빌딩의 감각과 닮아 있다는 점을 느껴보길 바라셨던 것 같습니요. 덕분에 흙뿐 아니라 소리, 리듬, 움직임 같은 비물질적인 감각으로까지 작업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그 경험은 핸드빌딩이라는 조형 행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핸드빌딩은 저에게 가장 진솔하고 내밀한 조형 방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6. 흔들리면서도 꿋꿋이 서 있는 '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시는 위로나 응원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관람자, 대중에게 어떤 감정을 가장 나누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기울어진 기’는 마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형태는 기울어지고 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있지만, 끝내 쓰러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저 자신과 닮아 있었고, 관람자에게도 "흔들리더라도 괜찮다, 그렇게 서 있는 당신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가마 문을 열기 전에는 항상 두근거립니다. ‘잘 견뎠을까? 버텼을까?’ 하는 걱정과 기대가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었을 때 작품이 무너지지 않고 잘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참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기’가 고온의 열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더욱 단단해진다는 사실에 늘 감동을 받습니다. 불완전하고 비뚤어진 모습 속에서도 견고하게 버티는 ‘기’처럼, 우리도 흔들리면서도 꿋꿋이 설 수 있음을 함께 느꼈으면 합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비춰보고 위로를 얻길 바랍니다.



7.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나의 손끝, 나의 몸, 나의 시간, 나의 땅'이라는 요소들을 계속 담아낼 계획이신가요? 앞으로 확장하고 싶은 주제나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재료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의 작업에서 ‘재료’는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도구를 넘어서, 저 자신을 구성하는 서사와 감각을 담아내는 매체입니다. 요즘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하나씩 깊이를 더하자는 마음으로, 그 출발점을 재료에 두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에서 가져온 흙과 유약 재료를 섞어 화학반응을 유도하는 등, 재료의 물성을 확장하는 실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개인적인 장소성과 기억을 재료에 스며들게 하는 동시에, 보다 밀도 있는 조형 언어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기’라는 형태를 통해 감정과 시간성, 감각의 층위를 드러내는 표현 방식에 대한 연구는 현재의 재료 실험 이후 차후 단계로 남겨두고 있으며, 앞으로 다양한 형식으로 그 확장을 시도할 계획입니다.





흙은 생각보다 무겁고

그 무게는 고요히 감정과 시간을 품는다.

유선작가가 보여준 '기울어진 기'는 단지 형태가 아니라 태도였다.

그 안에는 손끝의 사유, 흙을 통해 전해지는 시간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단단히 서있는 그 형태는

우리의 삶과 어쩐지 닮아있다고 느껴진다.


삶도, 감정도, 시선도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것을

기울어져도 좋고 중심이 어긋나도 괜찮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중심을 찾아가고 있는 하나의 '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다시 사물을 바라본다. 조금은 고개를 기울여, 조금은 더 낯설게. 그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감각을 열어볼 수 있게 되었다.




keth와 인터뷰하러 가기 > https://buly.kr/74WsBQ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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