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의 사유, 타인의 삶을 짜올리는 사람

인경 작가

by 케쓰

작가 인경은 뜨개질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억'과 '삶'을 기록한다. 처음엔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타인의 얼굴과 인생으로 시선을 넓혀간다.


단순히 감정을 담는 것이 아닌, 존재를 묘사하고 기록하는 행위.


그녀의 작업은 말하듯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 생각한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다. 뜨개질로 타인의 삶을 한 땀 한 땀 떠낸다는 말이,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있을까.





0. 안녕하세요 작가님!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신당 창작 아케이드에서 청년 공예 분야로 활동하고 있는 최인경이라고 합니다.



1. 작가님의 감정과 생각, 작품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참 다양했을 텐데요, 어떤 계기로 '뜨개질'을 선택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서양화랑 공예학과 두 개를 전공을 하고 졸업을 했기 때문에 좀 자연스럽게 다양한 매체를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래서 원래는 도자기를 전공을 해서 도자기에도 해보고 가구도 만들고 일반적인 유화나 아크릴화 같은 드로잉도 해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죠. 학부생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를 해보니까 어느 순간 '뜨개질로 작품을 하면 어떻게 될까?' 라는 궁금증에 단순히 시작을 하게 됐었어요. 왜냐하면 뜨개질이 원래는 그냥 취미였거든요. 집에서 담요 뜨고 뭐 캐릭터 만들고 그런 취미였는데 이거를 작업으로 해보자라는 그냥 가벼운 시도로 시작을 했었어요.

저는 전업 작가로 살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했을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걸 찾아서 오랫동안 해야 할 수 있는 그런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한테는 그게 그 수많은 재료와 방법 중에 뜨개질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나타내고자 하는 어떤 그 주제라거나 이야기랑 서사적으로 굉장히 잘 맞는 부분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개인적으로 뜨개질을 저희 외할머니한테서 어렸을 때 배웠는데, 지금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가족을 소재로 다루는 일이 많다 보니까 서사적으로도 굉장히 좋고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모계로 이어져 내려오는 어떤 기술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감상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걸로 계속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또, 어떤 형태를 유지하기가 힘든 매체가 아닌가 하는데 그게 사실은 맞아요. 다른 물성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상 천 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사실 어떤 입체 조형물을 표현하기보다는 평면 조형을,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뜨개질로 그림을 그려볼까 하는 그런 시도에 더 가까운 평면 조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면으로는 무리가 없을 거다, 뜨개질이라는 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게 힘들다라는 생각은 크게 안 해본 것 같아요. 내가 다른 물성의 힘을 빌려야 할 때는 그냥 그때그때 하면 되는 거고 이런 생각을 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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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뜨개질이 저는 약간 참을성이 많이 부족해서, 이걸 뜨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로 저는 알고 있거든요. 뜨개질을 뜨실 때 혹시 어떤 생각을 하시면서 뜨시나요?


일단 작품마다 다른데 제 방에 걸려 있던 벽면에 있던 작품은 한 달 조금 넘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뜨개질을 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좀 명상적인 효과를 불가피 일으키는 그런 것도 있거든요. 그래서 좀 깊게 사유를 하게 되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제 작업 주제와도 연관되기는 하는 어떤 생각을 하곤 해요. 뭔가 타인의 삶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요. 뭐 예를 들어 제가 가족을 소재로 하고 있잖아요. 어쨌든 내 자신이 아니라 남이잖아요. 가족이라는 건 타인. 그래서 이 타인의 삶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해요.이 사람이 내가 몰랐었던 어떤 그 시절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이 사람의 인생이 어땠을지, 뭐 그런 거를 상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입장도 좀 생각해 보는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어떤 특성, 그러니까 사유를 하게 된다는 특성과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뜨개질을 하면서 타인을 생각한다는 그런 과정과 경험이 맞물려서 시간을 들여서 '타인의 삶을 좀 뜨개질로 한 땀 한 땀 짜낸다.' 이렇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리고 작은 바늘땀이 여러 개가 모여서 천을 형성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세포가 모이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보통은 다른 사람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근데 이거 표현이 되게 좋은데요. 약간 뜨개질로 타인의 삶을 한 땀 한 땀 떠낸다라는 표현이요.)


그게 제가 제 작업을 관통하는 어떤 문장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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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스타그램 작업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떠올랐습니다. 혹시 실제로 가족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것과 관련된 감정을 작품으로 남기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 작업의 어떤 출발선상은 나에 대한 탐구였거든요. 왜냐하면 작품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를 나답게 표현하는 거에서 시작되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탐구가 가장 기초적인 시작이 되었어요. 탐구의 대상 혹은 관찰의 대상이 나에서 이제 나와 가까운 타인, 가족으로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고 이해하시는 게 가장 저의 의도와 맞는 대답인 것 같아요. 나를 보다 보니까 어떤 나를 구성하는 타인의 유전자를 보게 되는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 가족이 나한테는 뭔가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인생이 또 따로 있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삶을 조금 더 돌아보게 되고, 그래서 앞으로는 이제 저와 아주 관계가 없는 완벽하게 낯선 사람인 사람의 어떤 삶도 조금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그래서 관찰의 대상을 나에서 점점 더 확장해 나간다고 생각하시면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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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그러면 작가님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사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정의내리고 사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 대답 해드릴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저는 지금 '나를 찾아가는 시기'를 살잖아요. 사람들이 자기 삶을 살면서 노년이든 중년이든. 근데 청년 세대는 더 그걸 잘 찾잖아요. 찾아야만 하는 그런 세대잖아요. 저도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회사원이었다가 지금은 문화재단 밑에 있는 작가도 됐다가 하는데, 뭔가 그런 변화의 시기에서 제가 생각하는 저는 작업을 오랫동안 평생 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저 스스로.


그리고 작품적인 측면에서는 저는 작업의 감정을 막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 대상의 모습을 실로 좀 묘사를 하려고 하는, 조금 더 구상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감정을 작품에 이렇게 많이 쏟아내는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기록하려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었어요. (작업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서 설명하면 내가 타인을 바라볼 때 느끼는 나의 감정, 감정을 작품에 담아내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그 대상의 모습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품에 담아내는 것. 그 모습을 그대로 작품에 담아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뜻이에요. 감정을 담는다는 건 좀 더 추상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겠죠. 내가 생각하는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3-2. 그럼 혹시 작가님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록일까요?


시간은 많은 것들을 퇴색시키잖아요. 변질되기도 하고 잊혀지고 흐려지고 하는 그런 시간 때문에 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도 아까 말했던 자아에 대한 탐구를 하다가 든 생각인데, 아무튼 그런 인생의 불확실성과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노스탤지어라고도 설명할 수 있는데, 아무튼 그렇게 자꾸 퇴색되고 변질된다면 어떤 한 순간을 작품으로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도록 기록해 놓자 라는 뜻에서 기록이 더 가깝거든요. 그래서 제가 쓰는 자료도 대부분 다 옛날 자료에서 가지고 와요. 그래서 지나간 어떤 과거의 한 순간을 붙들어 놓자. 그런 의미의 기록이 좀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대답을 하자면... 타인의 모습을 저의 눈과 손과 작업을 겹치기 때문에 완벽하게 기록을 해두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그냥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이걸 만들었고, 그럼으로 인해서 그 사람의 어떤 인생의 한 조각이 작품으로 남았다는 것. 거기에 좀 더 초점을 두기 때문에 이 사람이 뭐 안 닮았다라던가, 아니면 그때 모습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그런 평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본질이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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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연하고 따뜻한 니트를 만들기 위해서 적당한 장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문장이 좀 인상이 깊었는데요. 그러면 역으로 작가님은 어떤 삶의 조건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게 그 문장이 사실 제가 쓴 글이 아니고 우연히 구매했던 책 안에 있는 문장인데, 그게 그 당시에 너무 공감이 돼서 제가 그렇게 인스타그램에 게시를 해놨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뭔가 회사원, 그러니까 내가 현실적으로 해야 될 것 같은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장력을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전업 작가로서, 그리고 레지던시에 소속된 작가로서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욕망의 표현, 그러니까 표현하고 싶은 욕망. '내가 이런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욕망과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작업 사이에 장력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었어요.그러니까 예를 들어 레지던시에 왔더니 이런 책상에 놓일 수 있을 간단한 오브제가 있어야 단체전에 나갈 수 있었다는 말을 했잖아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작업을 해봤지만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거랑은 살짝 거리가 멀거든요.

(오브제에는 어떤 기록이 들어가나요?)

키워드중 하나가 노스텔지어, 회상인데요. 사전에 회상을 검색하면 뭐 인간이 뭐 예전에 거를 떠올린다, 추억한다 이런 의미도 있어요. 한 번 썼던 사물을 다시 재생하는 일이라는 뜻이 있어요. 그래서 내 작품을 구성하는 실을 오브제로 다시 탄생하게 하면 이것도 회상의 한 갈래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자투리실이라고 부르는데 작품을 확 뜨고 남은 진짜 한 뼘 되는 그 실들이 나오는데 보통 그걸 다 버려요. 쓸 데가 없으니까. 근데 저는 안 버리고 몇 년 동안 모아놨거든요. '이게 다 쓸 일이 있을 거다'라는 생각 때문에 모아놨다가 이제 그거를 오브제로 만듭니다. 활용을 했는데, 제 오브제가 이렇게 좀 삐죽삐죽한 색깔 실들이 삐져나와 있었잖아요. 그게 다 원래는 버려졌어야 하는 실이에요. 그래서 좀 작품에 쓰인 실을 다시 재생해서 오브제로 만들었다는 의미의 사물 회상이라고 설명을 하고는 있어요. 그렇지만 실험 중, 시도 중의 한 부분이지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고, 앞으로 만들어나갈 작업의 결과와는 그렇게 가깝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5. 새로운 프로젝트나 개인전에서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주제나 기술이 있나요?


저는 늘 크게 크게만 해왔기 때문에 (오브제로서의) 작품을 작게 만들면서도 완성도를 높이려면 좀 연습을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 계속 작업을 시도를 해볼 것 같고요.주제 같은 면에서는 뭔가 타인의 삶이라거나 아니면 과거 자료를 소재로 기록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전체적인 주제 안에서 움직이겠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인물을 묘사하는 것 외에도 한글에 대한 관심도 있어서 뭔가 종이 같은 것에 글씨가 적혀 있는 걸 뜨개질로 옮겨 놓은 듯한 그런 평면 조형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예를들어 옛날 출생증명서를 그대로 이렇게 본따서 작품으로 만드는 것도 재밌겠다, 이런 생각도 하고. 그래서 제가 말하는 주제 안에서 대상을 좀 더 다양화시키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물도 드로잉을 해서도 이렇게 만들어보고 싶고. 지금은 인물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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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경 작가님의 작품을 마주한 관람자들이 혹은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시나요?


저는 그런 감상의 방향이나 그런 걸 일부러 정해놓지는 않는 편인데. 음, 제가 이제 작품을 만들면서 타인의 삶을 좀 돌아보게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작업을 보는 관람객들도 뜨개질로 인물의 모습을 떴는데,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그냥 궁금증과 그런 간단한 상상. 그러니까 작품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삶을 한번 생각해도 되거든요. 그런 경험이면 충분하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7. 작품을 즐기는 독자님들께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많이 봐주세요." 그런 거 말고는 생각이 없어요. 왜냐하면 뭐 제 작품을 보고 "이런 감정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그런 어떤 의도를 심어주고 싶지 않아서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제 작업을 보고 "아, 이 사람 가족이 너무 소중한가 봐." 이렇게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 사람 되게 웃기게 생겼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냥 다들 다양한 생각을 할 텐데, 내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했으니 "이렇게 느끼세요." 하는 메시지가 전달되지 되는 걸 원하지 않아서. 그래서 그런 말을 빼니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잘 봐주세요 (웃음).





실이라는 매체는 흐트러지기 쉽고, 형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인경작가는 그 유연한 물성을 오히려 '기억'이라는 테마와 연결해낸다.

버려졌을 자투리 실을 오브제로 살려내고, 다양한 의미들을 실로 다시 짜보려는 시도.

이 모든 작업은 잊히고 퇴색되는 시간을 향한 작가의 조용한 기록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손끝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떠내려간 이야기 하나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keth와 인터뷰하러 가기 > https://buly.kr/74WsBQ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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