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작가
곡선은 한 번 흐르기 시작하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
소명 작가의 작업 속 선들도 그렇다. 원시의 본능과 무의식에서 비롯된 곡선들은 서로를 이어주고, 전혀 다른 존재마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상실과 애도의 시간을 지나온 손길은 가구와 조형물 위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그의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서로를 잇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0.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가구와 조형작업을 하고 있는 이소명입니다. 주로 원시와 인간의 본능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면 긴 선으로 표현되는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실 때 길다란 선으로 표현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주로 곡선의 흐름이 느껴지는 긴 선을 많이 사용하고, 작업 전체적으로도 선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신경 씁니다. 저에게 밴딩 우드로 표현되는 긴 곡선들은 ’연결‘을 상징합니다. ’연결‘은 제 작업에서 중요한 키워드이자,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물리적인 연결 뿐만 아니라 본능, 무의식, 존재 간의 비가시적인 관계들을 시각화하고자 할 때, 이 곡선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곤 합니다.
1-1. 작품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정한 가치나 주제가 있다면요.
저는 원시나 인간의 본능,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다룹니다. 이전에는 원시 미술이 지닌 주술성을 모티브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불안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작업에 담았습니다. 최근에는 전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원시기호들을 모티브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애도’와 관련된 작품이나, ‘지팡이’ 같은 작업물을 보고, 저는 상실에 대해 작가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상실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말씀해주신 ’애도‘와 ’지팡이‘ 작업을 하면서, 지난 해 죽음과 상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애도‘ 작업에서는 상실을 겪은 후에도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을 애도하고자 했습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가 ’생‘을 가장 피부로 느끼게 되는 순간은 주변에서 상실과 죽음을 겪을 때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한 죽음의 경험 이후에 삶을 더욱 존중하게 되고, 존엄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힘을 느꼈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작업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 작업은 상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질긴 생명력과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구체화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2-1. 작품 해석에 대한 독자 반응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프로스페로 선반 작업을 페어에 출품했을 때, 몇몇 관람객 분들이 “이거 캣타워예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용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꽤 재미있었습니다. 제 의도와는 다른 방향의 해석이었지만, 오히려 고양이의 시각도 상상해본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3. 창작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일상 속 풍경, 여행, 글귀, 사람 등) 작업을 시작할 때는 보통 어떤 형태로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구현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이동 중에 이런저런 잡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렇게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불현듯 창작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이미지로, 어떤 때는 문장이나 단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럴 땐 휴대폰 메모장이나 작은 노트에 간단히 기록해두고, 이후 3d 모델링을 통해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답답할 때는 작업실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일단 밖으로 나가보려고 합니다. 거리를 걷거나 카페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보면 의외의 생각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4.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나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요?
저는 작업을 통해 결국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가능성에 닿고 싶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를 것 같은 사람들도 뿌리 깊은 어딘가에서는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시성과 인간의 본능,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그러한 ‘보편적인 감각’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작업이 시각적으로 아주 낯선 형태이더라도, 어딘가 익숙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파편이나 기억을 건드릴 수 있는 작업을 하고싶습니다.
5. 가장 어려웠던 작품이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그 경험은 작가님의 작품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가장 어려웠던 프로젝트는 ‘애도’ 작업이었습니다. 무거운 주제였고, 처음으로 가구가 아닌 조형과 설치 작업을 시도했던 자리였기에 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저보다 훨씬 오래 작업해 오신 선배작가님들과의 단체전이었기 때문에, 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까지도 컸습니다. 또 그만큼 배운 점도 많은 전시였습니다. 기획자님과 다른 작가님들을 통해 진심으로 전시를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고, 같은 공간에서 전시를 했던 유현 작가님께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에서 제 작품을 공간에 어떻게 놓고 연출할 것인지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이후 첫 개인전을 준비할 때도 그때 경험이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6. 장기적인 창작 목표나 비전이 있다면 어떤 것들 인가요?
저는 장기적으로는 작업을 통해 타인을 완전히 분리된 ‘타자’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막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인식의 전환이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고립감, 단절, 혐오 같은 문제들에 작은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지금의 작업을 조금씩 확장해가면서, 새로운 조형언어로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죽음과 애도, 그리고 다시 걸음을 떼는 의지. 소명 작가의 작업은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삶의 단절을 넘어 연결의 가능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곡선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그 선 위에서 존재와 존재가 조용히 서로를 감싸 안는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곡선으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그 연결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