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나는 화목한 가정을 죽기 전까지 유지하고 싶어.
화목한 가정!
결혼을 상상해 보거나 가정을 이룬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에 한 번쯤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남의 집을 박차고 들어가서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지 않을까?
각자의 기준에 맞는 화목한 가정이 이 세상에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 생겨나면 오래오래 이어져 세상과 등질 때까지 그랬으면 좋겠다...
내게 있어서 화목한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모두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도닥여주며 응원하는 모습에서 만족하고 안주하는 게 아니다. 나는 욕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을 둘러보면 누구라도 그런 판단을 내릴 거다. 나 자신에게만 너른 마음을 적용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좀 시니컬해지려 한다.
돈이 부족하더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문구다.
타인의 의견은 존중하되, 나라는 사람의 기준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살면서 물질적으로 쪼달리게 되면 사람은 마음이 급해지고 여유가 없어진다. 인내심이 바닥이 된다. 밸런스 붕괴 때문이다. 재정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 느긋함이 다시 돌아오고 관대해지는 게 사람이다. 압박이 줄어드니 여유가 생긴다. 물질적으로 당장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인데 여유로우려면 성직자나 스님이 돼야 한다. 이건 지극히 내 기준이니 다른 분들과는 180도 다른 견해일 수 있음을 감안해 주시길 바란다.
화목한 가정을 논하는데 뭐 이리도 질질 끄나 했더니 결국은 돈 얘기야? 라며 식상하다거나 학을 떼는 분도 계시겠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뿐이다. 당장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내 공과금, 통신비, 집대출금을 내줄 것이며 가족들 입에 들어가는 식비를 책임질 것인가? 당연히 부부가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평생과제이다. 당장 다음 달 카드값 낼 돈이 없어 막막하다고 치자. 생활이 쪼달리면 아이들에게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이나 말투로 조곤조곤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 두어 번은 갑자기 터질 것이다. 이번 달 예산이 빠듯한데 밖에서 갑자기 외식을 하자거나 고가의 장난감을 사달라거나 친구와 어디 가기로 했다며 돈을 달라고 하면 난감할 것이다. 당장 돈 생각에 이마에 주름이 생기지 않을까?
두 사람이 같이 벌면 은행 잔고는 늘어날 것이지만 아이들이 어릴수록 정서적으로 불안요소가 증가할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와 같이 보내는 시간을 매우 중시한다. 엄마 품에서 10분이건 20분이건 계속 안겨있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니 엄마는 부채감에 주말 동안 아이들과 더 붙어있고 미안한 마음에 허용하는 것도 많아질 수 있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과하게 허용하는 모습에 남편과 양육문제로 싸울 수 있다. 예시이지만 내가 겪은 일이기도 하다. 이렇듯 항시 화목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금전적인 부분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삶이 너무 바빠도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들고 뇌가 쉴 시간이 없어서 망가지기도 한다. 번아웃이 올 수도 있고 기억력이 감퇴할 수도 있다. 돈과 육아, 그리고 건강이라는 삼박자 안에서 적정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산다는 건 누구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럴 때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생각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스스로가 채운 속박과 통제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 적당히 못하고 적당히 실수하고 적당히 꾸려나가는 모습을 수용하지 않으면 내가 가장 먼저 망가진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살아남는 법을 배워나가면서 가족들의 실수도 사랑도 수용하며 살아가니 가정이 평온해진다.
나도 아직은 좌충우돌에 모르는 것투성이고 부족하지만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 육아, 가족관계 속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면 적정한 선에서 조금씩 여유가 생겨날 것이고 그렇다면 가족이나 주변에 신경 쓸 수 있는 여유도 증가하는 것이다.
어릴 적엔 커서 누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별의별 직업을 다 언급하곤 한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더니 부모가 밥 굶는다고 안된다고 하지 말라고 아이의 꿈을 한정해 버리면 말 한마디로 그 아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범위나 가능성이 제한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이가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해도 판단하지 않고 계속 응원해보려고 한다. 아이도 크면 판단력이 생긴다. 본인도 자신이 정말 재능이 1도 없으면 스스로 다른 길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하면서 첫째를 너무 통제했더니 아이도 항상 신경이 곤두서서는 자신에게 많은 공간-가능성과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나하나 완벽한 결과를 마련해 나가려는 것보다는 성인이니까,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니까, 나만의 적절한 기준으로 구축된 이성적인 판단하에 너른 마음으로 아이를 수용하고 편하게 지켜봤더니 에너지가 금방 소진되지 않았다. 짜증을 덜 내고 웃으면서 대화하게 되었다. 그러자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지금처럼 나 자신의 3박자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맞춰 내가 하루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 배분을 잘하는 게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기반이 될 것 같다. 장황한 반성문이 되었지만 정리하고 복기해야 진짜 내 것이 되는 거라 지금 같은 과정이 항상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요악하면, 나만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