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이 찜찜한 이유
어릴 때 아침마다 문 앞에 우유와 요구르트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상황을 꿈꾸곤 했다. 슈퍼를 따라가서 어머니를 졸라봐도 작은 주황색 요구르트만 먹을 수 있었지 큼직한 흰색 요구르트는 쉽게 먹을 수 없었다. 문에 우유 가방이 걸려있는 집을 볼 때마다 매일 요구르트를 먹어서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신문도 구독하기를 바랐다. 매달 집안의 재활용품을 모아 가져 가는 폐품의 날(국민학교 시절)마다 온 집안을 뒤져 박스나 전단지를 모아 내기가 부끄러웠다. 옆집 누구네처럼 매일 오는 신문을 모아 편하게 들고 오고 싶은데.. 우리 아버지는 뉴스에 관심도 없나 보다 했다. 요구르트 건 신문이건 구독에는 돈이 들고 매달 내는 구독료가 모이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철이 들고 나서야 알았다.
신용카드를 꺼내지 않고 결제되는 약정 서비스. 주변엔 월 정기 구독으로 영화를 시청하고 원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침식사 및 피트니스까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의 경우 만화를 그리기 위한 툴과 인터넷 및 전화 요금 정도 외엔 구독하는 것이 없다. 이것도 다른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용한다. 다양한 구독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소비형태의 대세가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선뜻 구독 하기가 찜찜하다.
구독을 하게 되면 매달 귀찮은 결제의 과정과 이 서비스가 꼭 필요한 것인지 가치판단의 고민도 함께 생략된다. 그래서 수도나 전기, 인터넷, 교통 등의 생활 필수 서비스들은 기꺼이 자동이체를 걸어 놓지만 다른 서비스들은 귀찮더라도 직접 결제하며 고민을 거친다. 제대로 이용하기만 하면 사용자와 기업 모두 윈윈이지만 성급하게 구독할 경우 필요해서 이용하기보다 구독하기 때문에 이용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을 많이 겪게 되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 한 때 게임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여 저렴한 가격에 많은 게임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실제로 플레이 한 게임은 몇 개 되지 않았고 아직 깨지 못한 잔여게임들은 하지 않은 숙제처럼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요즘 구독 서비스들은 영악하다. 혜택이 명확하고 중단 및 재개를 쉽게 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얼마든지 체리피킹을 해보라고 유혹한다. 작업하면서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광고를 제거할 수 있는 구독 혜택이 무척 구미가 당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유튜브 보는 시간이 더 늘어나진 않을까? 최대한 버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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