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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큰철 Jun 29. 2019

우리는 감기를 이겨내는 법을 알고 있다

<피로사회>를 꾸역꾸역 3번 읽고 쓰는 후기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멍하다. 기침이 콜록콜록 나오고 콧물이 나온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열이 펄펄 끓는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죽을병은 아닐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고 SNS를 열어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본다.... 있다! 누구는 목이 까슬까슬하고 누구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한다. 전염병이라도 도는 것은 아닐까 병원에 찾아가 본다. 담당의사가 학명을 섞어 가며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설명한다. 당신의 면역성이 저하되어 무슨무슨 상태가 되고 무슨무슨 균에 노출되면 쏼라쏼라 블라블라... 하아..


그래서 제 증상이 뭔데요?!

 

 감. 기. 몸. 살.입니다. 갑자기 불안했던 마음이 싹 가시고 머리도 시원해진다. 막힌 코도 뚫리는 것 같다 흥흥흥-.  병원에 오느라 낸 월차를 취소하고 오후부터 출근해도 이상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다. 감기에 좋은 음식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충분한 수분 섭취와 휴식을 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감기엔 약이 따로 없다. 그래도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감기를 이겨내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


 철학자 한병철은 책 <피로사회>에서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적 질병에 대해 무척 어려운 말들로 서술한다.  이질성, 타자성, 긍정성의 과잉 등등의 전문용어들은 여러번을 읽어도 머리만 아프고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가 내린 진단, 시대마다 고유의 질병이 있고 우리는 지금 그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는 내용만으로 충분하다. 이전보다 비교적 풍요롭고 자유로운 시대에 살지만 때때로 느끼는 우울감들.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고, 의욕은 생기지 않고, 행복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인 것만 같고, 저 앞서 달려가는 남들의 그림자가 한없이 멀어 보이는 그 기분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감기 같은 거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것이다. 수능을 망치고 좌절했던 학생이 이번 수능은 어려웠다는 뉴스를 듣는 기분이 이럴까? "그래! 나만 힘든게 아니었어"


 그러면 우리를 괴롭히는 증상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당장 해야 할 일은 증상의 기원과 의의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치료하고 예방하는데 매진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 시대적 질병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이 극복해야할 질병이라는것을 몰랐을 뿐, 이미 각자 나름의 치료법을 체득하고 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고, 사소한 것에 만족할 줄 알며 의욕에 앞서지 않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 등등등. 


 이 책은 내게 어려웠다. 입력과 삭제가 동시에 되는 경험은 아주 오랜만이다. 멍 때리며 시선을 내리다 정신을 차리고 읽던 곳으로 돌아가면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왔다.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며, '내가 이해한 것이 정답일까?'불안해하며 책을 보고 또 보고, 그러다 졸고 자책하고 애쓰는 행동들이 작가가 말하는 자기 착취라는 생각이 들어 읽기를 그만두었다. 의사의 진단서를 보고 또 본다고 우리가 병을 정복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작가의 진단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면 역자후기부터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본문에 비하여 굉장히 쉽게 책의 내용을 풀이해주고 있으니.


#독후감 #리뷰 #서평 #읽고쓰고보고그리고 #피로사회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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