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커피를 먹는 이유
지금은 커피를 좋아한다 말할 수 있지만, 언제부터 커피 맛을 알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땐 커피 맛을 몰랐다. 이 쓰기만 한 검은 액체를 왜 먹는지 이해를 못 했다. 입에 대기 시작한 계기는 대학 입학 후 카페란 곳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이다. 음료를 먹으며 이야기하다 보면 이른바 페이스 조절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메리카노였다. 쓰고 뜨거워서 자연스럽게 천천히 먹게 되었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 뭔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까지 챙겼다.
한창 흡연자일 때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로 먹었다. 담배를 피우면 목이 칼칼해지는데 그 텁텁합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잘 잡아준다. 한동안 담배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아이스커피를 먹을 때 버릇 두 가지가 그즈음 생겼다.
첫 번째, 빨대 없이 먹는 것. 아이스커피는 얼음 때문에 윗부분은 연하고 아랫부분은 진하다. 이 상태에서 빨대를 꽂으면 진한 아랫부분을 먼저 먹게 되고 마지막에는 커피 향 나는 밍밍한 얼음물만 쪼르륵 마시게 된다. 하지만 컵을 기울여서 입을 대고 먹게 되면 연하고 진한 부분이 적당히 섞이면서 일정한 농도의 커피를 계속 즐길 수 있다. 얼음이 입에 닿으면서 느끼는 차가운 청량감도 좋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코에 빨대가 박힌 바다거북이 영상을 보고 다시는 빨대를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는 유리잔에 먹는 것. 얼음이 입에 닿는 차가운 느낌을 온전히 가져가려면 플라스틱 잔보다는 유리잔이 더 좋다. 그리고 더 시원해 보이고 양도 많아 보인다. (뭘 모를 땐 유리잔이 양이 더 많은 줄 알고 시킨 적도 있다) 요즘은 유리잔 대신 스테인리스 컵을 사용하는 카페도 있더라. 스테인리스 컵은 물도 안 맺히고 더 오래 차가움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나의 마음은 점점 스테인리스 잔으로 기우는 중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아이스커피류를 먹을 때면 꼭 이야기한다. “유리잔에 주시고요 빨대는 주지 마세요.” 주문하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다른 사람들은 주는 대로 먹는데, 나만 까다롭게 구는 것은 아닌가? 난 까다로운 척을 즐기는 건 아닐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플라스틱 잔에 빨대를 꽂아서 먹게 되더라도 아이스커피는 여전히 맛있거든. 하지만 인간은 같은 맛을 그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이상한 동물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주문을 했다는 기분, 플라스틱을 안 써서 환경보호에 이바지했다는 기분, 태평양 바다거북이 한 마리가 겪을 고통을 만들지 않았다는 온갖 기분을 커피 한 잔에 때려 박는다. 그리고 커피를 더 맛있게 먹는다. 이걸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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