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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UNGIL큰길 Sep 07. 2021

일 잘 하는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

퇴근도 잘 하는 방법이 있다. 


퇴근 시간 30분 전이다.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처럼 속도를 더욱 끌어 올린다. 야근이냐 퇴근이냐의 기로 앞에서 반드시 퇴근하고 말 거라는 강한 집념의 힘이 생긴다. 정복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업무는 기적처럼 마무리가 되고 어느새 시곗바늘은 6시를 향해 가고 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누가 쫓아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둘러 컴퓨터를 끄고, 회사 정문을 향해 뛰어나갈 준비를 한다.


 퇴근 시간 6시가 넘어감과 동시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살핀다. 마음은 이미 회사 정문을 향해있고, 1초라도 빨리 정문을 통과하고 싶다. 마치 정문을 넘어서는 순간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나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앉아있을 땐 보이지 않았던 책상의 상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온종일 잔뜩 어질러져 있는 책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정말 이대로 놓고 갈 거냐?’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없다.


 “일단 퇴근하고 보자.”


마침내 정문을 통과하고 한껏 들떠 달아나듯 집을 향해 달려간다. 회사에서 나오기만 하면 바깥세상은 온통 행복으로 가득할 것 같았는데, 그 기분은 5분도 채 되지 않아 사그라진다. 어느새 불안과 걱정 그리고 찜찜함이 어둠의 그림자처럼 파고 들어와 잠시나마 기대했던 행복을 무찔러 낸다. 회사에서 몸은 빠져나왔지만, 마음은 그대로 두고 온 것처럼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혹시 챙기지 못하고 있는 업무가 있는 건 아닌지 불안이 엄습해온다. 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 생각에 마음이 덜컥 가라앉는다.      


퇴근 후에도 이 상황을 겪게 되는 건 마무리가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하루의 정리는 정문을 통과하는 지점이 아니라,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다음날 할 일이 무엇인지 계획을 세우는 지점이 되어야 한다. 얼핏 보면 퇴근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업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업무가 정리됐고, 어떤 것이 남아 있는지 제대로 파악도 못 하고 퇴근을 한 것이다. 그래서 퇴근을 해서도 자꾸 불안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 중에‘메타인지’라는 말이 있다. 메타인지는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메타인지 관련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의 상태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학습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업무를 향상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걱정이나 불안감,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만일 퇴근 전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오늘 하루 한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좀 더 나아가 내일 계획을 대략적으로라도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퇴근 후 시간을 좀 더 오랫동안 행복한 시간으로 채웠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유도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기분을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앞에서 설명한 퇴근 전 상황이 얼마 전까지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업무 종료를 퇴근 시간 10분 전으로 맞춰놓고 하루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자 퇴근길이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업무가 어느 정도 진행 상황인지, 미진한 업무는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것조차 미리 파악해서 대비책을 만들어 놓으면 신경 쓸 일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앞서 소개한 할 일 목록 (To Do List)을 그대로 활용하면 된다. 다시 간단히 설명하면 나는 출근을 해서 할 일 목록을 엑셀로 정리한다. 그리고 근무시간 내내 엑셀 창을 열어놓고 일을 끝내거나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바로 목록에 정리한다. 퇴근 10분 전 엑셀 창을 닫기 전 목록을 확인하는 것으로 업무 상황을 최종적으로 점검한다. 이미 끝낸 업무와 미진한 업무를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추가로 해야 할 업무는 마감 날짜를 고려 재배치한다.


이렇게 업무를 점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잠깐의 시간을 들인 것 치고는 효과는 크다. 오늘 한 일이 무엇이고, 내일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나면 퇴근 후에도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이미 나에게는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책상이 당신의 모습을 닮았다면


업무 점검을 마무리하고, 퇴근 직전 5분 정도는 책상을 정리하는 데 사용하자. 업무를 마무리하고 책상의 상태를 살펴보면, 하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온종일 사용했던 필기도구며, 메모지, 파일철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업무 종료 후 피곤함이 몰려오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귀찮음을 잠깐 뒤로하고 시간을 내어 자리를 정리해보자. 책상을 정리에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원래 있던 물건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된다. 짧게는 2~3분 길게는 3~5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장시간 치우지 않은 자리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경우는 시간을 내어 한 번 깨끗하게 치워야 한다.


깨끗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을 하면, 다음 날 출근했을 때의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말끔히 정리된 책상을 보면 마음마저 정리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어서 빨리 자리에 앉아 즐겁게 일을 시작하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또한, 정리된 주변 환경으로 인해 업무 처리도 더 깔끔하게 되는 듯하다.


간혹 늦게까지 야근을 하다 보면 다른 직원들의 책상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누군가의 자리는 아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또 누군가의 책상은 업무를 하다가 정리를 하지 않고 자리를 뜬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책상의 상태가 주인을 닮았다는 것이다. 평소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반듯한 이미지 직원의 책상은 늘 정리 정돈이 된 상태이다. 반면 지저분한 책상도 주인의 성격이나 일하는 스타일이 그대로 투영되어 보인다. 어쩌면 책상이 주인의 모습을 닮은 것이 아니라 주인이 책상의 모습을 닮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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