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생각 되새김질 금지
퇴근 후에도 업무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집에 도착해서는 회사 일을 잊으려 해도 그게 잘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다하지 못한 일을 집에까지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집에 일을 들고 온다고 해서 일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다. 퇴근 후 집안일이며, 다른 할 일도 많아, 회사 일을 하기 위한 체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결국, 쌓이는 것은 스트레스뿐이다.
심리학자 가이 윈치(Guy Winch) 박사는 직장을 벗어난 일상에서도 자꾸 업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소의 되새김질에 비유했다. 마치 소가 여물을 삼킨 후에 되새김질해서 다시 씹듯이, 일을 마쳤음에도 자꾸 일과 관련된 생각이 소의 되새김질처럼 떠오른다는 것이다. 퇴근하고도 여전히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은 바로 생각의 ‘되새김’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의 되새김질은 여물을 부드럽게 하여 소화를 돕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퇴근 후에도 일을 잊지 못하고 되새김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작용만 나을 뿐이다.
일을 되새기는 것은 편안히 쉬어야 할 시간을 방해하고, 스트레스와 불면증을 유발하여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또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 활동을 하는 데도 온전히 집중을 어렵게 한다. 하루 몇 시간 되지 않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여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되새김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순간 갑자기 잘 풀리지 않는 일이 떠올라 기분을 망치거나,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퇴근 후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업무로부터 개인의 삶을 확실하게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첫 시작으로 업무에 대한 생각을 퇴근 직후부터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다짐부터 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 일을 떠올리지 않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마감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시간의 압박을 느끼며 밤새 잠을 설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업무 걱정은 출근 직전까지 이어지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지난밤 느꼈던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느끼지 않는다. 일에 집중할 때는 되새김 현상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쓸데없는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잠까지 설친 것이다.
휴식 시간을 일에서 분리하는 방법의 하나로, 가이 윈치 박사는‘업무 일정표를 만들어, 일에 대한 시간 계획을 세우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방법을 통해 현재 어느 단계에서 업무를 추진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 등을 시각적으로 알게 하여 불안감이나 걱정을 줄일 수 있다.
빌 게이츠가 매일 저녁 설거지를 하는 이유
나는 퇴근 후 업무 생각을 덜어내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명상이다. 퇴근하고도 자꾸 업무 생각이 나는 것은 업무를 하는 동안 만들어진 감정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 업무를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 동료들과의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근심, 걱정, 염려와 같은 부정적 생각들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아무리 회사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마음속 감정의 찌꺼기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그것들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업무를 마치면 책상을 정리하고, 약 10분 정도 명상을 한 후에 퇴근한다. 다행히 다른 직원들과는 업무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방해받지 않고 명상을 할 수 있다. 잠깐의 명상이라도 그 효과는 상당하다. 하루 업무 끝에 어수선한 머릿속이 정리되고, 감정 또한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렇게 명상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편안한 얼굴로 가족들과 마주할 수 있어 화기애애한 집안 분위기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퇴근 후 명상은 누구든지 시도해 볼 만하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고 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 앉아서 명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나를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방법이다. 만일 자차를 이용해 출퇴근한다면, 집에 도착 후 들어가기 전 차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할 수도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건강을 위해 퇴근 후 약 30분 정도 조깅을 하고 있다. 조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 방법 또한 업무 생각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뛰면 뛸수록 가쁘게 숨이 차오르면서 호흡에 집중하게 되고, 머릿속 잡념들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체력적 한계에 다다를수록 현재의 나의 상태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고 보니 명상과 비슷하다.
평소 평정심을 유지하며, 즐겁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간혹 잘 풀리지 않는 회사 일에 지독하게 매몰되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일에 신경을 쓸수록 감정적 손실은 커지고, 자꾸만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나 퇴근 후 명상과 조깅 습관은 회사 업무와 내 개인의 일상을 분리하는 버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계적인 부호이자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빌 게이츠는 저녁 식사 후 직접 설거지를 한다고 한다. 심지어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는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또 다른 세계적인 부자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역시 저녁마다 설거지를 즐긴다고 한다. 억만장자인 이들이 아무리 바빠도 설거지를 챙기는 이유는 그 행위가 일과 삶을 분리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우(杞憂)라는 단어가 있다. 본래 뜻은 ‘쓸데없는 걱정, 안 해도 될 근심’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90%는 일어나지도 않는 일이라고 한다. 이렇듯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기우인 셈이다. 걱정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이 잘 풀리면 좋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걱정은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두려움을 키워내기 때문이다. 명상이든, 운동이든, 설거지든, 취미 활동이든 좋다. 퇴근 후 개인의 삶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활동을 한 가지씩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