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UNGIL큰길 Mar 21. 2022

부부싸움, 꼭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할까?

부부싸움 후 일주일 동안 정말 필요한 대화 외에는 아내와 전혀 말을 섞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이젠 화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 올해로 결혼 10년 차가 됐음에도 부부싸움 후 화해를 하는 방법이 여전히 서툴고 낯설다. 기나긴 기(氣) 싸움을 그만하고 싶어 화해의 방법을 고민해보았지만 마땅히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아내가 더 잘 못한 것 같은데 내가 먼저 아내에게 사과하는 것도 이상했고, 그렇다고 아내가 나한테 사과를 할 것 같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주말이 되었다. 나와 아내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은 차야 하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교회를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차는 한 대 이고 아내는 운전을 전혀 못했다. 택시 이용도 쉽지 않은 곳이라 교회를 가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가족을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 가는 15분 동안 차 안은 적막함이 흘렀다. 눈치 없는 아이는 나와 아내가 싸웠다는 사실을 벌써 잊은 듯 우리 둘에게 번갈아 가며 장난을 쳐댔다. 우리 둘 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이도 시큰둥하며 더 이상 장난도 치치 않았다. 교회 도착 후 차에서 내려서는 반주를 하는 아내는 아내대로, 어린이 예배를 보는 아이는 아이대로, 평신도인 나는 나대로 각자의 동선으로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싸웠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교회 예배가 끝난 후에는 우리 셋은 각자의 위치에서 다시 차로 모였다. 집으로 가는 동안 여전히 차 안은 조용했다. 나는 계속된 차 안의 적막함과 어색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한 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오늘 밖에서 저녁 먹을래?"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이 한 마디에 무방비 상태였던 아내는 흠칫 놀라며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어…?"

"어.. 디.. 서..?"


아내의 대답은 짧고 어색했지만 나의 물음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나는 아내의 의중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아직 화해도 안 했는데, 나랑 밥 먹으러 가는 거 괜찮겠어?"


아내는 이번엔  짧고 확실하고 쾌하게 대답했다.


"응"


나는 이어서 말했다.


“얼마 전 새롭게 단장한 일식당이 있는데 거기 한 번 가볼까?”


거짓과 꾸밈이 없는 아내의 성격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는 듯 밝게 표정이 바뀌며 화답했다.


“좋아. 가보자! 그간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었어!”


지난 일주일 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쉽게 끝날 걸 왜 그렇게 서로 힘들게 기싸움을 했을까? 부부싸움은 이래서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 것일까?’


내가 아내에게 화가 났던 이유는 분명했다. 그러나 내게도 문제가 있었다. 아내의 이야기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던 것이다. 아내는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했던 건데 그것을 나는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였고 더 이상 아내의 설명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었다. 좀 더 대화를 했더라면, 상대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려 노력했었더라면 아마도 이렇게까지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아내 역시 나한테 미안했나 보다.


‘자기한테 사과하고 싶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나는 이 말이 내겐 사과의 의미로 들렸다. 아내에게 지난 일에 대해서는 더는 이야기 하지 말자라고 대답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모처럼 셋이 모여 오붓하게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나의 부부싸움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한 번은 '아내와 싸운 이야기'가 다음의 메인 페이지에 실리기도 했고 조회수가 1만 7천이 넘기도 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나의 부부싸움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었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인생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게 된 계기가 된 부부싸움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지극히 나의 관점에서 아내와 싸운 이야기를 묘사했던 것 같다. 그 바람에 정말 누구보다도 선하고 착한 아내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댓글을 통해 나를 응원해주신 분들, 내 편을 들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또한 한 가득이다.      


사실 아내는 시부모인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나보다 더 다정하고 안부 전화도 자주 하곤 한다. 할머니에게도 손주보다도 더 사랑받는 손주 며느리이다. 평소 우리 부모님에게 무뚝뚝하고 잘하지 못한다고 나를 꾸짖는 아내이다. 이런 아내를 욕을 먹게 만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라도 아내에 대해 해명을 해야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다.


'아내와의 싸움'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댓글을 달아주신 한 분의 말씀처럼, 앞으로는 서로 가여워하며 더 아끼며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내와 싸운 후 김치를 담게 된 이유를 찾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