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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Dec 27. 2017

뚝딱 하면 아이디어가 나오나?

직장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 : 책 한 권만 읽은 상사 

Monday, 10 March 2016, 10:00 AM

팀장이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으니 브레인스토밍을 하자고 한다. 팀원들은 “갑자기 웬 브레인스토밍?” 의아해하며 회의실로 들어간다. 팀장은 프로젝트 개요를 간단히 설명하더니 아이디어를 찾는 데는 브레인스토밍이 최고라며 알렉스 오스본(Alex Osborn)의 ‘브레인스토밍 4가지 기본규칙’*이 쓰인 종이를 나눠준다. 이때야 팀원들은 며칠 전부터 팀장 책상에 브레인스토밍에 관한 책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팀장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말해 보라고 한다. 2~3분 동안 정적이 흐른다. 참지 못한 팀장은 구석에서 다이어리만 쳐다보고 있는 김 과장에게 “먼저 이야기해 봐”라고 한다. 한 방 맞은 김 과장은 팀원을 한 번 쳐다보더니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팀장은 “자네는 기존 방식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새로운 방식이야.”라고 소리치며 말을 끊는다. “다른 사람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 없어?” 몇몇 팀원이 조심스레 아이디어를 꺼내자 팀장은 안 되는 이유만을 늘어놓더니 내일까지 각자 아이디어 5개 이상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라며 나가 버린다. 
팀의 최고참인 박 차장이 어이없어하는 팀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직장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 한 권만 읽은 상사야. 이 또한 지나가리니, 힘들 내”
[ 너무 고민하지마. 이 또한 지나가리니. (Hoc quoque transibit!) ]

*'알렉스 오스본'의 4가지 기본규칙 : 

1) 아이디어 질보다 양에 초점 맞추기. 2) 비판, 비난 금지. 3) 특이한 아이디어 환영. 4) 아이디어 조합 및 개선.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낙하산 임원이다. 밑에서부터 열심히 일해 성장한 임원은 이런 식으로 회의하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운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하산 임원은 안 그렇다. 왜냐고? 2~3년 있다가 갈 거니까. 그러니 회의 내내 자기 성질만 내면서 스트레스 풀고, 윗사람에겐 열심히 브레인스토밍했다는 모습 보여주고, 기존 자료를 적당히 짜집기해서 보고하면 되니까. 만약 경영진이 실행하라고 하면 부하직원에게 시켜 결과가 좋으면 자기 탓, 나쁘면 부하들 역량 부족이라고 하면 되니까. 



아이디어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하면 나오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는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한 시간과 비례한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일처럼 고민할 사람에게 시간을 주고 아이디어를 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임원, 팀장은 아무리 좋은 이론, 방법이라도 관련된 책 5권 이상은 읽고 나서 부하직원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보고서나 책이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라는 식으로 쓰여 있는 것은 없다. 사물을 보는 자기주장이 담겨있다. 똑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가격을, 어떤 사람은 모양을 본다. 가격이 싸다고 모양 안 좋은 것을, 모양이 좋다고 가격이 비싼 것을 살순 없지 않은가?

자기 판단이 옳게 서려면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비교해 봐야 한다. 어떤 분야의 책 5권 이상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3권은 좀 부족하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심리가 강하다. 그래서 다른 생각이 담겨 있는 책 한두 권은 대충 읽고 '이건 아니네'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5권은 읽어야 '왜 그렇지?'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기 판단을 할 수 있는 '읽기'가 시작된다. 자료(data)가 지식(knowledge)이 되는 순간이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느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고, 20대에 읽은 책을 40대에 다시 읽으면 새롭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책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 두었다. 한 20년 쌓아 두었더니 이제 판단이 선다. 우리 애들이 읽어서 좋을 책, 10년 지나서 다시 읽어도 좋을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지난 5월 700권의 책을 버렸다. 지금은 어떤 책을 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버려야 채워진다'는 옛 어른의 말씀을 이제야 실감한다.

[ 700권을 버린 후 우리 집 거실. 슬슬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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