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리함, 남의 불편함
'편리함'의 반대는 '불편함'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반대말이 맞다. 나의 편리함이 남에겐 반대로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매너', '에티켓'을 강조한다. 그런데 실상은 정 반대다. 자신의 편리함은 내가 누려야 할 것이고, 내 편리함 때문에 남이 느끼는 불편함은 전혀 다른 문제로 생각한다.
지방에서 공부하다 시험 준비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조카가 이런 말을 했다. "고모부, 왜 서울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간 다음 뒷사람을 생각해서 문을 안 잡아줘?" 앞사람이 당연히 잡아줄 줄 알고 지나가다 큰 문에 부딪힐 뻔했다고 한다. 나는 "서울에는 사람들이 많고 바빠서 그래. 조심해야 해."라고 애기해 주었지만, 조카는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을 지으며 이런 말을 한다. “문 잡아주는데 1초도 안 걸리는데….” 속으로 뜨끔했다. ‘난, 오늘 안 그랬나?’, ‘내 편안함을 위해 남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한 칸 승객의 반 이상은 운동선수(?)들이다. 학생들은 물론 젊은 직장인들도 롱 패딩(long padding), 운동선수들이 벤치에서 대기할 때 잠시 몸의 열기를 유지하기 위해 걸치는 벤치 파카(bench parka)를 입고 있는것이다. 유행이든 아니든 겨울에는 따뜻한 게 최고다. 멋 내려고 얇은 외투 입고 추위에 떠는 것보다 훨씬 낫다.
지하철에서 롱 패딩은 남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요즘 지하철에서 제일 불편함을 주는 것은 바로 백-팩(Backpacks)이다. 3~4년 전만 해도 입시공부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힘든 가방이었는데 이젠 ‘모든 사람의 필수품’이 되었다. 직장인들도 웬만하면 손가방 대신 백-팩이다. 편하기 때문이다.
나도 백-팩이 있다. 정말 편하다. 여러 가지 물건을 담을 수 있고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걸으면서 스마트폰 보기에도 정말 좋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이 대중교통에선 남에게 불편함을 준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백-팩을 헤집고 내려야 하는 사람에겐 그건 커다란 산맥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편하면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성적, 자본 그리고 성과로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여서 그렇다. 백 원이라도 자신에게 이득이 있어야 움직이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은 같이 살기 때문에 사람인데…. 점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자신이 서 있을 때는 백-팩은 편하지만, 앉아 있으면 불편한 물건이다. 그래서 백-팩은 잘못이 없다. 그것을 메고 있는 사람의 ‘배려’가 필요할 뿐이다.
배려는 조용히 주변에 번진다.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모이면 '큰 행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