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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Jan 09. 2018

의사소통을 위한 그리기

아이디어 만들기 _ 그리기와 토론 01


보스턴컨설팅그룹 펠로(fellow : 특별회원)이자 비즈니스 혁신 분야의 유럽 최고 권위자인 ‘뤼크 드 브라방데르(Luc de Brabandere)’「아이디어 메이커」라는 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죽이는 82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확산적 사고가 가진 장점을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창의력을 죽이는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그중, 나에게 격한 공감을 일으킨 10가지를 소개한다.                    

[ 아이디어 메이커 (Thinking in New Boxes) ]

1) 상상은 자유지만…

2) 20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3) 시장조사부터 먼저 하자

4) 우리가 이미 시도해봤다

5) TF나, 위원회를 만들자

6) 상사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7) 원래 하던 대로 다시 하자

8)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보자

9) 내가 경고했다

10) 우리 문화와 맞지 않는다


회사에서 임원들과 회의하면 제일 많이 듣는 표현이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도 후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디어를 정말 원한다면, 회의적이고 소극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렇다. 그리고….”로 시작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자, 이제는 아이디어를 말이 아닌 눈으로 만들 시간이다.          



그림으로 이야기하기 : 의사소통을 위한 그리기     


직장인에게 아이디어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해달라고 하면 지레 겁부터 먹는다. “전, 그림을 잘 못 그려서….”, “아니 이렇게 복잡한 걸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해요, 말로 해도 복잡한데….” 왜 그럴까? 그건, 교육 때문이다.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내 생각을 남에게 표현하여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언어보다도 내 생각을 더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전달하는 것이 ‘그림’이다. 

우리 어릴 적을 생각해보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 2학년 때 우린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림 안에는 우리가 글로 표현 못 하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자신의 그린 그림에는 엄청난 꿈이 있었고,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언어 능력을 중시하는 어른들 때문에 생각을 손으로 그리는 능력을 키울 기회는 점점 사라졌다. 어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험, 비교, 평가를 위해서는 숫자로 된 점수가 필요했다. 그림은 돈 많이 드는 특기가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를 잃어버린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인이 된 후 그림 한 장이면 될 의사소통을 위해 수많은 자료와 워드 보고서, 파워포인트에 묻혀 오늘도 헤매고 있다.


시각적 사고 전문가인 댄 로암(Dan Roam)은 수많은 기업 컨설팅을 하면서 만나본 비즈니스맨 중 25%가 화이트보드 앞에서 마카 펜을 드는 것조차 싫어했다(그는 이들을 ‘빨간 펜’ 인간들이라 부른다). 그리고 50%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에 덧붙이거나 강조하는 정도에 그쳤다(‘노란 펜’ 인간들이라 부른다). 나머지 25% 사람들만이 망설임 없이 펜을 들고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검은 펜’ 인간들이라 부른다). 망설임없이 펜을 든 25%는 아이디어가 넘쳐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 댄 로암의 '생각을 show하라' ]


의사소통을 위한 그리기는 예술적 그리기와 전혀 다른 것이다. 의사소통을 위한 그리기는 사각형, 삼각형, 원형, 선만 그릴 줄 알면 된다.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아래 내용은 제안 프로젝트 입찰에서 발주처(고객)가 참여한 기업에 제공한 제안요청서(RFP) 중 사업 추진에 관한 부분이다.                    

가). 시티타워는 사업자가 건설하고 준공과 동시에 인천광역시 경제자유구역청(이하 “경제청”이라 한다.)이 소유권을 가지며, 경제청은 사업자와 대부계약을 체결하고 사업자에게 시티타워의 대부를 허가한다. 다만, 사업자의 시티타워 건설ㆍ관리ㆍ운영은 시티타워 시설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나). 복합시설(사업자가 복합용지에 시티타워와 연접하여 그 주변부에 설치하는 건축물 또는 시설)은 아래 ‘마’의 사업방식으로 시행한다.
다). 복합용지 기반시설(청라호수공원 밖 기반시설로부터 복합용지 경계까지의 진입도로, 상수·오수시설 등)은 LH가 조성비용을 부담하여 사업자가 시공한다.
라). 경제청은 복합용지를 청라국제도시 개발사업 실시계획에서 정한 처분계획, 관련법령 및 사업협약에 따라 사업자에게 임대 또는 매각한다.
마). 본 사업의 사업방식은 임대방식 또는 임대 및 매각방식 중에서 사업자가 본 공모에서 제시한 사업계획으로 한다.
바). 임대방식의 경우 사업자는 사업계획에 따라 복합시설을 건설한 후 경제청에 기부채납하고 경제청 및 LH와 체결하는 사업협약에서 정한 기간 동안 복합시설과 복합용지를 대부하여 관리ㆍ운영한다. 사업자는 같은 기간 동안 시티타워를 대부하여 관리ㆍ운영한다.
사). 임대 및 매각방식의 경우 사업자는 사업계획에 따라 복합시설 부지를 매입하여 복합시설을 건설하고 소유 및 관리ㆍ운영 하는 것을 말하며, 사업협약에서 정한 기간 동안 시티타워 및 시티타워부지를 대부하여 관리ㆍ운영한다.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많이 읽을수록 정리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추가 정보까지 들어오면 더 복잡해진다.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종이(‘프로젝트 노트’를 활용하면 더 좋다)에 다이어그램으로 그려보면 된다. 아래 그림처럼 말이다.                

[ 사업추진에 대한 내용을 다이어그램으로 스케치 ]


[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재정리한 자료 ]


원형과 화살표만 사용해 다이어그램을 그렸다. 제안요청서(RFP)의 내용뿐만 아니라 추가된 정보들도 다 담을 수 있다. 이렇게 그리면 프로젝트 사업추진 구도가 ‘한 눈’에 보인다. 이 그림을 가지고 상사에게 하는 보고는 1분이면 충분하다. 말로 했으면 10분, 아니 상사가 이해를 못 하면 더 걸릴 수도 있다. 1분으로 현황을 설명하고 나머지 9분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토의할 수 있다. 생산적인 보고와 토의가 되는 것이다. 스케치한 그림은 제안서나 PT에 정리하여 활용하면 동시에 자료 정리와 함께 제안 본문을 만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조금만 연습하면 이런 그리기는 누구나 가능하다. 도형 모양이 찌그러져도 상관없고 글씨가 예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예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 정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런 다이어그램 그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즉, 시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주어진 자료를 읽고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인공을 정하면 나머지 조연과 엑스트라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주인공을 원형으로, 조연을 삼각형으로, 각각의 역할을 도형밑에 쓰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주인공과 조연의 관계가 적대적이면 빨간 화살표로, 우호적이면 파란색 화살표를 사용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리면 된다. 사례로 든 다이어그램에서 주인공은 사업자, 조연은 LH공사, 경제청이고 사업자가 하는 일은 시티타워건설 등이다. 이런 다이어그램 그리기는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이 있다면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다이어그램으로 그려보자. 소설이 머릿속에서 눈으로 보이면서 스토리가 영화처럼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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