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맛있는 것 많이 사줄까?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던 컴퓨터 파일들을 큰 맘먹고 정리했다. 1년에 한 번, 10년에 한 번 열어보지도 않은 파일을 무슨 미련이 있어 고이고이 컴퓨터 본체, 외장 하드에 저장해 두었는지 내 자신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우기전에 "한 번씩은 열어보고 휴지통으로 보내야지"라는 마음으로 파일들을 열어보다 13년전 아들이 쓴 편지를 발견했다.
2005년 1월 25일(화요일)에 아들이 나에게 쓴 편지다. 2005년 1월이면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다. 그럼 난 그 시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길래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았을까?
지난 다이어리를 찾아보니 2005년 1월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에 거의 두 달을 회사에서 먹고 자고 했다. 집에는 2~3일에 한 번 와서 옷갈아 입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의 연속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안스러웠는지 아들이 옷갈아 입으러 온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주었다. (맞춤법이 틀려도 그대로 옮긴다)
아빠께.
아빠, 요즘 너무 피곤하시고 힘드시조.
2월 3일까지 너무 늦게 들어오시는거 저도 알아요.
저는 꼭 아빠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될게에요.
지금은 아빠가 돈을 벌어다 주시지만 제가 커서 돈 만이 벌면 엄마, 아빠를 맛있는거 사드리게요.
제가 요즘 너무 버릇없고 말도 너무 이상하조.
그리고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놀려고 하고...
제가 2월 3일까지 꼭 고쳐볼게요.
아빠, 힘네세요.
아빠, 행복하세요.
아빠, 건강하세요.
아빠, 포기하지 말아요.
아빠, 화이팅
2005년 1월 25일(화) 준영이 올림
일이 너무 힘들어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시점에
난 이편지를 받고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었다. "아빠, 포기하지 말아요"라는 아들 말 한마디 덕분에...
13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이젠 나보다 덩치도 크고,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의무경찰로 복무중이다. 이 편지 쓴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번에 휴가 나오면 이 편지 보여주고 의무경찰 월급으로 맛있는거 사달라고 해봐야겠다. 맛있는 거 사주면 이 파일은 계속 가지고 있고 안 사주면 휴지통으로 보내야 하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