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lly Jul 08. 2022

답정 너

육아는 처음이에요. 4살에게 배우는 삶

제목에서 말하듯 아이는 늘 내가 할 대사를 알려준다. 

"엄마, 단이 어디 갔다 와? 해봐."
"단이 어디 갔다 와?" 
"텃밭에 가서 감자를 심고 왔지"  

(심지어, 텃밭은 한 번도 가지고 않았고 올해 텃밭을 분양받았고 우리 뭘 같이 심을까? 하는 얘기를 아이에게 자주 해주던 시기였다.)


"엄마, 우리 아들 멋있다 해봐."
"우리 아들 멋있다."
"뭘~"

이런 식이다. 


같이 놀이를 할 때도 늘 엄마가 할 대사를 알려준다. 아이의 이런 요구는 마치 이 순간에는 이런 말을 해야 센스 있는 엄마지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는 놀이도, 대화도 본인이 주도하고 싶은가 보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엄마는 친구들과의 놀이나 관계에서도 이런 식의 주도성이 친구관계를 어렵게 하지 않을까 미리 걱정부터 앞선다. 


놀이를 통해, 대화를 통해 아이의 성향을 대략 가늠해 보자면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주도성도 있고 고집도 있어 보인다. (엄마가 원하는 침착하고, 점잖고, 다정하고, 예술적 기질이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속닥속닥)


아직 4살. 많은 발달과업을 앞둔 아이의 미래를 내다보는 엄마는 오늘도 아이와의 놀이 속에서 아이를 유심히 관찰한다. 

내 바람대로 커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인생은 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고 내 아이도 내 생각과 다르게 커 갈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성향은 아주 조심성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뭐든 처음 하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다. 낯선 장소도 마찬가지다. 야침 차게 놀이공원에 입성해서 팝콘을 들고 비눗방울을 따라 뛰어다니는 행복한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입구에서 들어가기를 강렬히 거부하고 주저앉아 우는 게 현실이었다. 이렇듯 뭐든 거부감이 심한 아이지만, 반드시 뛰어넘어야 하는 과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약 먹기와 기저귀 떼기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상했겠지만, 맞다. 우리 아이는 아직 약을 못 먹고 기저귀도 떼지 못했다. 참고로 아이는 이제 42개월이 되었다. 조금 어릴 때, 멋모르고 후다닥 했으면 쉬를 가렸을까! 싶지만... 어째튼 그 타이밍을 놓친 지금에 아이는 분명하게 본인의 의사를 표현한다. 

난 팬티 안 입고, 기저귀에 쉬 할 거야!   


아이를 아무리 얼르고 달래도 아이는 강직하게 본인의 의견을 고수한다. 급기야 이제는 응가 관련 책 읽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자기도 다 알고 있다 이거지.... 


약도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으면 좋으련만 늘 환절기에 감기, 알 수 없는 알레르기에 열이 오르면 해열제를 먹어야 하는 게 아이들의 운명 아닌가.... 


최근에 이틀 고열이 올라 특정 오렌지 주스에 해열제를 줬더니 (이건 주스야~~라고 뻔 한 거짓말을 하며 ) 한 입 먹더니 아니야 이건 시럽이야! 하면서 냅다 도망친다. 아이는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제에서 나는 체리향을 단번에 알아맞힌 것이다. 이부프로펜 계열 해열제가 보이지 않아 손에 잡힌 걸 먹인 어미의 실수였다. 


주스에 시럽을 타주는 방법이 이제 통하지 않는구나... 어렴풋이 때가 되었다 생각할 때 즈음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해줬다. 기관지염이라는 병명과 함께. 그냥 약이야 먹다 안 먹이다 해도 상관없지만 항생제야 한 번 시작하면 쭉 먹어야 하고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심히 고민이 되었다. 끝장을 볼 것인가! 아니면 아예 시작을 말 것인가...


그날 밤, 엄마는 한 시간을 아이를 설득하고 회유했지만 아이는 강직하게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아빠와 서재방에 들어가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인 방법으로 먹이는 걸 시도한 끝에 성공했다. 이랬으면 좋았을 것을 아이는 저녁 먹은 것 다 토해내며 강열하게 약을 거부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병원을 찾았고 약을 못 먹는 우리 아이가 유별나다는 의사에 타박에 엄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언젠가는 뛰어넘야 하는 건데, 이제 말귀도 다 알아듯는  나이인데, 아이의 불안을 극복시켜주자. 이 약이 별게 아니라는 것을, 그런 경험을 해봐야 그리고 그 경험이 쌓여야 형님인 거지... 


이제는 정공법이다. 

정직하게 약병에 정확한 용량의 흰 액체를 담아 아이 앞에 내려놓고 말했다. 


오늘 이거 먹을 거야. 
이거 먹어야 밥 먹을 수 있어. (다 토할 것을 염두해 약을 먼저 먹이고 밥을 먹인다) 이거 다 먹으면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줄 거야.
치코 봉봉이 보면서 약 먹는 것도 가능해!


오늘은 아무리 울고 떼써도 피할 수 없다는 엄마 아빠의 비장한 표정을 아이가 읽었을까? 아님 약이 생각보다 달달한 향이 난다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그날 아이는 약 먹기를 성공했다. 물론 약 한입 물 한 모금, 약 한입 물 한 모금을 먹었지만 말이다. 


42개월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하는 것들 투성이인데 두렵고 힘들고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런 작은 퀘스트를 하나씩 풀다 보면 나중에 더 큰 문제나 어려움 앞에서 피하거나 돌아가기보다 정공법으로 뚫고 나가는 힘도 길러지겠지. 


이제, 기저귀가 남아있다.  


 

작가의 이전글 겨 울 일 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