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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Dec 01. 2024

시험 기간의 즐거움, "뭐 먹지?"

너와 함께여서 좋은 걸

윤서야. 

내일이면 중학교 시절의 모든 시험은 다 끝나는 거네?

어떤 기분일까? 시원 섭섭? 아니면 결과에 대한 걱정?

시험이 끝난 그 기분보다는 결과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들 수도 있을 테지?

재경언니가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기간이 되면 엄마는 언제나 장을 잔뜩 봐서 맛난 걸 가득가득 채워놓았지.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평소에는 잘 사다 놓지 않던 과자도 사다 놓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시험기간에는 원하는 건 다 먹을 수 있는 기간으로 만들었어. 시험기간이 고통스럽다기보다는 그나마 즐거운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야. 

그리고. 뭐든 결정하기 힘들지만 그나마 먹고 싶은 메뉴라고 정할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안도감이 드니까.

 윤서 때도 잊지 않고 그러려고 엄마는 아이스크림도 사다 놓고, 고기도 사고, 윤서에게 더 다정하게 대해주려고 ‘노오력’을 하지.

 얼마나 잘하고 싶을지 너의 마음을 아니까. 시험 못 보고 오는 날 엉엉 울면서 들어오는 너에게 엄마가 뭐라고 말하겠니?

 재경언니 어렸을 때도  시험 잘 보면 무엇을 해주겠다는 말을 이제껏 한 적이 없었어.

언니가 초등학교 때 시험 잘 보면 뭐 해줄 거냐고 묻길래

“ 시험 잘 보면 네가 좋아? 엄마가 좋아?”

“제가 좋아요.”

“엄마는 시험 잘 보고 기분 좋아하는 너를 보면서 즐거운 거지. 시험 결과로 즐거운 건 아냐.”라고 거절했거든. 언니는 무척 실망했지만  수긍했었어.

솔직히 말하면 시험 결과가 좋으면 당연히 엄마도 기쁘지.

재경언니는 학원을 두 군데나 다녔으니까, 엄마가 들인 돈에 대한 값어치를 받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지. 하지만 시험 점수에 연연하는 그런 엄마가 아니라 있는 존재 그대로 자녀를 사랑하는 그런 고상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 놀랍게도 점수도 잘 안 물어봤어. 왜 그랬냐고?

알아서 잘할 거라 믿었으니까 말이야.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엄마라는 사람은.

언니가 학교 다닐 때는 엄마는 좀 바빠서 언니의 생활시간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었어,

언니가 중고등학교 때, 윤서가 아가여서 엄마는 윤서 생활패턴과 비슷하게 저녁이면 일찍 자고

낮이며 일하러 가느라 몰랐거든. 언니가 웹툰을 보느라 밤을 새우는지. 영어단어를 외우느라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지 몰랐어, 그냥 믿었어, 공부하는 거라고.

 하지만 윤서의 지금 생활은 엄마와 24시간 거의 같이 있다 보니 보일 때가 많아. ㅎㅎㅎ

게다가 엄마 방과 마주 보고 있으니 얼마나 잘 보이겠어?

엄마의 잔소리가 목구멍 밖으로 막 튀어나오려고 하는 걸 엄마가 알아차릴 때가 많아.

 ‘윤서는 엄마 몰래 공부하나? ’ 생각이 들더라? ㅎㅎㅎㅎㅎ

엄마에게 공부하는 거 들킬까 봐 노력하는 중인 거 아니지?

시를 읽다 보면 시적 화자의 상황과 정서,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

우리의 삶도 똑같아. 

말에도 나의 생각이 드러나지만. 더 드러나는 건 평소 일상의 삶의 행동과 태도인거지.

오늘 일을 뒤로 미룰 때, 

못한다는 말을 자주 할 때,

그건 하기 싫은 거고, 나의 게으름이라는 걸 엄마도 알아차린 게 얼마 안돼.  

언니 키울 때는 엄마의 허물을 보지 못한 채로 언니를 혼냈다면,

지금은 엄마의 허물이 너무나 잘 보여서 윤서에게 언니만큼 혼을 덜 내는 거지.

그래서 가끔 언니가 엄마에게

 “엄마는 윤서에게만 너그럽고 왜 나와 다르게 키워요?”

라고 억울해한단다.

엄마도 나이가 들어가고, 힘이 빠지게 되어서 15년 전의 엄마와는 다른데 말이야.

상황은 비슷하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엄마의 정서와 태도, 생각이 달라져서 그런 거지.     


요즘 윤서의 고민은 꿈이 없어서 고민인거지?

“엄마 인생에 답안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점심 먹으면서 네가 내게 한 말. 

“응.. 네가 생각한 게 답이야. 답은 다 자기 안에 있지. 너도 알걸?”

너는 빙긋이 웃더구나.

답을 누군가에게 물어보지만 답을 들으려고 묻는 건 아니더라.

그저 그 말이 맞다고 응원과 격려와 지지를 듣고 싶은 거니까.

윤서의 길은 윤서가 알지. 

엄마가 대신 가줄 수도 없잖아.

놀이공원에서 겪는 공포와 두려움을 대신해 주려고 내가 너 대신 롤러코스터를 탈 수는 없지.

즐거움도 빼앗아 버리니까.

 윤서의 길이 안개에 가리고, 구름에 가려 있더라도 너는 갈 거야

그냥 걸어서 믿고 가봐. 너의 삶이 너를 데려가는 곳으로,

엄마도 엄마의 삶이 데려가는 곳으로 따라가는 중이야.

엄마의 가장 큰 숙제는 너와 언니를 독립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엄마가 너희들로부터 독립하는 것이거든. 

혼자서 밥도 먹고, 혼자서 영화도 보고, 혼자서 산책도 하고, 

뭐든 혼자 해보는 게 엄마에겐 지금 제일 큰 숙제야.


 윤서의 시험 기간도 엄마에겐 즐거움이야.

덕분에 맛난 거 같이 먹을 수 있어서. 

맛난 걸 먹어서 기쁘기보다는

네가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그 자체가 엄마에게 기쁨이거든

그 모습을 내가 얼마나 오래 보겠나 싶어서 말이야. 

지금 당장의 기쁨을 누리는 중이야.

중학교시절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 보기 전. 

오늘 저녁에 우리 뭐 먹지?   

앞 날에 뭐 할지는 결정하기 힘들지만 뭐 먹을지는 결정할 수 있다니.  좋다. 그렇지?       

오늘의 점심 메뉴는 1년에 딱 한 번 먹을 수 있는 투플 소고기 갈비살이야. ㅎㅎ 윤서 시험기간에만 먹을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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