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엄마 생일이라 엄마는 행복하게 지냈어.
재경과 윤서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었지!
엄마가 레몬머랭케이크 먹고 싶다 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재경이가 만들어주었고,
생일 선물로 재경의 시간을 하루 갖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 생일에 월차를 내서 같이 놀러 간 것도 정말 기뻤지. 할머니와 보성에서 셋이 재미나게 놀았는데, 부모가 돼 보니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야말로 진짜 효도구나 싶어서 엄만 재경이 덕분에 새삼 효녀노릇도 하게 되는 거지.
엄마는 생일에 꼭 편지를 받고 싶어 하는데, 이번에 재경은 시간을 엄청 많이 엄마에게 쏟아부었으니 편지는 너그러이 양보했지만, 윤서에게는 꼭 받고 싶어서 편지를 써달라 졸랐는데, 착한 윤서는 편지를 길게 써왔더구나. 야자 시간에, 엄마를 생각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쓴 게 보여. 거기다가 모든 문장 끝에 마침표 대신 어여쁘고 귀여운 하트라니. 엄마 마음 몽글거리게 어찌 이리 썼어?
이 편지를 건네주고 엄마가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던 윤서가 물었지?
"엄마. 올해는 좀 많이 나아졌어요? 이제 반성문은 아니죠?"
초등학교 때의 윤서 편지는 거의 반성문이 많았지. 엄마 생일을 축하한다는 편지에 뭐가 그리 죄송한 건지. 작년에도 그저 죄송하다는 말이 많아서 엄마는 웃음도 나왔지만 조금 서글펐어.
뭐가 그리 죄송한 게 많은지, 오히려 엄마가 미안할 정도였어.
엄마가 그렇게 뭘 야단을 많이 쳤나? 싶더라.
올해 편지는 반성문은 아닌데, 결의문 같아. 엄마에게 보답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여서 더 애틋하네.
생각해 보니 언니도 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보내온 엽서가 그저 죄송하다는 거였어.
아래 편지는 재경이가 고등학교 1학년 어버이날에 보내온 엽서지.
부모를 떠올리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더 큰가 봐.
엄마도 그랬어. 어버이날 편지를 매년 학교에서 썼거든. 쓰다가 엄마는 괜히 울기도 했어.
엄마, 아빠에게 더 잘해야 하는데, 난 왜 이리 못난 거 투성이고, 기대에 못 미치는 딸 같고, 상냥하지 못해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라서, 돈으로 많이 갚아야만 할 거 같아서 그런 생각이 편지만 쓰면 나오는 거지.
부모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도 알고 있으니 죄책감이 올라왔던 거지. 편지 쓸 때만큼은 그 죄책감에 납작 엎드려 죄송하다고, 잘하겠다고, 효도하겠다고, 보답하겠다고 써넣고서는 일상으로 돌아와 엄마와 아빠 얼굴을 보면 그 죄책감이 너무 싫어서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그 상냥함은 어디로 가고 퉁명스러움으로 대했겠구나 싶어. 사춘기의 엄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아주 어려운 딸이었거든.
두 분이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거든
"자식인데 어렵구먼!" 그런데 엄만 또 그 말이 상처로 남았지.
내가 진짜 나쁜 딸이 되는 거 같아서, 죄책감이 엄청 커다랗게 나를 짓눌렀어,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죄책감과 수치심의 원인 제공을 해주는 엄마 아빠에게 화를 내야 죄책감과 수치심은 잠시 사라지니, 오히려 미안함은 더 쌓여가는 거지.
그 죄책감이 언제 많이 사라졌냐면, 재경과 윤서가 매해 엄마에게 보내오는 편지들 속에서 엄마 어린 시절 모습을 보고 알았어.
'아! 자녀들은 부모에게 보답해주고 싶어 하는 거구나. 나도 그래서 그랬는데.'
너희가 어릴 때 커서 엄마에게 뭘 해주겠다고 하면 엄마와 아빠는 웃으며 서약서를 쓰라고 했지. 도장도 찍고 말이야. 엄마 어릴 때 나도 우리 부모에게 뭔가 해주겠다는 그 말을 많이도 했는데 모두 부도수표가 돼버린 경험을 직접 했으니 그랬지.
재경과 윤서가 엄마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사랑한다는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기를 바라.
엄마가 되어보니 또 자녀에게 못해준 그 미안함과 아쉬운 마음이 더 커지더라.
그때 더 많이 안아줄걸, 그때 더 많이 놀아줄걸, 그때 더 많이 사줄 걸, 뭐 그런 후회를 떠올리면, 나의 부모님도 그러셨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지. 재경과 윤서도 엄마가 되면 알게 될 그런 감정들이야.
태어나서 꼭 경험했으면 하는 감정은 엄마가 되어 느껴보는 거야.
힘든 것도 있겠지만, 자녀가 주는 커다란 기쁨이 그걸 모두 덮고도 남지. 그리고 자녀를 키우면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 들게 되니 감사할 일이지.
가끔 재경과 윤서가 엄마에게 주는 기쁨을 생각하면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고,보고 싶은 마음이 더 올라오기도 해.
외할아버지 편찮으셨을 때, 더 자주 갈 걸, 얼굴 더 많이 보여드릴걸. 그 생각을 하게 되니까.
재경, 윤서야,
엄마에게 이제 반성문과 결의문 말고 너희의 일상을 말해주고, 사랑한다는 말로 가득 채워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끼는지 알려주면 더 좋지.
연애하게 되면 그 친구와 그걸 모두 나누고 싶지. 부모와 나누지는 않지.
그러니 엄마와 지내는 동안에 그리 해주면 좋지.
그저 너희의 하루 일과를 듣고 너희가 느끼는 감정을 함께 공유할 때 엄마는 즐겁고 좋아.
그 마음을 아니까 엄마는 할머니와 전화하면 오래 수다를 떨고는 해.
이야기 들어드리고, 내 일상을 들려드리는 것이 즐거운 시간인 걸 나도 경험하니까.
올해 생일.
엄마는 즐겁고 행복했어.
외할머니가 학교로 음식을 한가득 싸 오셔서 생일상을 차려주셨고,
재경이가 만든 케이크, 재경과 보낸 시간, 선물
윤서의 편지와 윤서의 선물,
모든 것이 쌓여서 엄마의 기쁜 추억이 되네.
너희 둘이 엄마에게 준 기쁨들을 모두 기록하고 있는 중이지.
따뜻하고, 다정하고, 착실하게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재경, 윤서
내년에도 편지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