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아.
회사를 다니며 너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짠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해.
엄마는 너의 스무 살 이후로 너에게 엄마 노릇을 잘하지 못하는 거 같아서 가끔 미안한 마음이 있어.
재경이가 대학에 가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하면서도 취업 준비를 하고, 연애를 하고, 독립을 꿈꾸는 과정에 있는데 난 엄마 노릇도 참 못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재경이가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내가 하는 엄마 노릇은 엄마의 엄마였던 외할머니를 많이 닮아있을 모습이었을 거야. 학교 다녀오면 간식을 해놓거나, 예쁜 도시락을 싸려고 노력하던 건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해주시던 모습이었으니까. 또 어떤 면에서는 '난 엄마처럼 안 할 거야!'라는 모습도 있었을 거야.
어찌 되었든 엄마 역할을 떠올리게 할 엄마가 열아홉 이후로 계시지 않으니 난 스무 살짜리 딸이 있는 엄마를 겪어 보지 않은 거지.
엄마가 대학교 1학년, 열아홉 살 되던 해에 나의 엄마가 돌아가셨지. 재경과 윤서에게는 외할머니이고, 나를 낳아주신 엄마는 아주 오래 아프셨어. 10년간 편찮으셨는데,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는
"더 이상 엄마가 고통받지 않게 데려가주세요."라고 기도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셨던 기억이 있어.
우리 엄마가 오래오래 내 곁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가 없었던 게,
너무나 아파하시니 차라리 엄마의 아픔이 끝나버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재경이가 대학교 1학년 때, 영국으로 간다고 할 때 엄마는 버스 정류장에서 너를 배웅하면서 울었지. 지금의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두 분 다 따라나오셨는데 엄마가 울어서 할머니 두 분이 나를 보면서 웃으셨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깥에서 기운 하나 없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던 외할머니 생각이 나고, 그 때 나를 보고 우시던 외할머니의 마음이 그제야 느껴졌거든.
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던 내 새끼가 저 멀리 떠나는구나. 내 곁을 떠나는 게 슬픈 것도 아닌데, 마음 한편이 이상했지. 우리 엄마가 버스 터미널에서 내가 덮을 이불과, 옷가방을 들고 떠나는 딸을 보면서 흘렸던 눈물을 재경이를 보내는 딱 그 시기가 되어서야 우리 엄마 마음을 좀 알게 된 거지.
재경이와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동생 윤서를 키우면서, 재경 키우던 생각을 하고 또 지나가고 있지만, 재경 나이의 엄마 노릇은 나도 처음이고, 또 그 나이에 나도 어리광 피우고 비벼댈 엄마가 없었던 지라, 재경에게 든든한 엄마 노릇을 잘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
아빠랑 엄마가 동시에 아팠을 때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너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는데도 넌 이미 장녀노릇을 하느라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힘든 시기였을 거야. 동생도 돌봐야 했고, 아픈 아빠와 엄마를 챙기고, 간호하느라 집과 병원을 오가야 했고, 할머니도 챙겨야 했으니까.
엄마에게는 스무 살 이후의 재경은 딸이기보다는 엄마의 보호자이고, 엄마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었지.
엄마가 보살펴주고, 맛있는 거 한 개라도 더 해서 먹이고 싶고, 좋은 거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꼬마 재경이가 아니라 보살펴야 하고, 어리광 피우는 게 아니라 시간 쪼개서 집안일도 해야 하는 어른 재경이로 만들어버려서 미안했어. 무엇보다도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가 재경이를 딸이 아니고 남편의 자리에 놓고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진짜 미안했고, 부끄러웠어. 미안해.
너에게 기대고 싶어 하고, 너와 함께 모든 시간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욕심도 알아차린 게 다행이지?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스무 살 이후의 엄마가 없어서 몰랐다고 할 게 아니라, 스무 살도 엄마가 필요하고, 서른 살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사실 쉰 살에도 엄마가 필요해.( 매일 할머니와 통화하는 고모를 보면 부럽기도 해)
지난 주말 대학원으로 외할머니가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어. 엄마를 해서 먹이려고 말이야.
큰 닭을 삶아 냄비에 담고, 엄마 좋아하는 봄나물( 머위. 미나리. 파숙지. 풋마늘과 김 무침. 총각무김치) 가득 담아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신 거야.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내가 너 맛난 거 해서 먹이고 싶은 그 마음이 엄마에게도 있겠다는 마음을 알겠더라. 그래서 오시라 했지.
지금 외할머니는 엄마가 스무 살 이후에 외할아버지와 재혼하셔서 지금까지 엄마와 잘 지내고 있지만, 엄마는 막 어리광을 피우거나, 진짜 엄마에게 대하듯 그렇게 하지는 못했어.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걸 보고 너와 윤서는 덩달아 할머니보다 외할머니께는 더 깍듯하게 대하는 거겠지.
엄마도 남편을 보내고 나서야, 혼자되신 외할머니의 마음이 이제 좀 보여.
외로우시겠구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지시겠구나!
나의 스무 살과 서른 살을 생각하면서 너의 스무 살을 보고,
나의 지금을 보면서 지금 외할머니의 오십과 육십을 생각하게 돼.
넌 나와 다르고, 엄마는 외할머니와 다르다고 하면서, 결국 내 세상 안에서 너와 외할머니를 보고 있더라.
마흔여섯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덕분에 엄마는 내가 참 오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
기준이 나의 엄마였던 거지.
그런데 살아보니까 결혼할 때, 아기 낳을 때, 아기 키울 때 친정엄마가 없다는 건 서러운 일이더라.
그래서 좀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재경과 윤서에게 엄마 노릇 잘하고 싶어서 말이야.
나의 든든한 백은 부모니까.
재경에게 윤서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고 싶어.
스무 살 이후의 엄마를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지만.
쉰 살 이후의 엄마는 요즘 겪고 있는 중이야. 외할머니가 요즘 엄마에게 잘하셔 ㅎㅎ
그래도 엄마는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싸다 주신 그 닭죽을 먹으면서 재경과 윤서에게 먹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먹다가 "엄마. 이거 저 싸가도 돼요? 재경이랑 윤서 주고 싶어요." 했거든.
사랑이 내려가고 내려가는 법이라 그런가 봐.
아마 재경이도 그리하겠지?
30대 엄마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엄마는 망설이다가 대답한 건
"좋은 엄마요"
40대 엄마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도 엄마는
"좋은 엄마."였어.
50대 엄마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엄마는
"좋은 할머니요."라고 말해.
내게 있어 좋은 엄마는 뭘까?
그건 내가 보살펴야 할 엄마가 아니라 나를 보살펴주고, 건강하고,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엄마였어.
내가 원하는 엄마였지.
내가 갖고 싶은 엄마 모습을 재경과 윤서에게 그리 해주고 있나? 생각하게 돼.
재경과 윤서를 잘 보살펴주고, 건강하고,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엄마 되려고
하루를 잘 보내려고 하고 있지.
그리고 지금 외할머니에게도 딸 노릇 잘해보려고 해.
외할머니가 해다 주시는 음식 고맙게 잘 먹고,
안부 전화도 잘 드리고,
사랑한다고 말씀도 드리고,
살갑게도 굴고,
사람 노릇이 별거냐?
딸 노릇,
엄마 노릇 잘하는 거지.
그중에 엄마가 제일 잘하고 싶은 사람 노릇은
역시 엄마 노릇이야.
내 딸들이 좋은 엄마가 되기를 바라니까.
그게 이 엄마가 세상에 온 까닭이기도 해.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되어도,
재경에게 든든한 엄마가 되어볼게.
건강하고, 기대기 딱 좋은 엄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