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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데이트

음악 취향을 알아가다.

by 해솔은정

그이와는 데이트를 열 번도 채우지 못하고 결혼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날이 잡히고, 우리는 어색한 사이로 (높임말을 서로 깍듯하게 썼다) 결혼식을 치렀다.

주말이 오면 둘이서 데이트를 나가고 싶은데,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고 오는 남편은 집에서 쉬고 싶고, 동생들과 놀고 싶어 했다.

주중에 나도 일을 하고는 오지만, 시댁에서 함께 살고 있는 새댁인 나는, 낯선 시댁도 출근하는 기분이어서

주말이면 남편이 나를 데리고 나가주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하지만, 눈치라고는 일도 없는 남편은 좀처럼 나갈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불편하니 잠시라도 커피라도 마시고 오자는 말에 이 남자가 내게 한 말은

“우리 집이 왜 불편해?”라는 말이었다.

“당신은 처가에 가면 편해? 아니잖아. 울 엄마 아빠랑도 안 친하고.”

그제야 “아아~” 하는 얼굴이지만, 움직일 생각도 없어 보여, 데이트에 대한 나의 환상은 일기장에 적히기 시작했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데이트는

놀이공원 가기. 동물원 가기. 맛집 가기.

카페 가서 책 읽고 오기.

도서관 가기. 등등.

만날 어디 가기였다.


남편이 원하는 데이트는,

집에 있기. 집에서 음악 듣기. 집에서 TV 보기

였으니 참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30년이 훌쩍 흘러가 버리고,

남편이 떠나고 난 뒤,

내가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요즘

난 내 취향도 잘 몰라서 찾고 있는 중이다.


놀이 공원과 동물원 가본 지는 너무 오래고,

맛집에 혼자 가서 한 가지 메뉴만 먹고 오기는 싫고,

카페 가서 책 읽고 오려고 해도.

혼자 앉아 있는 게 싫고

그나마 도서관은 좀 가서 앉아 있다 올까 하지만,

읽지 않은 책이 집에 왕창 있으니,

거의 대부분은 집이다.

남편이 가고 나서야,

나는 남편 취향의 데이트 코스 전문가가 되었네.

이제,

떠난 그이의 취향도 아니고,

젊은 날의 내 취향도 아닌,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아티스트의 취향을 좀 찾아보는 중인데. 그중의 하나가 음악 감상이다.


8월 16일에 전주 소리축제로 모악당에서

손열음 피아노연주와 신세계 교향곡을

현장에서 감상하고 온 뒤로 교향곡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각 장마다 넘어가는 느낌이 다른 것이,

마치 삶의 여정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삶에서 내가 늘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게 아니라,

희비와 굴곡을 겪는 것과 닮아 있다.

내가 음악 전문가도 아니라,

일일이 그 교향곡의 배경과 악장의 느낌을 찾아가면서 들으며, 나에게 알려주는 중이다.

남편이 두고 간 좋은 스피커를

이제야 좀 돌아봐주는 것도 있고,

집에 쌓여 있던 CD를 꺼내봐 주고

들어봐 주고 싶어서 듣게 된 게,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30년쯤 흘러야 남편의 취미를 이해하게 되니 좀 미안해진다.


어쨌든 세 번째 나의 데이트는 집에 있는 CD를 한 장 골라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편하게 감상하는 거다.

날이 너무 뜨거워 나가기는 싫고,

내 안의 아티스트와 잘 놀아주고 싶고

멋진 데이트를 하고 싶은 내 욕구도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한 음악 감상 데이트는

커피도 한 잔 정성스레 내려서 예쁜 잔에 마시는 것도 포함이다.

귀한 손님이 오시면, 내어 드리는 찻잔에

원두 갈아서 천천히 내리는 이 시간을

즐기는 자체가 데이트지.

지금, 여기에 오롯이 나와 있는 것이 소중한 데이트 시간인데, 어딘가에 가고 싶고,

무언가를 경험하고 싶었던 그 마음들도 토닥여줘야지.


오늘 데이트는 음악의 공간에서

서툴지만, 스피커를 잘 조정해 보고,

커피도 내려보고,

교향곡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고 읽어주는 중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사랑하면 궁금해지고, 알아가고 싶어 지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나에 대해 더 알아가 보자.

내가 좋아하는 음악 취향도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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