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혼자서 영화를 본 것은 보고 싶어 본 게 아니다.
첫 번째 혼자 영화 보기는 93년 겨울에 보았던 비터문이란 영화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잡지까지 구독하던 엄청난 영화광인 미래와 신촌에서 함께 비터문을 보기로 했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러 다니는 직장인인데도,
여전히 19금 영화는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일탈을 저지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시기였다.
비터문이라니!
허니문이 아니고. 제목도 이상한데,
소문에 듣자 하니 야한 예술영화라는 거다.
영화 평론가 같던 미래의 추천이니 무조건 봐야지 하고 신촌에 나갔다.
그 무렵에 나는 미래와 함께 등촌동에서 난방도 잘 안되던 아주 작은 방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신경숙 소설에나 나올법한, 대문 앞에 공동 화장실을 두고 있고,
머리맡에 물을 두고 자면 얼어버리는
아주 작은 쪽방이었다.
그리고 그 방을 얻어준 주인은 제과점을 하고 있던 미래의 둘째 오빠였다.
같이 보기로 한 나에게는 영화평론가인
착하고 마음 약한 미래는 빵집을 하던 오빠네가 걱정이 되어
공중전화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가게 괜찮아?"
"뭘 물어봐! 지금 바빠서 정신이 없구먼. 속도 없는 것이!"
크리스마스 겨울 시즌이라 너무나 바쁜 오빠네 내외는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여서
미래는 영화를 못 보고 다시 집에 가야만 했다.
(그때, 제과점 1년 장사 중 최고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니 나도 수업이 없을 때는 가서 케이크박스를 접었었다)
나도 그러면 같이 돌아가겠다고 하니,
미래는 혼자라도 보고 와서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보고 오라는 거다.
게다가, 티켓 두 장을 환불하려고 하니 매표소 아가씨가 환불 안된다고 한다.
어렵게 번 돈으로 산 표를 버리지도 못하고, (감히 그럴 생각은 나지도 않는다.)
한 장은 내가 보기로 하고,
매표소 앞에서 둘이서 표를 팔아보기로 했다.
비터문이란 영화를 대체 누가 혼자 보러 온단 말이냐!
다 커플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혼자 보러 온 양복 입은 아저씨가 보였다.
그 아저씨에게 미래가 다가가서 사정 이야기를 한 뒤에,
표를 팔아주고, 미래는 너무나 미안해하면서 케이크 포장하러 등촌동 가게로 돌아갔다.
결국 난 모르는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서 비터문이라는 영화를 봐야 했던 거다.
내용은 하나도 눈에 안들어오고, 그저 빨리 끝나서 집에 가고만 싶었다.
조금이라도 야한 내용이 나올라치면 긴장이 되고,
좁은 좌석에서 아저씨의 다리가 닿을까 봐
온몸을 오그라뜨리고 주먹에 힘을 주고,
옆 아저씨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겨울인데도 머리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내용은 여전히 생각이 안 나고,
어둡고 칙칙했던 그 신촌 그랜드 백화점 안의 영화관과,
퀴퀴한 냄새만 떠오를 뿐이다.
그 뒤로 혼자 다시는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두 번째로 혼자 영화관에 간 건 광주 CGV. 일루셔니스트- 에드워드 노튼 주연-
2007년 3월이다.(기억하는 이유는 일기장이 있어서)
조조프로 보는 걸 해보고 싶다고 남편과 어머니께는 말하고 나왔다.
하지만, 실제 내 마음은 시아버님의 병간호로 꼼짝 못 하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허망했던 마음으로 혼자서 어디라도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있었던 곳이 겨우 영화관이었던 거다.
들뜬 마음으로 몇 년 만에 화장을 하고, 차려입고, 7센티 힐까지 신고 나섰다.
영화를 너무 일찍 보러 갔더니 엘리베이터가 안된다.
혼자 지하에서부터 6층까지 헉헉대고 올라갔고, (그 힐을 신고)
1번 번호표 받아 입장하니 큰 영화관에 나 혼자라 좀 무서워서 돌아 나가고 싶었다.
보는 중에 한참 긴장되는 장면인데 중년의 남녀 한 쌍이 갑자기 들어와서 더 무서웠다.
큰 공간에 혼자 있다는 압박감이 더 기억나는,
두 번째 나 홀로 관람이었다.
혼자 영화 보기는 그 뒤로 없었다.
아티스트 데이트(멋진 표현이지만 알고 보면 나 혼자 놀기)를 해보기로 결심한 지라,
두 번째 데이트는 영화를 보러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혼자가 아니라 아티스트 데이트니 혼자가 아니라는 말로
나를 달래 본 거다. 영화를 고르다가 킹오브킹스로.
이 데이트는 금요일 오후에 하기로 하고 늘 표는 평일에 남아도니 예매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경이가 오후에 역에 데려다 달라고 하니, 데이트를 포기하게 되는 거다.
분명 나와의 데이트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약속을 해놓고서는
재경이가 역에 가야 한다니 우선순위에서 또 밀린다.
시간이 애매해서 영화포기한다고 하니,
차 안에서
재경이가 공짜표라며 또 친절하게 예약까지 해주는 거다.
"엄마. 나 내려주고 빨리 가면 광고시간도 있으니 볼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 하나가 시간이 촉박한 거다.
어디 가든 차분히 기다리는 일이 평정심 유지에 좋은데.
시간에 쫓기면 너무너무 힘든 일인데.
공짜표인데.. 그냥 갈까?
4시 50분 시작 영화에 49분 도착...
(광고도 있는데. 헉헉 대고 올라가니 청소하는 아줌마가 엘리베이터로 가라고 안내해 주신다)
영화관 들어가니 너무나 고요한 공간에 아무도 없다.
광고 시작도 안 했다.
=나 혼자라고? 좋은 것도 있고, 갑자기 두려운 생각도 들고, 늘 양가감정이다.
내 자리 찾아 앉아 있으니. 그제야 화면이 켜지고 광고가 시작이다..
그러는 차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세 명이 들어온다.
순간, 방해받는 기분이 들었지만, ‘혼자 아니니 다행이지!’라고 나를 좀 달래 본다.
영화 시작 전이기는 하지만.
이 세 친구들이 내게 들릴 정도로 떠들고,
신을 신은 채 앞 좌석에 발을 뻗는 게 보여
꼰대인 내가 등장해 줬다.
“신발이나 벗고 발을 올려야지.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 그 자리에 앉을 텐데. 발 내려라!”
애들 셋이 나를 휙 돌아보더니, 신발 벗고 발을 올리고 조용해진다.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난 이제 졸음이 쏟아진다.
새벽에 일어났지,
더운데 종종거리고 여기저기 쏘다녔지, 졸릴 만도 하지.
TV나 핸드폰으로 영상 볼 때 좀 길어지면
여지없이 졸거나 자는데,
아무리 눈을 뜨려고 해도, 가물가물하다.
졸다 자다 생각하니. 필라테스가 6시 반 예약이다.
운동을 깔끔히 포기하고 싶은데, 어플 들어가서 보니 등록한 사람이 적다.
지난번에도 윤서 데려다주느라 운동 빼먹었는데 어쩌지?
고민하느라 영화 내용은 들어오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종려주일이라고 환영받는 중인데.
나는 종려잎이 흔들릴 때마다 운동을 갈 것인가? 끝까지 볼 것인가? 갈등 중이다.
결국은 공짜 영화를 포기하고 6시 10분에 영화관에서 나와, 운동하러 갔다.
나와의 데이트 두 번째 시간, 영화 보기는 망쳐버렸다.
데이트 코스를 짰는데, 상대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대의 취향도 고려하지 않은 거다.
게다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아티스트는 두 번째였으니 말이다.
미안해요. 아티스트님.
그래서 며칠 뒤 다시 영화 예매했다.
지난번에는 예수님 등장으로 졸음 유발 영화였으니,
(설교시간에 졸리는 이유랑 비슷하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오늘은 잘생긴 브래드피트의 등장이고 굉음이 난무할 테니 졸지는 않을 테지..
자.. 지난번에 망친 두 번째 데이트를 하러 나가보자.
이 데이트는 성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