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화선지 처럼
백년 비바람 견딘 나무의 무게는
천년 고찰 못지않은 세월의 때가 묻어 빛난다
지 몸 닳고 닳아 솟을대문 지켜온 세월
누가 있다 간 집은 중요치 않다
그 긴 시간 말 없는 기와 한장에 연륜을 묻혔다
낙숫물의 집요함을 견딘 댓돌은
돌 담의 강함이 아닌 토 담의 너그러움이다
깨진 기와장 붙잡아 같이 견딘 세월
약간은 거칠어도 상관 없다
완만하게 굽어진 언덕 속에 여유를 품었으니까
옷 칠한 툇 마루 창호지 문짝의 순수는
백년을 견딘 기둥이 아닌 또 다른 닳음의 미학
못 질 하나 없이 이어진 다섯 문짝
대청 마루와 다를게 없다 무딘 날 세우지만
절 집 같은 고요함이 긴장을 돌려 세운다
말 없는 장독대 지키는 숨결은
백년을 한결 같은 옹기쟁이 고집처럼 지켜온
새색씨의 한결 같음 같이
한 그루 소나무
언제나 그렇듯 아무렇지않게 그렇게 있다
백년의 세월의 무게는
찰나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삼시 사철 때마다 어린 눈뜨면 보았던
한 폭 그림 같은 한결같은 장독대의 평화로움을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그려 놓았으니까
북한산 바로 앞 동네 중학동 우리집
잔설 묻은 소나무 아래 눈 덮인 장독들과
토 담 밑에 흐르는 한 줄기 아지랭이 묻은 풍요를 백년의 세월이 가르침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장 화선지 묵화가 천년을 지키는 것 처럼
그리움과 외로움을 보듬는 거라는 것을...
앞으로 10년이 더 흐른 후 이번 처럼
다시 한 번 조금 더 쓰고 가기 전 태워 없앨 수 있는
행복이 있을까 생각하는 한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