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그늘이 된 것 처럼...
- 나무 이야기 하나 -
그리 크지 않은 나무가 있습니다
다른 나무처럼 아름드리 나무도 아니고
이름있는 나무도 아닙니다
그저 나무일 뿐 입니다
해님의 방향에 따라
그냥 조그만 그늘이 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저 혼자 자란 나무 였지만
어릴적 내 동무와
두꺼비 집 짓고 몸을 숨길 수 있던
내가 오를 수 없는 커다란 나무였습니다
내 눈에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몰랐습니다
그늘의 고마움도
바람막이의 고마움도
삶 터로서의 고마움도
정말 몰랐습니다
당연히 거기에 있는
언제나 거기에 있는
무심히 지나치는 나무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 나무일 뿐 이었습니다
- 나무 이야기 둘 -
나무가 그대로 거기에 있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무는 점점 초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가 작아졌습니다
내 몸을 숨길 그늘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알았습니다
내 스스로 자라 나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느새 나무가 된 나는 움직일 수 없고
팔 벌려 그늘을 만들어 놓아야
그늘에서 뛰어 노는 또 다른 나를 볼 수 있고
바람을 막아줄 수 있다는 것을
팔이 아파도 처든 팔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주변의 커다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갈수록
까치발을 올리고
커다란 옷을 입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나무가 되기 전 까지는 몰랐던
그 작은 나무 그늘이
어떤 훌륭한 나무보다도 소중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작은 그늘의 소중함으로
작고 볼품 없어진 그 작은 나무 베어
더 큰 그늘을 만들려던 욕심 대신 나는 그냥 그대로
거기에 그대로 있으려고 합니다
내가 그 그늘이 된 것 처럼...
- '04년 7월 구조조정을 앞둔 선배를 바라보며
빛 바랜 기억노트 또 한조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