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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육계장 가릿국밥과 공깃밥 - 할아버지의 선물

'입맛 같은소리하고 자빠졌네 ... 밥맛으로 먹어'

by 바보


우리집 육계장에는 빨간 고추기름이 없읍니다

당연히 고사리도 숙주도 없지요

아니 고사리 들어간 빨간 육계장은 처다보지도 않고 아예 컵라면을 청해서 먹고 말 정도입니다

빨갛지 않으면 그게 무슨 육계장이냐고요?

분명 육계장이고 맑은 육계장이 확실합니다

우리집 사정에 의해서 약간 퓨전이 되었지만 분명 국물내는것도 고기쓰는것도 거의 똑같습니다

다만 국물이 다시마와 고기와 대파로만 국물을 내 국물이 좀 다르고 고기를 따로 무쳐서 그릇에 담애내서 자기 식성에 맞게 국물에 넣어 먹는점이 다를뿐이지만 변형된 함경도 육계장이고 원래 이름은 가릿국밥입니다

작지만 센 사랑을 담은 우리집 밥공기입니다 대문 이미지는 다음 출처입니다



'엄마 또 백김치야! 난 빨간 김치 먹고싶단말야'

'....'

'넌 동생 밥 못먹어도 좋니? 하민이는 매운 김치는 못먹잖아 ... 그래도 좋아?'

'엄만 그래도 한가지라도 내가 좋아하는걸 해주지 반찬이 다 하민이만 먹는거잖아'

'....'

'민정아 아빠가 이따 맛있는거 사줄께 그냥 맛있게 먹자 ... 엄마도 동생도 눈치만 보잖아'

'나 밥 안먹어.... 입맛 떨어졌어'

'입맛 같은소리하고 자빠졌네 ... 밥맛으로 먹어'

'언니는 .... 짜증나'


우리집 반찬은 시골 아버지가 오시기전에는 아니 오시더라도 모든 반찬은 거의 빨간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들어간 들어간 음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대신 우유를 공기밥대신 앞접시 밥을 고추장 떡볶이대신 간장떡볶이나 기름떡볶이를 주로 먹고 파나 양파 없는 마치 절집 음식 같았던 이유는 막내 때문이었고 체질이 바뀌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한술 밥한술이라도 더 먹여야했기 때문에 그럴수 밖에는 없었던거지요

애엄마나 나는 참고 견디며 적응해 갔지만 정작 세살 터구리 큰놈은 말없이 같이 먹고 또 자기도 지 동생 챙기며 먹일려고 들다가도 가끔가다 뜬금없이 성질을 내고 투정을 부리면 그렇잖아도 살얼음판 걷는 밥상이 와지끈 깨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민정아 아빠 시장가는데 같이갈래?'

'싫어 숙제할거야'

'아빠 사러가 시장에 할아버지 오시면 드실 찬거리 사러갈건데 같이 안갈래?할아버지 잘드시는거는 니가 잘 알잖아?아빠가 빼트리는거 없나 봐줘...'

'....'

'..... 아빠 내가 갈께'

'저 지집애는 꼭 뭐든지 아빠가 나랑 하려하면 지가 먼저 할려고 지랄이야 지랄이 ....'

'내가 뭘 했다고 욕이야 .. 할아버지 반찬 산다는데'

'이것들이 ... 민정이 넌 동생한테 무슨 말이 그래'

'내가 뭘 ... 엄만 맨날 하민이편만 들고'

'아 다들 그만둬 .. 할아버지 오시지 말라고 할테니'

(이말은 우리집 제일 겁나는 위협인 말입니다)

'........'

'아버님 오시면 드실께 아무것도 없어요 ... 내가 장보고 와요? 당신이 드실거 좀 사오세요 ...

오랜만에 고모님댁에서 배운 가릿국밥이나 한그릇 드시게 만들게 ... 대파하고 무는 생채는 쓸만큼은 있으니까 사태하고 양지.우둔살 좀하고 선지 조금

사고 ..... 음 생선은 꽁치 싱싱하면 꽁치조림하게 몇마리 사오고요 ... 음 .... 봐서 그냥 당신이 알아서 사오세요'

'알았어요 ... 기억이나 할라나'

'엄마 육계장 하는거야 ... 가지찜하면 안돼?'

'바지락 때문에 가지찜은 힘들어 ...... 가릿국밥은 하민이랑 민정이는 선지 때문에 못먹으니까 적당히 사오시고 차라리 삼겹살 삶게 조금 사던가요...'

'엄마 말랑고기 하는거야?'

'말랑고기가 뭐니? 수육이지 ... 원래 수육은 것절이 김치랑 새우젓이랑 생채김치랑 같이 쌈싸서 먹는건데 우리는 그냥 백김치랑 먹잖아 ...

어쩌다 잘 먹어야 빨간 김치고 ...'

'그게 나 때문이야? 그냥 먹으면 되잖아?누가 먹지말래 ... 언니는 괜히 나만가지고 그래'

'너 때문이지 그럼 누구 때문이니?맨날 지생각만 하면서'

'너희들 정말 ... 둘다 한번 혼나볼래?더이상 선 넘으면 엄마도 못 참는다 ... 각자 방에가서 공부나 해'

'.........'

'오늘은 엄마 말 듣고 민정이만 아빠 도와줘 ... 엄마가 사오라는거 아빠는 다 기억 못해'

'얍얍 오킹 오킹'

'.... 난 밥 안먹어'


손맛은 안닮아도 입맛은 닮는가 봅니다

한달에 한번 아버지 오시는 날이면 같이 한이불 덮고 한 침대에서 자면서도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언제그랬느냐는듯 할아버지 드시는 음식이 입맛이 맞는지 은근 기대하며 기다렸다는말이 맞을겁니다

매일 전투식량 같은 밥상이 신선한밥맛이 생기는지 반찬가계 반찬이 부럽지 않고 뭔가 특식이 나오고 게다가 맛있기까지 했으니까요


'민정아 아빠랑 떡볶이랑 쫄면 먹고 갈래?

배 안고파? 아빤 배고픈데 ...'

'우리만?'

'아빠랑 데이트하지 뭐 ㅎㅎㅎ'

'여기 떡볶이하고 쫄면하고 튀김 좀 주세요'

'아니 ... 아빠는 ...이모 여기 튀김은 오징어하고 고구마 야채 섞어서 2인분하고 떡볶이 쫄면은 각 일인분씩만 주세요 ... 아빠 덴뿌라도 먹어?'

'그래 시켜 ... 근데 일인분이면 적지않아?'

'아냐 모자르면 먹고 더시켜도 돼'

'그래라'

'학생인것 같은데 오뎅이라 안그러고 덴뿌라라고 그러네 ...'

'그러네 .. 할아버지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ㅎㅎㅎ'

'확실히 학교앞 떡볶이하고는 맛이 다르네 ...'

'왜 맛없니?'

'아니 ... 학교앞에서 친구들이랑 먹는게 더 맛있단 말이지 ... 이것도 맛있지만 좀 맵네'

'천천히 많이 먹어라'

'아빠... 어차피 하민이 새끼 같이 왔어도 하나도 못 먹겠지?... 덴뿌라 국물도 매운데 뭘'

'왜 신경 쓰이니? ... 너는 그래도 친구들이랑 같이 분식점도 가고 여기저기 먹으러 다니지만 하민이는 하다못해 라면도 잘 못먹잖니 ... 너도 아빠 엄마 딸이지만 아빠 엄마는 니동생도 딸이고 가족이라 좀더 클때까지는 어쩔수가 없단다 ... 그래도 이제 많이 나아져서 라면도 먹고 이것 저것 주전부리도 하잖아 ㅎㅎㅎ'

'....'


큰놈은 큰놈인지 학교에서도 유별나고 작은 지동생 남들에게 무시당할까봐 은근 보이지않게 챙기면서 지켜주는 놈이었읍니다

그래도 가끔은 나이는 속일수가 없는것도 사실이고 말이지요

하지만 아마 작은 놈도 분명 알고 있었을겁니다

둘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유일한 자매고 가족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아가야 가릿국밥 만드니?'

'예 아버님 날 더워서 오랜만에 드시라고 ... 딴거 드시고 싶으신거 있으세요?'

'아니다... 난 좋은데 애들이 못먹잖니?'

'애들은 꽁치조림하고 삼겹살 조금 삶아 수육해서 좋아라하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아가야 ... 먼저번에 속초 누 집 갔을때 가릿국밥 만드는거 보니까 고기 삶아 고기 건져내고 썰어 국밥 만들어 고명 올리듯 만드는거보고 생각한건데 ...

선지는 넣지말고 고기만 삶아서 국물 따로 내고 고기는 따로 무쳐셔 그릇에 담아 놓으면 자기 식성대로 애들도 먹지 않겠니?... 어짜피 국물에 말아 먹거나 남은 건더기 비벼 먹는건데 ... 내래 만드는거이는 모르겠지만도 ... 육회도 넣지말고 ... 국따로 고기따로 회 따로 무쳐서 만들어봐라 ... '

'아버님 안해봐서 몰라요 ... 그냥 맛있게 드셔요'

'아가야 내 말대로 해보렴'

'....'


지나고야 알았지만 우리집 특식이 아닌 삼계탕이 아닌 보양식이된 아버지의 선물이었습니다

가릿국밥이 변한 맑은 육계장 말입니다


'웅와와 대박 대박 ... 엄마 밥 더줘 밥 말아먹을래

도대체 밥에 무슨짓을 한거야? 아님 바람나서 국 밖으로나간 육계장이 미쳤나 ... 엄마 공깃밥 콜콜!

이 웃기는 육계장 정말 기가막혔네 ㅋㅋㅋ'

'이그 말하는 뽄새하고는 ...'

'하민아 너도 먹어봐 하나도 안맵고 진짜 죽여... '

'그래 하민아 할아버지가 부러 국물따로 고기따로 하라신건데 고춧가루 안넣고 무친 고기고명만 넣고 밥말아 먹어봐 ... 아님 고기만 먹어보던가 진짜 수육 같아... 니말대로 말랑고기ㅎㅎㅎ'

'아이 이 간나는 상구도 이리 밥먹니?'

'하민아 할아버지 화내신다 한번만 먹자... 싫으면 아빠가 남긴거 다 먹을께'

'으이그 내일이면 중학생인 지집애가 ... 야 새끼야 한번 먹어나 봐!.....

할아버지가 너땜에 이렇게 하라신거잖아'


우리집 밥그릇은 따로 없습니다

결혼할때 손님 식사 대접후 답례품으로 드리던 그 밥공기만 있고 아직도 그대로 쓰고있습니다

87년 다 늦게 결혼했으니 대략 삼십년도 훌쩍 지난 사기로 만든 작은 밥공기라 깨지고 낡아서 열개도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애들보다 더 나이먹은 우리집 식구 같이 정이든 놈들입니다

근데 말입니다

지금은 오래된 밥공기를 말하려는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공깃밥을 말하려는거지요

뭐든 채우면 사랑이되는 이상한 공깃밥을 말하고 싶다는 뜻이기도하고 말이지요


국대접엔 고기도 없는 육계장처럼 아무것도 없고 밥공기엔 밥대신 양념된 육계장 고기만 담겨나온 것처럼 밥도 밥이지만 수많은 정과 추억이 담겨진 우리 식구처럼 할아버지처럼 가족처럼 항상 같이 있는 자매처럼 밥 한숟가락을 같이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말 이상하겠지만 그런 공깃밥이,

뭘 채우든 사랑이되고 가족이되는 웃기는 공깃밥이 우리집에는 있다는 말입니다

무튼

이날도 밥이 담기면 참 이상한 공깃밥이 되었고 또

고기 고명만 담기면 참 이상한 공깃밥이 되었다가 살짝 익은 육회 비빔밥이 담기면 웃기는 공깃밥이 되는 가족의 사랑을 담은 공깃밥 이었습니다


'.....엄마 나 밥 조금만 더 줘'

'왠일이래? 니가 밥 더달라고 하게?맛있니?'

'쟤가 공깃밥 더 달라고 하는거 보니까 됬즈비 ... 아가도 퍼뜩 와서 같이 함세'

'엄마 정말 대박인데 난 두부는 좋은데 파는 싫고 할아버지처럼 국에 고춧가루에 무친 고기 넣어줘'

'할아버지 드시게 니들은 이제 그만 수육먹어...'

'냅둬라 ... 잘 먹으니 참 좋다'

'아버지 저도 하민이 이렇게 공깃밥 먹는거 첨 봅니다 ... 오히려 탈 날까봐 걱정이 드네요'

'엄마 오늘 육계장은 좀 맛있네'

'육계장이 아니라 가릿국밥이래'

'아버님 모자르시죠...꽁치조림도 좀 드셔보세요 애들이 이렇게 먹을줄 몰랐어요...'

'아가야 양푼 좀 가져오너라'

'아버지 밥 비비시게요?그렇다면 민정엄마 나도 ... 아버지랑 같이 비빌까?'

'아빠 나도 한숟갈만 먹을래'

'너 육회도 먹을수있어? 육회도 넣을거야'

'할아버지가하면 뭐든 맛있기는 한데 ... 그럼 육회 볶아서 넣으면 안되?'

'비싼 육회를 왜 볶아'

'와 이것도 대박 ... 고기가 살짝 익었나봐 ... 두부가 완전 대박이야 대박 ... 하민아 너도 한숟가락만 먹어봐 완전 짱이야'

'하민이는 엄마랑 육회말고 삶은고기 쪼사서 따로 비벼 먹자 ... 그래도 맛있을거 같은데?'

'난 배부른데 ...'

'그래도 이번 맑은 육계장은 맛은 성공했네'

'맑은 육계장이 아니고 가릿국밥 이래 바보야!'



아버지의 사랑이 변해버린 하얀 육계장으로 가족의 사랑과 추억이 또 한겹 쌓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고맙고 그리운 선물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행복합니다

같이 모여 추억도 같이 먹을수 있어 행복합니다

서로의 잘못도 용서할수 있는 용기같은

그런 음식을 함께 먹으며 나눌수있어 행복합니다

우리가족 모두 맛난 선물보다는

아버지가 그립겠지만 그래도 행복할겁니다

잊지않고 기억하는 우리보고 아버지도 그렇겠지요 어쩌면

간나 간나하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웃으시며 오늘은 고모가 해주시는 진짜 함경도식 가릿국밥을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월인데 벌써 덥습니다

삼계탕이 벌써 마트에 나오기 시작했구요

마트에 나온 기획 삼계탕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문득 들어 손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애들을 먼저 꼬셔야 집사람도 꼬셔서 육계장을 만들어 먹으며 또 한잔의 추억을 만들어 가슴에 넣을수 있을 것같습니다


오늘은 맑은 육계장에 사랑의 공깃밥 콜!입니다

가족 모두 소주 한잔도요




아빠같은 시아버지인 아버지가 천국인지 어딘지는 모르지만 훌쩍 가셨을때 누구보다도 서럽게 울어서 더 슬픈 장례식으로 만들었던 안해와 우리 아이들 선물처럼 주고가신 맑은 육계장을 애석하게도 전 만들지 못합니다

왠만한 음식은 집사람만큼은 저도 할줄 아는데 이것 만큼은 고모에게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그런지

집사람 손맛을 내질 못하거든요

가짜로 그릴수도 없어 이번에는 함경도식 맑은 육계장 제조방법을 그려 드릴수가 없습니다


다만 (아쉽지만 그래도)

인터넷에 레시피를 참조하시고 한번은 꼭 만들어 드셔 보시기를 권합니다

내가 아는 먹는거라도 적어봅니다


* 국물은 사태와 양지고기 대파 다시마로만 고아서

국물을 내십시요(일단 육수를 드셔보면 암)

* 고기 고명은 사태는 한입거리 도톰한 햄처럼,

양지는 찢어서 따로 입맛에 따라 무쳐놓으십시요

(안주로 드셔도 완전 끝입니다-완전 강추)

* 밥도 밥이지만 국수나 당면도 좋습니다

(냉면 사리를 넣거나 순대를 넣어도 엄지척)

* 저 개인적으로 육회는 비빌때만 좋았습니다만

국물에 샤부샤부처럼도 애들이 좋아합니다



2020-6-19 마트에서 갑자기(성당휴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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