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리는 삐거덕 거리는 복도를 스케이트 타듯 비스듬히 한발한발 조심스레 걸었다
오늘따라 복도는 귀신이라도 나올것 같이 조용했고 낡은 마룻바닥은 왁스칠에 미끄러질까 조심스레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요란한 소리를 냈다
복도 끝에 있는 미술실은 대낮인데도 창문이 없어 어둡고 침침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오가는 학생들도 없어 잘됐다는 생각이었는데 어째 분위가 꼭 만화방가는 기분이 들어 찝찝해졌다
제기랄
미술실에는 왜 오라는거야
'어휴 냄새'
남학교 특유의 땀냄새와 물감냄새 기름냄새와 묘한 향기로운 냄새까지 나는 미술실에는 아무도 없어보였다
'선생님! 선생님!
아무도 안계셔요? 선생님!'
몇번을 소리쳐 부르자 키 거다란 미술 선생님이 한쪽 구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누구냐? 넌'
'선생님께서 부르셨다고해서 왔는데요 ....
일학년 10반 이소리입니다'
'... 이소리?내가 불렀다고?
난 그런적 없는거 같은데 ... 내가 불렀었나!'
'.....'
'난 기억 안나는데 ... 기억나면 다시 부르마'
다시 돌아 눕는 선생님은 어딘가 아퍼보였다
누렇게 뜬 얼굴하며 담배에 찌들은 누런이와 냄새에 며칠씩 안감은 덥수루륵한 머리와 빨갛게 충열된 눈 게다가 덥수룩한 수염은 꼭 어딘가 아픈 사람 모습이었다
'아이 씨 바쁜 사람 불러 놓고는 ...
아무리 교장선생님이 모셔오신 유명한 화가라지만 꼭 노가다판 술먹은 야방같이 생겨가지고는...'
속으로 나오는 욕을 가쓰스로 참으며 복도 끝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어이 학생!
학생! 학생! 생각났다! 다시 일루와라!'
'생각났어! 허 참! 이놈의 정신머리하고는 쯔쯔쯔
아 정말 바뻐 죽겠는데
뒤돌아 말하다 말고 들어가버린 미술실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확 올라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무슨 일로 찾으셨어요?'
'음 좀 기다려봐라 ... 여기 있네! '
꾹 닫은 입술에 엄한 꾸지람을 주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왠지모를 장난기가 가뜩 배어 있는것 같았다
'이 그림 니가 그린거냐?'
선생님이 꺼내든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은 분명히 내가 그려 제출한 숙제 맞었다
'네 선생님 제가 숙제 그려서 낸거 맞습니다'
'너 이놈아 선생님 놀리려고 작정 한거지?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려서 내? 내길 '
'....'
'너 이놈 솔직히 말하지 못해?'
수리는 토요일 오후에 미술실로 따로 불려가 왜 혼나야만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선생님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 낸것 뿐인데요 ...'
'이놈이 그래도!'
'....'
'야! 이놈아 묵화 그려 내랬더니 도화지에 그려 낸것도 모자라 수채화 물감도 아니고 분필로 그려서 낸게 선생님 놀리려고 한게 아니고 뭐냐 그럼!
아주 나쁜 놈일세! 너 같은 학생은 혼좀나야 돼'
'.... 아닌데요! 선생님!'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놈아! '
'.... 선생님 놀리려는게 아니라 그냥 숙제 낸겁니다'
'.... 숙제를 낸거다? '
'근데 왜 화선지에 안그렸어? 분필은 뭐고?'
'....'
'이놈아 어여 말 못해! 학생과에 넘기기전에'
'숙제를 내야 점수를 받지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붓도 먹도 없는데다 화선지 준비를 못해서 그냥 도화지에 막붓으로 그렸습니다 ...
분필 아니고 친구들 파스텔이 보여서 색칠하고 문지른거고요 ...'
'뭔 붓으로 그렸다고? 이놈이 끝까지 거짓말 하네
넌 용서 못하겠다'
'정말 제가 그렸습니다 ... '
'못 믿으시면 지금 다시 그리겠습니다'
'... 해봐!'
애들 장난 같이 다그치는 선생님보다 준비물 살 돈 이 없다는 말을 죽어도 하기싫었던 소리는 말없이 가위를 들고 붓 양 옆구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햐! 요놈봐라!'
수리는 말없이 고개를 처들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훔쳐보며 물감통에 물을부으며 물감을 찾았다
'어쭈구리! 여긴 왜 파스텔로 색칠을 하고 문지른거냐?'
'검정색만 있는게 싫어서요
풀떼기는 초록색이지 검정색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그럼 붓은 왜 자른거야 ?'
'붓끝이 힘이 없는지 자꾸 구부러지고 선이 뭉게져서 양 옆을 가위로 잘라서 쓰고 버렸습니다'
'하! 고놈 참'
선생님 눈에 장난기에 숨기지 못하는 웃음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내 별명이 뭔지알지?'
'... 모릅니다!'
'모르기 뭘 몰라!
넌 앞으로 방과후에 무조건 여기와서 그림 한장씩 그려서 나한테 검사 맞고 가!'
'....'
'안그럼 이번 학기 미술 점수는 없다'
소리는 막무가내로 돌아 눕는 선생님 뒷통수를 보면서 속으로 치미는 화를 삭히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붓도 절도 아무것도 없는데 ...
생활비 보태기도 힘든데 어쩌라고! 이 꼰데야!
'오늘도 선생님말 잘 듣고 사고 치지마라! 알았어?'
'예 선생님'
'반장'
'차렷 경례'
'수리야!
너 토요일날 미술실로 선생님한테 불려 갔었지?
선생님이 뭐래? 너보고 그림 그리래?'
'....'
'말해봐 선생님이 니 그림 대단하다고 칭찬 하셨대
그림도 벽에 붙여놓고 ... 말 좀 해봐!'
'아냐 '
'아니긴 뭐가 아냐 ...
그럼 그림은 왜 미술실에 붙여 놓은건데?
아니면 왜 니 그림을 왜 붙여놓냐?'
'아니라니까 그새끼 참!'
'너 엄성광선생님 되게 유명하신 선생님이래 동양화 작가면서 국전인가 뭔가에서 알아주는 선생님이고 교장선생님께서 특별히 모셔온 분이래
그래서 딴 미술 선생님들이 꼼째 못하고 눈치보며미술실에서 수업을 안하는거래'
'아! 거 되게 성가시게 하네 너 저리안가?
형한테 맞는다'
'친구지 맨날 형이래 ... 너 담임한테 이른다'
'일러 일르고 다신 귀찮게 하지마'
'너 수학 선생님이 이따 방과후에 교무실로 오래'
'....'
'너 또 뭐라고 한거야?'
'내가 뭘! 선생님이 불러 오라는데'
'선생님 찾으셨어요?'
'오 소리 왔니! 여기 앉아라
문제 이녀석은 같이 안왔니? 같이 오라고 했는데'
'.... 저한테만 가보라해서 왔습니다'
'음 아냐! 같이 들어야 할것 같은데 ...
음 문제는 이 미 부모님께 들어서 알고 있으니 내가 다음에 다시 말하기로하고 ...'
'....'
'담임선생님께는 말해서 알고 계시니까 니가 내일부터 문제랑 방과후에 같이 다니며 수학이랑 영어보충수업 받아라
보충학습비는 문제 부모님께서 부담하신다고 했다
대신 보충수업 끝나고 문제네 집 ... 통인동이니까 데려다주고....'
'.... 보충수업요?'
'그래! 넌 신청 안했다며? 문제가 밤에 혼자오는게 무섭다고 너랑 같이 하겠다고 한 모양이야...
산만한 녀석이 .... 애는 애네! 잘됬지 뭘!
나도 찬성이다'
'선생님 저 .... 싫습니다 ....'
'.... 왜 그러느냐? 창피해서 그래? '
'.... 저는 그냥 미술실에서 그림 그리다가 문제 끝나면 집에 같이 갈수는 있을것 같습니다!'
'미술실?'
'.....예! 선생님 ....
엄선생님께서 벌로 내주신 숙제가 있어서요'
'벌? 니가?...
음 미술실이라? ... 내가 선생님하고 먼저 말씀 나누고 다시 이야기하자! 오늘은 그만가도 좋다 ...
좋은 기횐데 한번 생각 다시 해보고'
오후의 태양이 비추는 교정은 아이들의 함성소리와 힘 겨루는 소리 마음을 아는지 교무실을 나온후에야 강렬한 햇살을 느낄수 있었다
황토 바닥에 뒹구는 자갈마저 아이들의 열기에 느끼지 못하던 햇살을 느끼며 한가로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사방 고요한 방과후 교정에서 저 멀리 떨어진 작은운동장쪽에 움칫움칫 다가오는 소년이 있었다
'소리야 ... '
문제는 짧은 손으로 나뭇가지에 걸린것 같은 커다란 책가방을 팔등에 끼고 조심스레 수리에게 다가섰다
'소리야 ... 화났어?'
문제는 말없는 소리가 더 겁났지만 한걸음 뒤쪽에서 따라 나서며 계속 눈치를 살폈다
'소리야! ... 나랑 수학 보충수업 하면서 수학 푸는 방법 좀 나 좀 가르쳐 주면 안돼?
딴 사람이 나 데리러 오는것보다 네가 더 좋다고 했어 ... 굉장히 좋은 친구라고
딴 애들이 못살게 구는것도 니가 다 혼내줬다고 했더니 .... 엄마가 너랑해도 된다고 했어
너는 엄마 아빠도 없다고 했더니 보충수업비도 엄마가 대신 내준데'
쉴세없이 떠드는 문제는 계속해서 쫑알대며 따라왔다
'너네 집 통인동이라며? 앞장서라'
'소리야! 너 이제 골난거 아니지? 그지?
우리집 가서 밥먹고 가'
'앞장서 임마! '
언제 눈치 봤느냐는듯 신난 문제아를 집 앞까지 데리고 간 소리는 웃으며 말했다
'야 문제아!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난 수학이 재미없기도 하고 숙제 장난친 벌로 미술실에서 그림 그려야 해 ... 보충수업비 필요 없다고...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 '
'미술 선생님이? 분명 칭찬했는데? ...'
실망했는지 호기심 때문인지 문제는 손톱을 물어 뜯으며 소리를 빤히 처다보기 시작했다
'넌 수업 끝나면 미술실로 와 같이 집에가게 ...'
'왜? 싫은데? ... 너 도와주려는거 아냐! 진짜야!'
'알아! 그러니까 그렇게 말씀드리고 ...
사실 나도 시골에 할머니도 계셔 .... 그러니까 그렇게 해'
'..... 진짜? 근데 왜?....'
'나 간다!'
뱃속에선 집에 가도 아무도 없는걸 아는지 학교 간 형보다 먼저 고픈 배가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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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아침은 소란하게 밝아왔다
또 언제나 처럼 용용이형은 아침을 준비했고 또 언제나처럼 꼭두새벽 부터 비탈길을 뛰어 다녀와야했다
'형 갔다 왔어!'
헉헉헉
일년 열두달 쉴새없이 뛰어 다니는 아침 일과지만 이마에는 구슬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땡땡이 치다 온거 아니지?'
'에이 형은 '
'아냐 수리야 좀 빨리온거 같은데? 너 솔직히 말해'
'아니라니까! 형은 괜히'
'아님 말고'
용용이 형은 수리 어깨를 두들기며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각반을 차보자'
'헤헤 형 오늘 내가 빨랐던 모양이구나'
'점점 좋아지는구나! 이제 속 근육을 붙여야겠다'
용용이는 아직 가쁜 숨을 쉬는 수리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형 들어가 자! 이제 내가 혼자 씻고 학교갈께'
'그래라'
수리는 방으로 들어가는 믿음직한 형의 뒷 모습을 보며 속으로 다짐을 했다
2023-2-21 관리실